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대웅제약이 촉발한 '글리아티린의 대조약 논란'이 2년 가량 지났는데도 종착역이 보이지 않는다. 대웅제약이 자진 취하 제품의 대조약 지위 박탈, 오리지널 원료 사용 제품의 대조약 인정, 대조약 지정 고시 개정 등 보건당국의 행정을 두고 번번이 제동을 걸고 나서면서 논쟁이 장기화하고 있다. 행정공백 발생으로 정작 글라이티린 제네릭 개발을 시도하는 제약사들에 불똥이 튀는 형국이다. 대웅제약은 관계사의 제네릭 제품을 대조약으로 지정해야 된다는 새로운 논리를 제기하면서 공세를 멈추지 않을 태세다.
대조약은 기업이나 연구자가 개발하려는 의약품(시험약)의 비교 대상이 되는 의약품을 말한다. 제약사들이 제네릭 허가를 받을 때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지정한 대조약과 비교해 흡수 속도와 흡수율이 동등하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 주로 최초 허가된 오리지널 의약품이 대조약으로 지정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업체들 "대조약 없어 콜린알포세레이트 제네릭 개발 보류"
13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일부 제약업체들이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의 제네릭 개발을 위한 생물학적동등성시험 계획을 제출했지만 식약처 승인을 받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콜린알포세레이트는 뇌기능개선제로 사용되는 약물로 과거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이 오리지널 의약품이었다.
제약사들의 콜린알포세레이트 생물학적동등성시험 계획이 승인받지 못한 이유는 현재 대조약이 어떤 제품인지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식약처는 지난 9월 ‘종근당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대조약 선정 및 변경 공고 의견조회’를 실시했다. 식약처는 또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을 대조약 목록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의약품동등성시험 대조약 변경’을 공고했다. 이에 대웅제약이 최근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식약처의 대조약 선정 및 변경 공고에 대한 집행정지가 인용됐다.
제약사들은 대조약을 구할 수 없는 ‘황당한’ 처지에 놓였다. 대조약이 없어서 제네릭 개발이 지연되거나 중단된 것은 전례가 없다.
형식적으로는 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삭제와 종근당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지정 절차가 중단됐기 때문에 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지위가 유지된다. 하지만 글리아티린은 지난해 3월 허가가 취하된 제품일 뿐더러 허가 취하 전에 생산한 재고 모두 유효기한이 만료돼 사용할 수 없다.
지난해 3월 글리아티린의 허가 취하 이후 식약처가 대조약 변경 작업에 착수했지만 대웅제약의 이의제기로 대조약이 ‘글리아티린→종근당글리아티린→글리아티린→종근당글리아티린’으로 변경된데 이어 이번에는 대조약이 사라져버린 상황이 전개됐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콜린알포세레이트 제네릭 개발을 하고 싶어도 대조약이 없어 사업 계획에 차질이 빚어졌다. 식약처도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어 제약사들만 발만 동동 구르는 실정이다”라고 토로했다.
◇식약처 대조약 변경 때마다 대웅 이의 제기로 3번 변경..현재 대조약 無
지난해 글리아티린의 오리지널 원료의약품 판권이 대웅제약에서 종근당으로 넘어가면서 사건이 불거졌다.
대웅제약은 지난 2000년부터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로부터 글리아티린의 원료의약품을 공급받아 국내에서 완제의약품을 생산·판매해왔다. 하지만 지난해 1월 대웅제약과 이탈파마코와의 계약 종료와 함께 글리아티린 원료의약품 사용권한과 상표권은 종근당으로 넘어갔다. 종근당은 이탈파마코로부터 공급받은 원료의약품으로 완제의약품을 만들어 ‘종근당글리아티린’이라는 상표명으로 팔기 시작했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3월 글리아티린의 허가를 취하했다.
일부 제약사들이 기존에 대조약이던 글리아티린의 허가가 취하되자 제네릭 개발을 위해 비교할 새로운 대조약 변경을 요청했다. 식약처는 지난해 5월 글리아티린을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하고, 종근당글리아티린을 새롭게 대조약으로 지정한 내용을 담은 ‘의약품동등성시험 대조약 선정 공고’를 홈페이지에 게재했다.
