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조정민 기자
메디톡스가 미국에서 대웅제약 등을 상대로 제기한 '보툴리눔 균주 도용' 관련 민사소송이 국내서 진행될 전망이다. 미국 법원이 한국에서 진행되는 소송 경과를 지켜본 이후 재판 재개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방침을 정했다. 미국 법원의 판단을 두고 대웅제약과 메디톡스가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면서 내리면서 혼선이 가중되기도 했다.
이와 관련 메디톡스는 지난 7월 미국 법무법인 셰퍼드 멀린을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법원에 대웅제약과 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사 알페온 등을 상대로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메디톡스는 “대웅제약이 메디톡스에 근무했던 직원을 이용해 메디톡신의 균주와 생산기술 노하우가 담긴 제어레코드를 훔쳤고, 이를 이용해 ‘나보타’를 만들었다"라고 주장했다.
13일 대웅제약은 '美 캘리포니아 법원, 메디톡스 소송 부적합 결정'이라는 제목의 보도자료를 통해 “미국 캘리포니아 주법원이 메디톡스가 제기한 민사소송은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밝혔다. 대웅제약 측은 “미국 법원에서 다툴 일 아니다고 결론내렸다”면서 “이제는 발목잡기식 무모한 음해로부터 벗어나 제약-바이오 산업 발전을 위해 해외진출에 집중할 시기”라고 강조했다.
대웅제약은 “미국 소송이라는 경쟁사의 방해시도가 사라졌기 때문에 대웅제약 나보타의 미국사업 진출은 더더욱 탄력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라고 내다봤다. 미국 법원의 판단이 재판의 종료를 의미하는 듯한 인상이다.
하지만 메디톡스 측은 대웅제약과 다소 상이한 반응을 내놓았다.
이날 메디톡스는 “미국 캘리포니아 오렌지카운티 법원의 판결문에 따르면 법원은 메디톡스가 한국에서 대웅제약 등에 제기하는 소송 진행 여부를 보고, 2018년 4월 13일 오전 9시 속개한다”고 밝혔다. 메디톡스 측은 “미 법원 명령(Minute Order)에 따라 한국에서 소송을 곧 제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법원의 명령문을 보면 이번 결정은 재판 종료가 아닌 일시 중단을 의미한다. 재판부는 미국이 아닌 한국에서 재판이 진행되는 것이 적절하다고 판단했다.(In light of all the factors, the appropriate forum in which to adjudicate this action is South Korea, not the United States.)
재판부는 △균주 분쟁과 관련된 모든 자료가 한국에 존재하며 한국어로 작성됐고 피고와 참석한 증인들에게 모두 통역이 필요 △보툴리늄 균주가 한국에 있고 국제적 이동이 어려움 △대웅 측 피고인과 개인 피고인 3명이 모두 한국에 거주 △미국에 거주중인 증인 역시 한국 국적의 소유자 △한국 정부가 보툴리늄 독소 제조를 국가적 핵심 기술로 선정하고 있으며, 산업 전반에서 이번 논쟁 해결에 대해 관심이 높은 점 등을 이유로 한국 법정에서 소송을 진행하는 것이 더욱 적합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한국에서의 진행상황을 지켜보며 본 사안의 판결을 보류하며, 오는 27일(현지시각)에 예정되어 있던 심의를 취소하고, 남은 문제 해결을 위한 재심의 일정을 2018년 4월 13일 오전 9시로 정한다”라고 했다. 추후 재판은 한국에서 진행될 공산이 크다. 메디톡스 측은 “한국에서 즉각 소송을 제기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소송의 핵심 쟁점인 대웅제약의 보툴리눔독소 도용 여부는 다뤄지지 않은 상태며, 한국 법정에서 다퉈진다는 얘기다.
대웅제약이 주장한 “미국 캘리포니아 주법원이 메디톡스가 제기한 민사소송은 부적합하다는 판단을 내렸다”라는 문구가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재판의 종료나 무혐의를 의미하는 것은 아닌 셈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미국 법원이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의미다"라고 설명했다.
재판 장소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변경되는 가장 큰 이유는 메디톡스가 한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두고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했기 때문이다.
메디톡스가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 법원에 제출한 소장을 보면 2008년 메디톡스에 근무하던 A씨는 ‘메디톡신’의 주 원료인 보툴리늄 독소 균주 저장소와 제품을 생산하는 제조공정 일체인 마스터 제어 레코드에 대한 접근권한이 갖고 있었다.
A씨는 대웅제약 R&D연구소에 근무 중인 B씨와 대학 지기로 친분이 있었는데, B씨가 A씨에게 메디톡스의 지적재산에 해당하는 메디톡신 원료 균주와 제어레코드를 유출하도록 종용했고 그 대가로 금품 12만달러와 미국 대학 연구실의 유급 박사 후 연구원 자리를 제공했다는 게 메디톡스의 주장이다.
메디톡스는 소장에서 “A씨와 B씨의 친분관계를 알게 된 이후 A씨의 컴퓨터 사용내역을 조사한 결과, A씨가 메디톡신 마스터 레코드 전체를 여러 번 출력했으며 이메일과 외부 드라이브 등을 이용해 유출한 정황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모두 한국에서 발생한 일이다.
메디톡스는 “핵심 피고인과 미국 기업이 소송 대상에 포함돼 미국에서 소송을 제기했다”라고 설명했다. 메디톡스가 제기한 민사소송 피고에는 대웅제약 뿐만 아니라 대웅제약의 미국 파트너사 알페온, 에볼루스 등이 포함됐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대웅제약의 미국 제휴 업체인 알페온과 에볼루스는 향후 균주 도용에 따른 혜택을 누릴 것으로 예상해 소송 대상에 포함했다”라고 설명했다. 핵심피고인 A씨 역시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한국에서 소송을 제기하면 원활하게 재판이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는 게 메디톡스 측 설명이다.
메디톡스가 즉각 국내서 소송을 제기할 뜻을 밝힘에 따라 국내서 법정 공방이 펼쳐질 전망이다. 다만 메디톡스의 당초 예상처럼 미국에 거주 중인 피고의 불출석 등으로 재판이 매끄럽게 진행되지 않으면 미국에서 소송이 재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