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올해 상반기 제약사들의 매출 성장은 ‘남의 제품’으로 채워진 것으로 나타났다. 신제품 고갈로 매출 성장세가 주춤한 상황에서 상품 매출의 의존도가 높아지는 추세다. 영업력을 갖춘 상위권 제약사들의 상품매출 증가세가 두드러졌다.
17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주요 코스피 상장 제약사 15곳의 상반기 매출액은 총 4조2553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5.8% 증가했다. 유한양행, 대웅제약, 광동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등이 10% 이상의 성장률을 기록했고 나머지 업체들의 성장세는 주춤했다.
15개사의 상반기 상품매출 규모는 1조7732억원으로 전년보다 10.5% 늘었다. 매출에 비해 상품매출 성장률이 2배 가량 높은 셈이다. 상품매출은 재고자산을 구입해 가공하지 않고 일정 이윤만 붙여 판매되는 매출 형태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다국적제약사로부터 공급받은 의약품으로 올리는 매출이 상품매출에 포함된다.
상품매출의 높은 증가세는 전체 매출에서 상품매출에 대한 의존도가 높아진다는 것을 뜻한다. 올해 상반기 15개 제약사의 매출액은 전년동기대비 2323억원 늘었는데, 상품매출은 1687억원 증가했다. 매출 증가분의 70% 가량은 상품매출이 차지했다는 의미다. 제약사들의 매출에서 상품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39.9%에서 올해 상반기 41.7%로 1.8%포인트 증가했다.
최근 제약사들이 열악한 신약개발 능력과 제네릭 시장 포화에 따른 신제품 기근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판매에 적극적으로 나서면서 상품매출 의존도가 높아진 것으로 분석된다.
올해 상반기 기준 매출에서 상품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보면 유한양행이 72.6%로 가장 높았다. B형간염치료제 ‘비리어드’(805억원), 당뇨치료제 ‘트라젠타’(522억원), 고혈압치료제 ‘트윈스타’(398억원), HIV치료제 ‘스트리빌드’(107억원), 폐렴백신 ‘프리베나13’(57억원) 등 다국적제약사로부터 도입한 5개 제품이 상반기에만 1889억원을 합작했다. 유한양행의 원료의약품 부문 사업의 호조도 상품매출 증가에 기여했다. 유한양행은 자회사인 유한화학 생산한 원료의약품을 미국, 유럽, 일본 등에 판매하는데, 상반기 수출 실적은 1388억원으로 전년보다 51.7% 증가했다.
유한양행은 최근 고지혈증복합제 ‘로수바미브’, 고혈압·고지혈증복합제 ‘듀오웰’ 등 자체개발 복합제 제품들이 점차적으로 두각을 나타내고 있지만 자체개발 제품보다는 상품매출의 성장세고 높은 것으로 조사됐다.
전반적으로 상위제약사들이 상품매출 의존도가 높았다.
녹십자의 상반기 상품매출 규모는 2464억원으로 전체 매출의 48.0%를 차지했다. 지난해보다 상품매출 비중은 다소 줄었지만 다른 업체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녹십자는 BMS의 B형간염치료제 ‘바라크루드’를 2015년 말부터 판매 중이며 올해 초에는 SK케미칼이 팔던 MSD의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의 판권을 가져갔다. MSD의 대상포진 백신 ‘조스타박스’, 아스트라제네카의 고혈압치료제 ‘아타칸’, 화이자의 성장호르몬 ‘지노트로핀’ 등도 녹십자가 공동 판매를 진행 중이다.
대웅제약의 상품매출 증가액은 383억원으로 매출 증가액(446억원)의 85.9%에 달했다. 대웅제약은 지난 2015년말 주력 제품의 판권 이전에 따른 대규모 매출 공백이 발생했지만 아스트라제네카의 고지혈증치료제 ‘크레스토’, 다케다제약의 항응고제 ‘락시아나’ 등 새로운 도입신약을 장착하며 빠른 속도로 매출 회복세를 나타냈다.
종근당의 상반기 상품매출 비중은 35.2%로 전년동기(37.2%)보다 다소 감소했지만 지속적으로 상품매출에 대한 의존도는 높아지는 추세다. 지난 2015년 종근당의 상품매출 비중은 24.3%에 불과했다. 종근당은 지난해부터 한국MSD와 공동판매 협약을 맺고 당뇨치료제 ‘자누비아’·‘ 자누메트’·‘자누메트XR’ 3개 품목과 고지혈증치료제 ‘바이토린’·‘아토젯’ 2개 품목의 국내 영업과 마케팅을 시작했다. 올해부터는 비염치료제 '나조넥스'도 장착했다.
보령제약은 최근 당뇨치료제 ‘트룰리시티’, 항암제 ‘타쎄바’, 전립선비대증치료제 ‘하루날디’와 과민성방광치료제 ‘베시케어’ 등 새로운 도입신약 제품들이 대거 가세하면서 상반기 상품매출이 지난해보다 32.4%늘었다. 상품매출 비중은 26.5%에서 32.4%로 큰 폭으로 뛰었다.
광동제약, JW중외제약, 한독 등도 상품매출 비중이 평균치를 웃돌았다. 반면 삼진제약, 한국유나이티드제약, 경보제약, 대원제약 등 중견제약사들의 상품매출 비중은 10%에도 못 미쳤다. 삼진제약의 경우 매출액 100%가 자체생산 제품으로 구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상위제약사들이 강력한 영업력을 앞세워 적극적으로 도입신약을 장착하면서 외형 확대를 이끌었다는 분석이다. 상위제약사들의 상대적으로 우세한 영업력이 중소·중견제약사에 비해 도입신약 판권 확보에 상대적으로 유리한 고지에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한편 지난해 상반기 68.4%의 상품매출 비율을 기록했던 제일약품의 경우 최근 지주회사체제 전환에 따른 회사 분할로 조사 대상에서 제외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