대웅제약은 식약처의 대조약 변경이 타당하지 않다고 식약처를 대상으로 중앙행심위에 ‘의약품 동등성시험 대조약 변경공고 취소 청구’를 제기했다.
대웅제약은 글리아티린이 대조약 공고 삭제 시점에 시중에 충분히 유통되고 있었기 때문에 대조약 삭제 요건을 충족하는 경우가 아니라는 주장을 제기했다. 대웅제약은 대조약 변경 과정에서 사전통지나 의견조회 등 사전절차를 거치지 않아 대조약 삭제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논리도 펼쳤다. 또 종근당글리아티린이 국내 최초 허가된 원개발사의 품목이 아니라는 이유로 대조약으로 지정될 수 없다는 주장도 제기했다.
이에 중앙행심위는 대조약 지정 절차상 등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 대웅제약의 손을 들어줬다. 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지위 박탈도 관련 규정에 근거가 부족하다는 주장도 인정했다.
중앙행심위의 결정에 따른 후속조치로 식약처는 대조약 선정 공고를 이전으로 되돌려놓아야 했다.
식약처는 지난 2월 의약품 동등성시험 대조약 선정 공고를 통해 '콜린알포세레이트' 성분 의약품 중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다시 지정했다. 기존에 대조약으로 지정됐던 종근당의 '종근당글리아티린'은 대조약 지위를 상실했다.
이후 식약처는 행정심판에서 지적된 내용을 바탕으로 관련 규정 개정 작업을 진행했다.
식약처는 지난 4월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 개정을 통해 의약품 대조약 선정기준 중 원개발사의 품목을 명확하게 정하고 품목 취소(취하)된 품목을 대조약에서 삭제하는 내용 등을 반영했다. 글리아티린과 같이 허가가 사라진 의약품은 대조약에서 제외하는 근거를 마련한 것으로 글리아티린을 염두에 둔 규정이다.
식약처는 개정 고시된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을 근거로 지난 5월 글리아티린을 포함한 허가 취하 의약품을 대조약 목록에서 삭제하는 내용을 담은 '대조약 공고 삭제 품목 의견조회'를 진행했다. 중앙행심위가 대웅제약이 주장한 대조약 지정 절차가 문제 있다고 지적하자 사전 의견조회 절차를 거쳐 글리아티린을 다시 대조약에서 제외하겠다는 의도였다.
이 과정에서 종근당은 서울행정법원에 중앙행심위의 재결처분을 취소하는 행정소송을 냈다. 정부 기관은 행정심판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식약처와 같은 입장을 가진 종근당이 식약처를 위해 행정소송을 통해 행정심판의 부당성을 따졌다.
행정소송에서 종근당은 식약처가 행정심판에서 제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대조약이 제약사에 법률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제도가 아니라고 항변했다. 서울행정법원은 대조약이 구체적인 법률적인 이익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는 이유로 종근당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대웅제약은 약사법 등 근거 법률에 의해 보호되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이 있는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다”면서 “중앙행심위의 재결이 위법하기 때문에 취소해야 한다”라고 결론내렸다.
서울행정법원의 판결이 나오자 식약처는 지난 9월 ‘종근당글리아티린’ 등 20여개 품목을 생동대조약으로 지정하는 내용을 담은 ‘대조약 선정 및 변경 공고 의견조회’를 10월13일까지 실시한다고 밝혔다. 식약처는 또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을 대조약 목록에서 제외하는 내용의 ‘의약품동등성시험 대조약 변경’을 공고했다.
하지만 또 다시 대웅제약이 제동을 걸었다. 대웅제약은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식약처의 대조약 선정 및 변경 공고에 대한 집행정지를 신청했다. 중앙행심위는 “글리아티린을 의약품 동등성시험 대조약에서 제외한 의약품 동등성시험 대조약 변경 공고의 집행을 글리아티린 제외 부분에 한하여 동 공고에 대한 심판청구사건의 재결이 있을 때까지 정지한다”고 받아들였다.
