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국내에서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 중인 의약품 ‘비리어드’의 복제약(제네릭) 시장에서 국내제약사들의 혈투가 예고됐다. 비리어드의 특허만료를 1년 남짓 앞두고 제약사들이 자체개발한 제제기술과 적극적인 특허 전략을 활용해 10여개사가 먼저 판매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했다. 비리어드의 처방이 주로 대형병원에서 이뤄지고 있어 제네릭 제품의 시장 확장성에 물음표를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
◇국내사 16곳, 비리어드 우선판매품목허가 획득..시장선점 기회 확보
29일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최근 종근당, 동아에스티, 한미약품, 보령제약, 제일약품 등 16개사가 비리어드의 제네릭을 다른 업체보다 먼저 판매할 수 있는 우선판매품목허가를 획득했다. 비리어드는 길리어드가 개발하고 유한양행이 공동 판매하는 경구용 B형간염치료제다.
우선판매품목허가는 지난 2015년 3월부터 본격 시행된 허가·특허 연계제도로 도입된 제도로 특허도전에 성공한 제네릭에 부여하는 혜택이다. 가장 먼저 특허도전에서 승소한 제네릭은 9개월 동안 다른 제네릭보다 먼저 진입하는 일종의 ‘독점판매권’ 성격이다.
비리어드 제네릭의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받은 제약사는 총 5개 그룹으로 구성된다. 한미약품, 동아에스티, 종근당 등은 특허소송을 통해 비리어드의 물질특허를 무력화하면서 8월25일부터 내년 5월25일까지 9개월간의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따냈다.
이들 3개사는 비리어드의 구성 성분 ‘테노포비르디소프록실푸마르산염’ 중 부속 성분인 ‘푸마르산염’을 다른 성분으로 대체한 제품이다. ‘염’ 성분은 유효성분의 안정성과 용해도를 높여주는 성분이다.
당초 비리어드의 주 성분인 테노포비르는 오는 11월, 부속성분인 푸마르산염의 특허 만료는 내년 11월로 예정됐다.
한미약품(테노포비르디소프록실인산염), 동아에스티(테노포비르디소프록실오로트산염), 종근당(테노포비르디소프록실아스파르타산염) 등 모두 비리어드와 다른 염을 기반으로 제네릭 제품을 개발했다. 비리어드와는 다른 염을 사용해 개발한 약물이 물질특허의 연장기간에 적용받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소극적 권리범위확인심판을 제기했고 승소했다. 오는 11월로 예정된 비리어드의 주 성분인 테노포비르의 특허만료기간을 앞당기면서 우선품목판매허가를 획득했다.
보령제약, 삼진제약, 동국제약 등 7개사와 휴온스, 제일약품 등 6개사 등 13개사 모두 ‘염’을 뺀 제네릭 제품을 개발했지만 우선판매기간은 다르다. 보령제약 등은 8월26일부터 내년 5월25일까지며, 휴온스 등은 11월10일부터 내년 5월25일까지다.
보령제약 등은 한미약품·종근당·동아에스티와 마찬가지로 비리어드 주 성분의 물질특허를 무효화하는데 성공했고, 휴온스 등은 물질특허의 무효를 도전하지 않는 권리범위확인심판에서 승소, 당초 예정된 테노포비르의 물질특허 만료(11월9일) 이후 판매가 가능하다.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받은 16개의 제네릭 모두 약가등재 절차를 거쳐 10월 이후 판매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품목간 발매 시기는 10~11월로 관측된다. 비리어드의 푸마르산염의 특허만료가 내년 11월이어서 비리어드와 똑같은 ‘테노포비르디소프록실푸마르산염’ 성분 제네릭보다 1년 가량 먼저 발매할 수 있는 기회를 확보한 셈이다.
제약사들이 공동으로 특허 소송을 진행하거나 비슷한 시기에 특허 소송을 제기하면 모두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부여하는 제도 특성상 제약사들이 무더기로 독점판매권을 공유하게 됐다. 우선판매품목허가는 최초 특허심판 청구업체에 주어지는데, 특허심판은 최초 심판으로부터 14일 이내에 청구하는 제네릭은 모두 가장 먼저 청구한 것으로 간주된다.
비리어드의 제네릭 제품에 우선판매품목허가가 봇물을 이룬 이유는 비리어드의 높은 시장성 때문이다.
의약품 조사 업체 유비스트에 따르면 비리어드는 지난해 1541억원의 원외 처방실적을 기록, 국내에서 판매 중인 의약품 중 가장 많은 매출을 기록했다.
