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CJ그룹이 제약사업 자회사 CJ헬스케어를 매물로 내놓았다. 식품, 물류, 엔터테인먼트 등을 주력사업으로 육성하고 의약품 사업에서는 손을 떼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의약품 사업의 성장세가 더딘데다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엔 갈 길이 멀다는 판단에서 나온 결정으로 분석된다. 한화, 아모레퍼시픽, 롯데 등에 이어 또 다시 대기업 계열 제약사가 의약품 사업에서 실패를 인정하고 시장에서 철수하는 모습이다. 다만 삼성, SK, 코오롱 등 계열 제약사들은 해외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는 점이 긍정적인 신호다.
◇CJ, CJ헬스케어 매각 추진..의약품 사업 철수 시도
6일 업계에 따르면 CJ그룹은 CJ헬스케어의 매각을 추진한다. 최근 강석희 CJ헬스케어 사장은 CJ제일제당으로부터 매각 방침을 통보받고 직원들에게 해당 사실을 알린 것으로 전해졌다. CJ헬스케어 관계자는 “그룹 차원에서 매각 또는 상장 추진을 검토키로 했다”고 말했다. 사실상 매각을 결정하는 듯한 분위기다. CJ제일제당은 매각 주관사로 모건스탠리를 선정하고 조만간 주요 투자자들에 투자설명서를 발송할 예정이다.
현재로서는 CJ헬스케어의 매각 성사 여부나 매각 시기를 예측하기 어렵다. CJ헬스케어는 연 매출 5000억원대 규모의 몸집이 큰 제약사로 국내 제약업계에서는 마땅한 인수업체를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글로벌 기업이나 사모펀드가 인수에 나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CJ제일제당은 지난 3일 "CJ헬스케어 지분매각을 내부적으로 검토하고 있으나,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결정된 사항은 없다"며 공식입장을 발표했다.
CJ의 의약품 사업 매각설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CJ헬스케어는 CJ제일제당의 100% 자회사로 2014년 4월 CJ제일제당의 제약사업부문을 떼어 설립한 독립법인이다. 당시 CJ헬스케어의 분할이 의약품 사업 매각의 준비 단계일 것이라는 추측이 많았다. 실제로 다수의 제약사들이 인수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기존에 CJ제일제당 제약사업부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음료사업도 CJ헬스케어로 편입되면서 매각설은 수면 아래로 내려갔다. 만약 매각을 목표로 의약품 사업을 분리했다면 음료사업을 CJ헬스케어에 남겨둘 이유는 없을 것이란 이유에서다. 모 기업에서 CJ헬스케어를 분리할 당시 음료사업을 CJ헬스케어에 편입시킨 것은 안정적인 캐시카우를 활용해 R&D 역량을 확대하라는 의도가 담겼다는 분석에 힘이 실렸다. 숙취해소음료 ‘컨디션’, 헛개음료 ‘헛개수’ 등의 음료사업은 연간 700억원 이상의 매출을 올리는 ‘알짜 사업’이다.
업계에서는 CJ헬스케어의 매각 추진을 다소 의아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많다. CJ헬스케어가 그동안 국내외 시장에서 크게 주목받는 성과를 내지는 못했지만 독립법인 출범 이후 활발한 행보를 보이며 ‘홀로서기’와 ‘체질개선’에 성공하는 분위기였다.
CJ헬스케어의 지난해 매출은 CJ제일제당 소속 제약사업부문을 포함해 신기록이다. 의약품 사업에 진출한지 32년만에 처음으로 매출 5000억원을 돌파했다.
의약품 조사 업체 유비스트에 따르면 CJ헬스케어의 지난해 원외 처방실적은 2280억원으로 전년보다 9.0% 증가하며 주력 사업인 처방의약품 부문 성장세가 고무적이다.
신약 개발 움직임도 여느 때보다 활발하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CJ헬스케어가 지난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승인받은 임상시험 계획 건수는 총 28건(2014년 11건, 2015년 11건, 2016년 5건)으로 2007년부터 2013년까지 7년 동안 승인받은 임상시험 건수(28건)와 유사한 수준이다. CJ헬스케어 출범 이후 적극적으로 R&D 투자에 나섰다는 의미다.
현재 CJ헬스케어는 위식도역류질환치료제, 항구토제, 비알코올성지방간치료제 등 6개의 합성신약과 4개의 바이오의약품을 개발 중이다.
