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한국제약기업들이 선진 의약품 시장에 복제약과 같은 후발의약품으로 진출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고 있다. 원 개발국에 후발의약품을 내놓는 역수출이다. 기존에 없는 신약보다는 개발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쉬운데다 이미 검증된 제품으로 기존에 구축된 시장에 진출한다는 점에서 매력있는 분야다.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주목할만한 성과도 속속 등장하는 추세다. 다만 현지 허가를 받기 위해
수많은 난관을 넘어서고 유사 약물과의 경쟁을 뚫어야 한다는 무거운 숙제가 남아있다.
28일 업계에 따르면 CJ헬스케어는 일본 바이오의약품 기업 YL바이오로직스(YLB, YL Biologics)와 ‘CJ-40001’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CJ헬스케어는 일본 내 CJ-40001 허가 승인을 위한 연구를 지원하는 조건으로 계약금과 함께 일본 내 허가신청, 승인 등 개발 진행단계에 따라 기술료 및 판매 로열티를 별도로 받는다. 세부 계약 규모는 양사의 합의로 공개하지 않기로 했다.
CJ-40001은 CJ헬스케어가 빈혈치료제 '네스프'와 동일한 성분과 효능으로 개발하는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제품이다.
지난 2009년 쿄와하코기린이 국내에 내놓은 네스프는 유전자재조합 기술을 이용해 개발된 '적혈구 생성 촉진 단백질'(EPO)로 차세대 빈혈치료제로 평가받는 약물이다. 세계적으로 23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대형 제품이다. CJ헬스케어가 일본에서 개발된 바이오의약품의 복제약을 원 개발국으로 수출하는 셈이다. CJ-40001은 CJ헬스케어가 해외 시장에 도전하는 첫 바이오의약품이다.
앞서 종근당이 CJ-40001와 같은 약물의 일본 진출을 성사시킨 바 있다. 종근당은 지난해 1월 일본 바이오의약품 전문 기업 후지제약공업과 빈혈치료제 ‘CKD-11101’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는데 ‘CKD-11101’도 네스프의 바이오시밀러다.
종근당은 지난 2012년 CKD-11101의 임상시험을 시작했고 2018년 출시를 목표로 임상3상시험을 진행 중이다. CKD-11101도 종근당의 첫 바이오의약품이다.
공교롭게도 종근당과 CJ헬스케어가 자체개발한 첫 바이오의약품을 원 개발국에 진출하며 국산 바이오시밀러 제품간 경쟁이 예고됐다.
국내제약사가 개발한 후발의약품이 일본을 비롯해 미국, 유럽 등 선진 의약품 시장이나 원 개발국에 수출을 시도하는 사례가 꾸준히 확대되는 추세다.
메디톡스는 지난 2013년 엘러간과 총 3억6200만달러 규모의 ‘이노톡스’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노톡스는 동결 건조 방식의 기존 보툴리눔톡신제제를 액상 형태로 개선한 제품이다. 당시 보툴리눔독소제제의 원조인 엘러간에 후발의약품을 수출했다는 이유로 메디톡스는 큰 화제를 모았다.
대웅제약도 자체개발한 보툴리눔독소제제의 미국 진출을 예약한 상태다. 대웅제약은 미국 제약사 에볼루스와 수출 계약을 맺고 현지 임상시험을 거쳐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에 허가 신청을 마친 상태다.
대웅제약은 지난 4월 항생제 제네릭 ‘메로페넴’을 미국에 발매하기도 했다. 메로페넴은 아스트라제네카가 출시한 ‘메렘’의 제네릭 제품이다. 대웅제약은 2009년 미국 메릴랜드에 미국 진출을 위한 법인을 설립했으며 지난 2012년 FDA에 메로페넴의 허가를 신청했다. 지난 2015년 12월 FDA로부터 시판 허가를 받은 이후 미국 파트너사와 공급계약을 맺고 현지 판매를 시작했다.
