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유전자가위를 활용한 게놈 에디팅(Genome editing)의 타당한 우리말 번역은 '유전자 교정'일까? '유전자 편집'일까? 유전자가위 연구자들은 유전자 일부를 수정하는 의미의 유전자 교정으로, 생명윤리학자들은 좀 더 광범위한 수정으로 해석되는 유전자 편집으로 칭했다. 용어 하나에서도 이 기술을 바라보는 시각차가 그대로 드러났다. 특히 핵심 쟁점인 배아 게놈 에디팅 연구 허용 혹은 확대를 두고서는 찬반 의견이 명확히 갈렸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30일 서울 중구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생명윤리법 개정을 위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는 공청회를 개최했다. 정부는 올해 3월부터 민·관협의체를 구성해 유전체 기술 등 미래기술에 대한 정책 이슈에 대해 사회·윤리적 문제를 검토하고 대응방안을 논의해왔다. 이날 공청회는 이를 바탕으로 각계각층 전문가들의 의견을 폭넓게 수렴해 생명윤리 정책방향을 수립하기 위한 자리였다.
전문가들의 의견이 정면 충돌한 것은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인간 배아연구였다. 임상이 아닌 연구 목적의 게놈 에디팅은 허용해야 한다는 의견과 안전성 검증과 사회적 합의가 미흡하다며 우려하는 목소리가 맞섰다. 다만 이미 상용화된 유전자치료제와 체세포를 대상으로 한 게놈에디팅의 경우 안전성을 중심으로 논의를 확장해야 한다는데 의견이 모아졌다.
민·관협의체에 참여했던 정성철 이화의대 교수는 "유전자편집기술을 배아를 대상으로 사용하는 것은 유전자 편집이 아니라 배아연구 허용범위에 대한 논의를 해야 한다"면서 "잔여배아의 연구목적 활용에서 다시 희귀 난치성 질환 등 구체적인 목적을 제한하는 현재의 생명윤리법은 형평성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배아의 연구목적 활용에 대상질환을 열거하는 방식은 재검토해 삭제하고 IRB에서 개별 건에 심의해 승인 여부를 결정하도록 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결국 배아 연구 대상을 법률로 규정할 것이 아니라 각 연구를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 등에서 심도 있는 논의를 통해 허용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위원회의 논의 범위위 권한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것이다.
최근 미국 연구팀과 공동으로 젊은이 돌연사의 가장 큰 원인으로 알려진 비후성 심근증을 초래하는 유전자 변이를 인간배아에서 교정하는데 성공한 김진수 기초과학연구원 유전체연구단장은 "국내법은 유전자 변이 여부를 알 수 없는 인공수정 후 폐기되는 잔여배아만 연구에 사용하도록 돼 있어 유전자가위를 이용한 변이 교정 실험이 원천적으로 차단돼 있다"고 지적했다. 김 단장은 이어 "배아 연구 자체를 금지하면 기술 축적이 불가능해지고 후일 부모들이 해외에 나가 배아 유전자수술을 받고 귀국하거나, 국내에서 불법 배아 유전자수술을 감행할 가능성도 있다"며 "연구를 허용하고 합리적으로 규제해야 이러한 문제들을 예방하고 기술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인영 홍익대 법대 교수는 첨단과학기술은 독립성, 공개성, 신뢰성, 대중성에 의해 평가돼야 하는데 이제 10년에 불과하고 국가별로 규제수준도 상이한 유전자편집 특히 배아 유전자편집 연구의 확산은 시기상조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전자 검사를 거친 배아를 선별해 착상하는 의료술(PGD)가 있는데 기초연구에서 질환 유전자를 교정한 배아의 비율, 유전자편집기술의 성공률을 높이는게 얼마나 의미가 있냐"면서 "인간배아를 대상으로 기초연구 허용을 말하는 것은 결국 성공적인 개체탄생 의도를 돌려 말하는 것 아닌가"라고 우려를 표했다.
최규진 인하의대 교수는 "전세계적으로 유전자편집 연구에 대해 개방적인 접근이 주된 흐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국내 실정에 맞는 논의를 활성화 시켜야 하는 상황이지 섣부르게 어떤 법적·행정적 조율이 취해질 단계는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4차 산업혁명과 생명윤리정책'에 대해 발제한 김현철 이화여대 법전원 교수는 "신기술(Emerging Technology)은 기대와 불안이 공존하는 기술로서 불확실성과 애매성을 보유하고 있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다각도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면서 "한정된 정보를 바탕으로 사회적 수용 여부와 수용방식에 대한 판단을 내려야하는데 이것은 과학적 판단이라기보다는 규범적 판단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신기술의 발전을 법이 따라갈 수 없는 맹점때문에 연구자가 중심이 된 자율규제 모델의 정립이 필요하며 이 모델 정착을 위한 국가의 역량지원 프로그램이 필요하다. 또한 기술역량평가 제도 확립과 사회적 공론의 장 마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의 생명윤리법에서는 사회적 쟁점을 다룰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이 없으며 많은 사회적 비용을 소모하면서도 특별한 대안을 내지 못하고 있다"면서 "새로운 생명윤리법에는 국가적 공론장의 역할을 하는 국가생명윤리심의위원회의 실질화, 자율구제단위로서 생명윤리위원회 및 병원윤리위원회의 정착, 생명윤리적 기술영향평가제도의 도입, 의료정보와 건강정보에 대한 국게적 수준의 규제방식 도입 등이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