◇대웅 “허가취하 약 유효기간 만료..관계사 제품 대조약 지정”
이런 상황에서 대웅제약은 최근 관계사인 대웅바이오의 ‘글리아타민’이 대조약으로 지정돼야 한다는 주장을 제기했다.
대웅바이오는 지난 9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관계사인 대웅바이오의 ‘글리아타민’이 대조약으로 지정돼야 한다는 ‘새로운 논리’를 꺼내들었다. 종근당글리아티린을 원개발사 품목으로 인정할 수 없기 때문에 제네릭 제품 중 매출이 가장 많은 글라아타민이 대조약으로 선정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이다.
양병국 대웅바이오 대표는 “종근당글리아티린은 기존 제네릭 ‘알포코’와 품목코드와 보험약가 코드가 동일한 제네릭이다”면서 “제네릭은 원개발사 품목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종근당이 오리지널 의약품의 원료의약품을 사용했다는 이유로 원 개발사 품목으로 인정되면 안된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양 대표는 “대웅바이오의 글리아타민은 콜린알포세레이트 시장의 마켓리더임과 동시에 기존 대조약인 대웅제약 글리아티린과 본질적으로 가장 유사하며 최적화된 제제기술을 이어받은 제품이다”라고 자평했다. 양 대표는 질병관리본부장 출신으로 지난 2월 대웅바이오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대웅바이오 “대조약은 상징적 의미”..식약처·종근당 "어불성설"
대웅제약의 지속적인 대조약 지정 관련 문제 제기에 대해 제약업계에서는 우호적인 시각을 찾기 힘들다.
우선 대조약이 제약기업에 이익을 제공하는 제도라는 대웅제약의 주장이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양병국 대웅바이오 대표는 “대조약은 제네릭 개발에서 기준이 되는 의약품이기 때문에 상징성이 크다”라고 주장했다.
대조약이 기업에 부여하는 이익에 대해 중앙행심위는 대웅제약의 주장을 인정했지만 서울행정법원은 중앙행심위의 결정이 무효라고 판결내린 상태다.
중앙행심위는 “대조약은 관련 고시에서 정한 우선 순위에 따라 한 개의 품목만 선정되고 대조약으로 선정된 의약품은 향후 의약품을 개발하는 모든 제약사의 동등성시험에 있어 기준이 되는 의약품이라는 지위를 갖게 된다”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서울행정법원은 "식약처가 대조약을 선정하는 것은 새로운 의약품의 품목허가를 받으려는 제약사에 필요한 동등성시험을 실시하기 위한 기준을 설정해 주는 의미를 가질 뿐, 이미 품목허가를 마친 대조약 제약사의 구체적인 이익을 보호하는 것과는 관계없다"고 판단했다.
서울행정법원은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이 대조약으로 선정돼 있을 때 판매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있다고 하더라도 이는 간접적이거나 사실적·경제적 이해관계에 불과하다”면서 대조약 지위가 이익을 제공한다는 대웅제약과 중앙행심위의 판단을 일축했다.
대웅제약이 종근당글리아티린을 원 개발사 품목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이미 식약처는 원개발사 품목으로 인정한다고 결론내렸다.
식약처는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의 대조약 선정기준에서 ‘원개발사의 품목(R&D Focus, Pharma Project 등 공신력있는 자료를 통해 이를 입증한 경우에 한하며, 여러 품목인 경우 이들 품목 중 허가일자가 빠른 것으로 한다.)’라는 규정을 적용해 종근당글리아티린을 대조약으로 재지정했다.
식약처 관계자는 “글리아티린의 원 개발사인 이탈파마코와 종근당과의 계약관계를 보면 종근당이 원 개발사의 안전성과 유효성 정보를 공유한 것으로 판단했다”라고 설명했다. 종근당이 원 개발사가 축적한 자료를 공유하면서 종근당글리아티린을 생산했기 때문에 원 개발사로부터 기술이전받은 제품이라는 점을 인정했다는 의미다.
