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조정민 기자
면역항암제 옵디보(Opdivo), 키트루다(Keytruda)를 내세운 BMS(Bristol-Myers Squibb)와 머크(Merck)의 경쟁은 비단 매출 증대나 적응증 확대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IP(Intellectual property, 지적재산권)를 두고 벌어진 세기의 특허전쟁이 그것이다.
BMS는 2014년 머크의 키트루다가 옵디보의 특허를 침해했다며 미국 델라웨어 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옵디보와 키트루다는 모두 환자의 면역체계에서 면역억제관문으로 작용하는 PD-1에 결합하는 항체를 이용, 암세포의 면역회피를 막고 면역체계를 활성화하는 기전을 가진 면역항암제로 타깃인 PD-1이 소송의 핵심이었다.
BMS는 "PD-1 면역조절 신호체계는 선천적인 현상이지만 우리가 가진 특허는 자연적인 상태의 체내 면역시스템에서는 나타나지 않는 면역반응을 유도하는 치료법에 대한 것"이라며 머크가 특허를 침해했다고 주장했다. 반면 머크는 PD-1의 면역체계 조절은 자연적인 현상으로 BMS가 주장한 특허 권리에는 자연현상에 대한 설명 이외에 획기적이고 독창적인 부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박하며 소송을 이어갔다.
이 두 공룡 제약사의 특허소송은 지난 1월, 합의 종결 형태로 마무리됐다. 머크가 BMS의 특허를 인정하고 BMS에 6억 2500만 달러를 우선 지급함과 동시에 2023년까지는 6.5%, 이후 3년 간은 2.5%의 로열티를 건네는 조건이었다. BMS는 옵디보의 매출 외에도 경쟁자 키트루다의 매출에 따른 로열티 수입까지 얻게 된 것이다. '잘 키운' 특허의 위력이다.
국내 신약개발 기업인 지피씨알(GPCR)의 신동승 대표는 지난 5일 바이오스펙테이터와 만난 자리에서 국내 바이오벤처들이 특허를 기반으로 한 IP전략에 공을 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BMS와 머크의 PD-1 특허 소송은 IP전략의 중요성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그는 “PD-1이 인체의 면역 시스템에서 사용하는 자연적인 T세포 조절 메커니즘이라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었다. BMS 측이 이를 이용해 ‘옵디보’를 개발하면서 세운 강력한 IP 전략이 이번 소송에서 승기를 거머쥐게 된 비결”이라고 말했다. 신 대표는 “특허는 단순히 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배력이 강하고 방어력이 높은 특허를 출원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바이오기업들이 강력한 특허를 구축하기 위해서는 체계적인 IP전략을 수립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바이오기업이 추구하는 전략이 팔로어(follower)라면 특허 회피 전략에 공을 들여야지만 새로운 타깃을 가진 퍼스트 무버(first mover)의 경우 지금까지와는 다른 차원의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신 대표는 "한정된 자본으로 운영해야 하는 바이오텍의 어려움을 모르지 않지만 기껏 열심히 연구한 결실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는 R&D 투자의 10% 이상은 특허출원과 유지, 관리를 위한 IP 분야에 투자해야 한다"면서 "바이오텍에게 특허는 꽃이며, 기술 이전 등은 그 특허와 관련한 세일즈다. 좋은 꽃을 피우기 위한 투자를 사치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 경험 많은 ‘In-house 변리사’가 좋은 전략이 될 수 있다고 소개했다. "촘촘하고 강력한 특허를 만들기 위해서는 방향성을 선정하고 전략을 수립하는데 드는 시간이 많아야 하는데, 외부의 변리사에게 위탁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한 시간을 확보하기 어려운 아쉬움이 있다"는 설명이다.
국내 바이오벤처들이 많이 생겨나고 있지만 직접 변리사를 고용하는 기업은 극히 일부다. 세포 표면 수용체인 ‘G 단백질 연결 수용체(GPCR)-이형중합체’를 타깃으로 혁신 신약(first-in-class)을 개발하는 GPCR은 초기부터 기업 등에서 다양한 경험을 가진 변리사를 채용해 IP전략을 수립하고 있다.
신 대표는 “고정적인 In-house 변리사를 고용함으로써 R&D를 통해 밝혀낸 과학적 기전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그에 관련된 특허 전략을 세울 수 있게 된다”면서 “기업은 단순히 연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상업화를 목표로 한다. 따라서 특허를 위한 데이터를 생산하는 것도 필수적”이라고 했다. 또한 다양하고 깊이 있는 경험을 가진 변리사가 R&D와 BD(business development) 간의 가교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