중소기업 씨티씨바이오도 제네릭 제품의 선진 의약품 진출에 적극적인 행보다. 씨티씨바이오는 지난 2015년 스위스 제약사 페링과 맺은 필름형 의약품 수출 계약을 맺었다. 페링의 주력 제품인 야뇨증치료제 ‘데스모프레신’을 씨티씨바이오가 물없이 복용할 수 있는 ‘필름형’ 제품으로 만들어준다는 내용이다. 씨티씨바이오가 필름형 생산공정을 갖춘 독일 제약사에 기술을 이전하면 독일 제약사가 생산해 페링에 공급하는 방식의 계약이다. 다국적제약사가 자사 제품을 한국제약사가 생산하도록 요청하는 것은 이례적인 현상이다.
서울제약이 개발한 필름형 발기부전치료제도 화이자가 ‘비아그라엘’이라는 상품명으로 국내에서 판매 중이다. 당초 서울제약은 비아그라의 필름형 제네릭 제품을 ‘불티스’라는 제품명으로 국내 허가를 받았지만 화이자와 공급 계약을 맺은 이후 ‘비아그라엘’로 제품명을 변경, 한국화이자에 생산·공급하고 있다.
이미 국내기업이 개발한 후발의약품의 성공사례도 눈에 띈다.
셀트리온의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가 대표적이다. 지난 2012년 7월 국내 허가를 받은 램시마는 2013년부터 순차적으로 유럽, 일본, 남미 등 70여개국에서 허가받았다. 지난해 말부터 미국 시장 판매도 시작됐다.
셀트리온헬스케어가 셀트리온 바이오의약품의 해외 유통을 맡는데 지난 2013년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셀트리온헬스케어의 누적 수출액은 1조6223억원에 달한다. 수출액의 대부분은 램시마다. 셀트리의 바이오시밀러의 활약으로 올해 상반기 바이오시밀러의 수출액은 총 국내개발 의약품 수출액의 24.6%를 차지하기도 했다. 셀트리온은 램시마에 이어 트룩시마, 허쥬마 등의 글로벌 시장 진출도 가시화하는 단계다.
삼성바이오에피스의 바이오시밀러 제품도 글로벌 시장에 근접한 상태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미 유럽에서 4종(엔브렐, 레미케이드, 란투스,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를 허가받았다. 최근에는 허셉틴 바이오시밀러 ‘온트루잔트’도 유럽의약품청 약물사용자문위원회 ‘긍정 의견(positive opinion)’을 받으면서 허가가 임박했다. 유럽에서 ‘베네팔리’라는 제품명으로 바이오젠이 판매 중인 엔브렐 바이오시밀러의 경우 지난해부터 올해 2분기까지 총 1억5400만달러(약 18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바이오시밀러나 합성의약품의 제네릭과 같은 후발의약품의 경우 기존에 없는 신약보다는 개발 난이도가 상대적으로 쉽다는 매력이 있다. 이미 오리지널 의약품이 구축한 시장이 있어 제약사 입장에선 ‘계산이 서는 시장’으로도 평가받는다. 오리지널 의약품이 오랫동안 사용한 만큼 안전성 측면에서 이미 검증받은 시장이라는 매력도 있다.
다만 후발의약품이 해외에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수많은 국내외 기업들과의 경쟁을 넘어서야 한다는 점이 전제돼야 한다. 제네릭 뿐만 아니라 바이오시밀러 분야도 이미 글로벌 기업들이 유사 제품을 개발하며 ‘레드오션’으로 변모하는 상황이다.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추가 임상시험을 거쳐 시판승인을 받아야 하고, 이를 위해 현지 규제기관의 수준에 맞춘 제조시설도 확충해야 한다.
한미약품은 지난 2013년 항궤양제 ‘에소메졸’은 국산 개량신약 중 처음으로 미국 시장에 발매됐지만 아직까지는 만족스러운 성적표를 받아들지 못했다. 에소메졸은 미국에서 연간 60억달러 이상의 매출을 올리고 있는 아스트라제네카의 위궤양약 '넥시움'의 부가성분을 바꾼 개량신약이다. 한미약품은 아스트라제네카와 2년여 간 특허소송 펼친 끝에 FDA 허가를 받았다. 그러나 저렴한 제네릭 제품들의 틈바구니에서 아직 존재감을 과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엘러간에 기술수출된 메디톡스의 ‘이노톡스’도 아직 제조시설 확충과 시제품 공급 등의 변수로 후속 임상시험에 돌입하지 못한 상태다. 메디톡스 측은 올해 말께 임상시험 진입을 기대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