이중 위식도역류질환 치료제 ‘테고프라잔’은 CJ헬스케어가 지난 2015년 10월 중국제약사 뤄신과 1850만달러(약 2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한 신약 후보물질이다. 당시 이 계약은 국내 제약산업에서 한·중 거래 역사상 단일품목으로는 최대 규모의 기술 수출로 관심을 모았다. 테고프라잔은 ‘칼륨 경쟁적 위산분비억제제’라는 새로운 작용기전의 약물로 전 세계적으로 판매되는 위식도 역류질환 치료제 중 가장 최근에 등장한 약물이다. 지난 9월 국내 신약허가를 신청하며 상업화 단계가 임박했다.
CJ헬스케어는 지난 9월 일본 바이오의약품 기업 YL바이오로직스(YLB, YL Biologics)와 빈혈약 ‘네스프’의 바이오시밀러 ‘CJ-40001’의 기술수출 계약을 성사시키기도 했다.
CJ의 CJ헬스케어 매각 추진은 그룹 차원에서 사실상 의약품 사업에서 백기를 든 것을 의미한다. CJ는 지난 1984년 유풍제약을 인수하면서 의약품 사업에 뛰어들었고 2006년 한일약품을 사들였다.
사실 CJ는 ‘대기업 계열 제약사’이라는 눈높이에 못 미친다는 눈총을 받기도 했다. 의약품 매출도 복제약(제네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높다. 불법 리베이트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국내 신약개발 초창기 시절인 지난 2003년 150억원을 투입해 자체개발한 신약 '슈도박신'은 허가 받은지 6년만에 시장에서 철수하는 불운을 겪었다. 당초 희귀의약품으로 지정돼 일정 기간내 임상시험을 마치는 조건으로 허가받았지만 임상시험 과정에서 피험자를 확보하지 못하면서 자진 퇴장을 결정했다.
최근 점차적으로 신약개발 행보를 확장하고는 있지만 현실적으로 글로벌 무대에서 괄목할만한 성과를 내기에는 적잖은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실정이다.
그룹 차원에서 식품, 물류, 엔터테인먼트 등의 주력 사업에 집중하고 의약품 사업은 손을 떼는 ‘선택과 집중’ 차원에서 내린 결정으로 분석된다.
◇한화ㆍ아모레 등 의약품 사업 진출 이후 성과 미미..사업 매각
사실 그동안 대기업 계열 제약사의 시장 진입과 철수는 지속적으로 이뤄졌다. 한화와 아모레퍼시픽이 의약품 시장에서 고개를 떨궜다.
한화는 지난 1996년 의약사업부를 신설하고 2004년 에이치팜을 흡수합병하면서 드림파마로 사명을 변경했다. 2006년에는 한국메디텍제약을 인수하며 본격적으로 국내 의약품 시장 공략 채비를 마쳤다. 그러나 지난 2014년 드림파마의 지분을 100% 보유한 한화케미칼이 재무구조 개선을 이유로 드림파마를 미국 제약사 알보젠에 매각했다.
2015년 근화제약이 드림파마를 흡수 합병하고 알보젠코리아로 새롭게 출범하면서 '드림파마'라는 회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드림파마의 성과는 미미했다. ‘푸링’, ‘푸리민’ 등 제네릭 비만치료제가 간판 제품이다. 기존 의약품을 개선한 개량신약을 개발하며 수준 높은 합성기술을 선보이기도 했지만 글로벌 시장과는 거리가 멀었다. 지난 2011년에는 800억원대 규모의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가 적발되며 체면을 구겼다.
지난 2013년 아모레퍼시픽그룹은 태평양제약의 의약품 사업을 한독에 매각면서 의약품 사업에서 백기를 들었다.
태평양제약은 지난 1982년 태평양화학 의약품사업부에서 분사했다. 이후 30년 동안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사업을 영위하다 지난 2012년 모 그룹으로 다시 편입됐다. 태평양제약은 파스 제품 '케토톱'을 간판 제품으로 배출한 것을 제외하고는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지 못했다. 주력 사업도 드림파마와 마찬가지로 제네릭 의존도가 높았다.
태평양제약도 리베이트 사건에 연루된 이후 매각됐다. 태평양제약은 152억원 규모의 리베이트를 제공하다 적발돼 2011년 5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7억63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은 바 있다.
결국 아모레는 지난 2015년 3월 태평양제약의 사명을 에스트라로 변경하면서 태평양제약도 자취를 감추게 됐다.
