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2004년 대웅 동아 유한 등 제약사 독성 담당 연구원 30여명이 모인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국내 제약사들의 신약개발 도전이 많은 좌절을 겪었는데 연구원들이 실패 사례를 공유해 좋은 약, 블록버스터 탄생에 기여하자며 자발적으로 의기투합해 모임을 결성한 것입니다."
최연식 한국폴리텍 교수가 밝힌 한국비임상시험연구회의 설립 배경이다. 지난해부터 바이오산업, 신약개발 관련해 정보교류를 위한 다양한 커뮤니티가 생겨나고 있는데 비임상시험연구회가 그 원조격인 셈이다. 당시 유한양행 연구소에서 일했던 최 교수는 초대 회장을 맡아 비임상시험연구회의 산파역을 했다.
동아제약 출신으로 창립멤버이자 6대 회장인 김동환 건양대 교수는 "빅파마와 경쟁하려면 개별 제약사가 아닌 '대한민국 주식회사'가 돼야 하지 않겠냐는 취지로 모였다"고 했다. 각 제약사에서 공개하기 부담스러워하는 사례를 놓고 연구원들이 토론하고 경험을 축적한다는 소식은 소리소문없이 흘러 연구회를 키웠다.
10여년이 지난 지금 비임상시험연구회는 회원 수만 2500여명에 이르는 대형 연구회로 발전했다. 독성분야로부터 시작했지만 약효약리, 약동력학 등 비임상시험 전분야로 확장해 각각의 분과체계가 확립됐고 효율적인 의사결정을 위한 전문위원 체제도 구축됐다.
올 봄에 열린 비임상시험연구회 춘계행사(31차 워크숍)에 500여명, 지난 19~20일 열린 추계 행사(32차 워크숍)에 (제주도라는 지리적 여건에도 불구하고) 350여명이 모인 것은 비임상시험과 연구회에 대한 높은 관심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건이었다. 주최측은 처음 예상했던 200명을 훌쩍 넘은 참가인원에 숙소 확보 등의 문제로 골머리를 앓았다는 후문이다. 특히 이번 행사에는 중개연구를 하는 항암·안과·소화기질환 T2B(Tech To Biz)센터, 연세의료원 임상시험 글로벌선도센터 컨소시엄(SCI-C)과 같은 비임상시험 이후 단계에 관여하는 기관들까지 대거 참여했다.
비임상시험 분야는 최근 신약개발에서 가장 주목받는 분야다. 신약개발이 과거의 디스커버리, 전임상, 임상 1·2·3상으로 이르는 전통적인 개발 방식을 벗어나 '퀵 윈-페일 페스트(Quick-Win, Fail Fast)'로 변화하고 있어서다. 보다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POC(Proof of concept)에 도달하는 것으로 구체적으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후기 임상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기술적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노력이 확산하고 있는 것이다. 초기 디스커버리 단계에서 발굴한 후보물질을 비임상단계부터 성패를 검증하려는 노력이 강화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김동환 교수는 "비임상시험은 초기 디스커버리와 임상을 잇는 '브릿지'의 의미가 강조되고 있다"고 했다.
최근에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IT 개념을 적극 활용해 비임상시험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연구회가 김태순 신테카바이오 사장과 김진한 스탠다임 대표를 초청해 AI 관련 세션을 연 것도 이 때문이다. 현 회장(7대)인 이상호 한국산업기술평가관리원(KEIT) 바이오의약PD는 "비임상시험 단계의 시간을 줄이고 우수한 신약후보물질의 가능성을 예측하는데 AI와 빅데이터의 활용은 필수적"이라면서 "연구회 차원에서 2~3년전부터 고민해온 주제"라고 설명했다. 이번에는 한국산업기술관리평가원이 지원한 R&D의 성과발표회까지 더해져 행사가 더욱 풍성했다는 평가다.
비임상시험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국내 비임상시험 역량 강화에 대한 목소리도 커졌다. 이상호 회장은 "국내 비임상시험 기관들의 퀄리티가 글로벌 수준에 뒤처지지 않고 경쟁력이 있다. 국내 제약사나 바이오텍이 국내 비임상시험기관들을 믿고 활용했으면 한다"면서 "비임상시험기관들의 경쟁력 강화를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비임상시험연구회의 향후 계획도 역량 강화에 있다. 차기 회장(8대)인 오세웅 유한양행 이사(중앙연구소 R&D전략 팀장)은 "아카데미보다는 실무를 강화해 다양한 사례를 공유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서 "비임상시험 기관과 연구자들이 교류할 수 있는 마당을 만들어주는데도 노력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