지난 2012년 국내 발매된 비리어드는 이미 해외에서 수십만명이 10여년간 복용하면서 효능과 안전성을 검증받으며 의료진과 환자들로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받은 약물이다.
비리어드는 강력한 바이러스 억제 효과와 뛰어난 안전성을 앞세워 발매 이듬해인 2013년 557억원의 처방실적으로 존재감을 알린데 이어 2014년 966억원으로 치솟았다. 2015년 1253억원, 2016년 1541억원으로 상승세는 멈추지 않았다.
제네릭 업체 입장에선 비리어드의 점유율 10%만 차지해도 연간 150억원의 매출을 올릴 수 있다는 매력적인 시장인 셈이다. 국내제약사들은 자체개발한 제제기술을 활용해 특허 회피 제네릭을 개발했고, 적극적인 특허 도전을 통해 시장 선점 기회를 확보한 배경이다.
◇'제네릭 무더기 진출ㆍ의원급 처방률 20%대' 시장성 불투명
업계에서는 비리어드의 제네릭을 먼저 내놓는 제약사들의 시장 전망이 낙관적이지만은 않다는 지적이 조심스럽게 제기된다.
공격적인 제네릭 출시 전략으로 경쟁업체보다 1년 먼저 시장에 진입할 수 있는 업체가 16곳에 이른다는 점에서 이들 업체간 치열한 시장 선점 경쟁이 불가피하다. 사실상 우선판매품목허가에 따른 독점 효과가 없다는 얘기다.
특히 비리어드의 경우 국내제약사들의 영업력이 취약한 대형병원에서 많이 처방된다는 점도 부정적인 신호다.
제약분야 빅데이터 분석 전문기업 코아제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비리어드의 처방 의료기관 중 상급종합병원(41.5%), 종합병원(25.7%), 병원(5.7%) 등에서 병원급 이상 규모 의료기관에서 72.9% 처방됐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27.0% 처방된 것으로 집계됐다.
코아제타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매년 145만명의 진료·처방 정보를 구매해 분석한다. 145만명의 진료·처방 데이터는 전체의 약 3%에 해당하는 규모라서 통계적으로 99.9% 이상의 정확도를 나타낸다.
국내제약사의 대형병원보다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상대적으로 강력한 영업력을 발휘한다. 비리어드의 의원급 처방 비율이 낮다는 것은 전체 시장 규모에 비해 국내업체들이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이 크지 않다는 점을 의미한다. 비리어드의 의원급 처방 비중은 2012년 23.1%, 2013년 24.8%, 2014년 26.1%등으로 매년 30%를 넘지 못했다.
비리어드의 시장 규모가 1500억원 가량에 이르지만 의원급에서는 약 400억원 가량에 불과해 제약사들간 '나눠먹기식' 영업경쟁이 펼쳐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종합병원에서 처방되려면 병원마다 약제심의위원회를 통과하는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에 먼저 발매되는 제네릭이 모두 시장 선점 효과를 누릴 수 없다는 분석도 나온다.
2015년말 특허가 만료된 B형간염치료제 ‘바라크루드’ 시장도 이같은 이유로 제네릭 제품의 성적표가 당초 가대에 못 미치는 실정이다. 바라크루드 역시 연간 10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며 제네릭 업체들의 치열한 시장 선점 경쟁이 펼쳐졌다.
유비스트의 자료를 보면 바라크루드 제네릭 제품 중 동아에스티의 ‘바라클’과 부광약품의 ‘부광엔테카비르’가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올해 상반기 원외 처방실적은 각각 29억원, 15억원에 그쳤다. 바라크루드의 시장 규모에 비해 만족스럽지 못한 성적표다. 바라크루드 역시 종합병원에서 많이 처방되는데다 제네릭 제품이 무더기 발매되면서 아직까지는 크게 두각을 나타내는 제네릭이 등장하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지난 8월1일 기준 바라크루드0.5mg 제네릭은 총 63개 등재됐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제약사들마다 먹거리 부재에 시장 규모가 큰 오리지널 제품의 특허만료는 새로운 캐시카우를 확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에 가동할 수 있는 모든 전략을 동원해야 하는 현실이다”면서도 “오리지널 제품의 처방 패턴 등을 고려하지 못하고 수십개 업체들간 나눠먹기식 경쟁이 반복되면 특허비용 등 비용 낭비로 이어질 수 있어 신중한 시장 전략이 필요하다”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