드림파마와 태평양제약은 시장 점유율이 추락하는 시점에 매각이 이뤄졌다. 해외 시장보다는 내수 시장에만 안주하다 리베이트 규제강화, 약가인하 등 환경 변화로 실적이 부진하자 투자 확대로 의약품 사업을 육성하는 것보다는 사업 포기를 선택한 셈이다.
롯데제과도 롯데제약을 흡수 합병하면서 의약품 사업을 포기한 바 있다. 롯데는 지난 2002년 아이와이피엔에프를 인수, 롯데제약을 출범시키며 의약품 시장에 진입했지만 높은 진입장벽과 사업 집중화 등을 이유로 10년 만에 사업을 접었다.
LG그룹은 2002년 의약품 사업을 미래 성장동력으로 집중 육성하겠다며 LG생명과학을 분사했음에도 같은 이유를 들어 14년만에 모기업에 복귀시키며 LG생명과학의 홀로서기는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못했다. LG생명과학은 올해 1월부터 LG화학으로 흡수 합병됐다.
◇SKㆍ삼성ㆍ코오롱 등 글로벌 성과 예고
대기업 계열 제약사가 실패 사례만 남긴 것은 아니다. 삼성, SK, 코오롱 등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과감한 투자를 단행한 업체들이 점차적으로 성공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삼성은 지난 2010년 바이오의약품을 신수종 사업으로 지목한 이후 7년 만에 글로벌 시장에 빠른 속도로 침투 중이다.
삼성바이오에피스는 이미 유럽에서 4종(엔브렐, 레미케이드, 란투스, 휴미라)의 바이오시밀러를 허가받았다. 이중 엔브렐 바이오시밀러 '베네팔리'는 지난해 유럽 진출 이후 올해 3분기까지 3억5380만달러(약 40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미국 시장에는 레미케이드 바이오시밀러 ‘렌플렉시스’와 란투스 바이오시밀러 ‘루수두나’를 승인받은 바 있다. 국내에서 3개 바이오시밀러의 제품화에 성공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세계 최대 바이오의약품 위탁생산(CMO) 기업으로 도약할 채비를 갖췄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1공장(3만리터), 2공장(15만리터)을 가동 중으로 올해 3공장(18만 리터)이 완공되면 총 36만리터의 생산능력으로 글로벌 생산용량 1위 기업으로 등극한다. 1,2공장은 이미 미국식품의약품국(FDA) 승인을 획득했다. 삼성바이오로직스는 지난 3분기 매출액 매출액 1275억원, 영업이익 205억원을 기록했다.
지난 1987년에 삼신제약을 인수하면서 의약품 시장에 진출한 SK케미칼은 최근 백신사업에서 활발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SK케미칼은 차세대 백신 사업에 진출한지 9년 만에 3개 제품의 상업화에 성공했다. 지난 2015년 세계에서 두 번째로 세포배양 기술을 접목한 독감백신 ‘스카이플루’를 발매했고 지난해에는 세계 최초의 4가 세포배양 독감백신 ‘스카이셀플루4가’의 판매를 시작했다. 또 국내 기업 최초로 폐렴구균 백신과 대상포진 백신을 개발하며 백신주권 확보에 기여하는 공로를 세웠다.
SK케미칼은 백신 자급화를 목표로 2008년부터 총 4000억원을 투입해 백신 개발을 진행했다. 2012년 경북 안동에 2000억원을 투입해 건설한 백신공장 엘하우스(L HOUSE)에서는 △세포배양 △세균배양 △유전자재조합 △단백접합백신 등의 기반기술 및 생산설비를 보유해 대상포진백신을 포함해 국내에서 개발 가능한 대부분의 백신을 생산할 수 있는 인프라를 구축했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최근 국내 최초의 유전자치료제 '인보사'의 국내 허가를 받으며 오랜 기다림이 결실로 이어지는 분위기다. 코오롱생명과학은 지난해 말 일본 미쓰비시다나베제약과 인보사의 기술 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상업적 가능성을 인정받았다. 코오롱의 자회사 티슈진은 인보사의 미국과 유럽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이종혁 호서대 제약공학과 교수는 "제약산업은 중장기 전략을 통해 지속적으로 연구개발 투자를 진행해야 하며, 특화된 영업조직이 필요하다"면서 "일부 대기업과 같이 제약산업에 대한 이해도가 낮은 상황에서 진출, 단기적인 성과에 치중하면 실패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중장기 비전을 바탕으로 내수 시장에 머무르지 않고 글로벌 무대를 겨냥한 공격적이고 효율적인 전략을 구사하면 성과를 낼 수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