종근당이 이탈파마코로부터 기술이전을 받았다는 근거는 'R&D 포커스(Focus)'라는 공신력있는 자료를 통해 입증됐다는 게 식약처 설명이다. R&D 포커스는 IMS가 발간하는 자료로, 주로 의약품의 개발과정이나 라이선스 현황 등에 대한 내용이 담긴다. 이탈파마코의 글리아티린에 대한 R&D 포커스를 보면 국내에서는 종근당이 권리를 갖는다고 명시됐다. 오스트리아는 CSC, 스위스는 노바티스 등이 글리아티린의 권리를 갖는다.
‘원 개발사의 품목이 여러 품목일 경우 허가일자가 빠른 제품’이라는 조건에도 종근당글리아티린이 부합한다. 식약처에 따르면 당초 원 개발사인 이탈파마코로부터 동화약품, 대웅제약을 거쳐 종근당에 글리아티린의 권리가 부여됐다. 이미 동화약품과 대웅제약은 원 개발사로부터 권리를 부여받은 제품이 없는 상태다. 종근당글리아티린이 ‘원 개발사의 품목 중 허가일자가 빠른 제품’이라는 조건을 충족하는 유일한 제품이라고 식약처는 판단했다.
대웅제약이 글리아티린 재고분의 유효기간이 만료돼 대웅바이오의 글리아타민으로 대조약이 변경돼야 한다는 대웅 측 주장도 명분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웅은 글리아티린을 더 이상 구할 수 없기 때문에 대조약을 글리아타민으로 변경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미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은 지난해 3월 허가를 취하하면서 기존 생산 제품의 유효기간은 대조약 지위와는 무관하다는 게 식약처 시각이다.
식약처는 지난 5월 의약품동등성시험기준 개정을 통해 ‘대조약으로 이미 선정된 품목이 품목취소 또는 취하된 경우 품목취소 또는 취하수리와 동시에 대조약 선정이 취소된 것으로 본다“라는 규정을 반영, 허가 취소(취하) 제품을 대조약에서 제외하는 근거를 명시했다.
당초 식약처는 허가가 사라진 제품에 대해 대조약 지위를 인정하는 것은 전례가 없다는 판단에 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삭제 입장을 분명히했다. 대조약선정기준을 보면 ‘대조약은 주성분의 종류 및 그 함량과 제형·투여경로가 동일하게 허가(신고)된 품목 중 다음 각 호의 순서로 선정한다’라고 규정돼있다. 대조약은 허가된 제품 중에서 선정하기 때문에 허가가 없어진 글리아티린이 대조약으로 지정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대웅제약의 잇따른 문제제기에 허가취하 제품의 대조약 제외 근거를 반영했다.
애초부터 대웅제약이 종근당에 글리아티린의 허가권을 양도양수했다면 이러한 혼란은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종근당이 대웅제약으로부터 글리아티린의 제조에 대한 기술이전을 받고 모든 권한을 넘겨받았으면 대조약 지위를 포함한 모든 권한이 승계되기 때문이다. 대웅제약 역시 동화약품으로부터 글리아티린을 양도양수받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종근당과 대웅제약은 엇갈린 반응이다. 종근당 측은 "당초 대웅제약으로부터 글리아티린의 양도양수와 함께 재고분의 인수를 요청했지만 대웅제약은 거절했다"라고 말했다. 대웅제약 측은 “종근당으로부터 양도양수 제안이 들어오지 않았다”라고 반박했다.
국내제약사 한 관계자는 “실질적인 이익과 무관한 대조약 지위를 두고 소모적인 논쟁이 길어지고 정부의 행정도 번복되면서 의약품 동등성 제도에 대한 신뢰도마저 의심받는 상황이다. 제약사들은 대조약이 없어 제네릭 개발도 못하는 말도 안되는 상황이 펼쳐지는데 누구도 책임지지 않고 있다”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