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동화약품의 손지훈 대표이사가 임기를 1년 남기고 회사를 떠나 휴젤로 자리를 옮겼다. 5명의 전문경영인이 연속으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는 불명예가 계속됐다. 다만 손 대표는 지난 2년 동안 의욕있게 회사의 체질개선을 이끌고 어느 정도 성과를 냈다는 점에서 문책성 경질로 보였던 기존 대표들의 퇴사와는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휴젤은 이사회를 열어 내년 1월부터 손지훈 동화약품 사장을 신임 대표로 선임키로 했다. 손지훈 사장은 내년부터 심주엽 대표와 함께 휴젤의 공동대표를 맡는다.
손지훈 사장은 지난해 1월부터 2년째 동화약품을 이끌고 있는 현직 대표이사다. 임기 만료일은 2019년 3월25일로 1년 3개월 가량 남은 상태다.
업계에서 손 사장의 임기 만료 전 이직이 주목받는 이유는 최근 들어 5명 대표이사가 연속으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그만뒀기 때문이다.
당초 동화약품은 창업주 3세인 윤도준-윤길준 각자 대표이사 체제를 운영하다 2008년 2월 평사원 출신 조창수 대표를 선임한 이후 오너-전문경영인 각자 대표체제를 지속 중이다. 그러나 조창수 대표가 임기만료일(2014년 3월18일)을 1년 앞두고 그만두면서 전문경영인 대표이사의 ‘단명’이 시작됐다.
얀센 출신의 박제화 부회장이 2012년 3월 대표이사로 선임된 이후 1년 7개월만에 돌연 사임했다. 한국화이자 28년 경력의 이숭래 사장이 대표이사 바통을 이어받았지만 1년 11개월만에 물러났다. 이후 동화약품에 22년간 근무가 오희수 상무가 6개월간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지난해 3월 손지훈 대표이사로 교체됐다.
5명의 전문경영인 대표이사가 임기를 마치지 않고 ‘일신상의 사유’로 회사를 그만뒀고 2013년 10월부터 4년 동안 4명의 전문경영인이 회사를 떠난 셈이다.
기존에 회사를 그만둔 전문경영인들의 경우 ‘문책성 경질’이라는 의혹이 많았다. 동화약품의 실적이 신통치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동화약품은 2000년 의약분업 시행 이후 국내 의약품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했다. 지난 2000년 동화약품은 매출 1264억원으로 국내제약사 중 8위에 랭크했지만 현재 20위권 밖으로 밀려난지 오래다. 당시 동화약품과 비슷한 매출을 기록했던 한미약품(2000년 매출 1491억원)이 비약적인 성장을 나타낸 것과 대조적이다.
연도별 동화약품의 매출을 보면 지난 2010년 2153억원에서 2015년 2232억원으로 5년 동안 3.7% 증가하는데 그쳤다. 2013년부터 2015년까지 3년 동안에는 영업이익이 100억원에도 못 미쳤다. 동화약품의 2015년 영업이익은 48억원으로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2.2%에 불과했다.
체질개선이 더뎠다. 국내 유수의 제약사들은 축적된 연구개발(R&D) 역량을 바탕으로 신약, 개량신약 등 전문의약품 영역에서 차별화된 경쟁력을 확보했지만 동화약품은 전문약 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했다. 동화약품의 지난해 주력 제품의 매출을 살펴보면 액상소화제 활명수(536억원), 상처치료제 후시딘(191억원) 등 장수 일반의약품이 여전히 간판제품이다. 이중 후시단은 덴마크 제약사 레오파마로부터 도입한 제품이다.
2012년부터 다국적제약사 출신 최고경영자(CEO)를 연이어 발탁했지만 좀처럼 실적 개선 징후는 나타나지 않았다.
신약 성과도 미미했다. 동화약품은 2007년 미국 P&G사와 총 5억달러 규모의 골다공증치료제 수출 계약을 맺었지만 이후 백지화됐다. 국산신약 3호로 허가받은 ‘밀리칸’은 시장성이 없다는 이유로 2012년 시장에서 철수했다. 2015년 허가받은 신약 ‘자보란테’는 아직 매출이 미미한 수준이다.
2014년 말에는 의사들에게 50억원대 규모의 리베이트를 건넨 혐의로 적발되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직원들도 대거 회사를 떠난 것으로 나타났다. 동화약품이 사업보고서에서 공개한 직원 수를 보면 2009년 말 858명에서 지난해 말 668명으로 190명 감소했다.
하지만 손지훈 사장의 부임 이후에는 기존에 비해 동화약품의 체질개선 노력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동화약품은 지난해 매출 2375억원, 영업이익 113억원으로 전년대비 각각 6.4%, 133.9% 상승하며 모처럼 실적 개선을 나타냈다.
간판 제품 활명수의 편의점 시장 공략이 주효했다. 활명수의 편의점용 제품 ‘까스활’은 지난해 발매 첫해에 122억원의 매출을 기록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떠올랐다.
최근 다양한 사업 영역에 속속 진출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확보하려는 강한 의지가 읽힌다.
동화약품은 지난 2월 젠자임코리아와 유착방지제 ‘세프라필름’의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했고 4월에는 사노피아벤티스코리아의 항혈전제 ‘플라빅스’의 국내 의원 독점 판권을 확보했다.
지난 7월에는 바이오기업 강스템바이오텍과 조인트 벤처 앤케이코퍼레이션을 설립하고 줄기세포 배양액을 이용한 화장품, 의약품, 의료기기 등의 공동개발 및 사업화에 착수했다. 글락소스미스클라인(GSK)의 일반의약품과 의약외품 5종의 판매도 지난 10월부터 새롭게 시작했다.
동화약품은 지난해 감기약 ‘판콜에스’를 미국과 캄보디아 시장에 수출하기 시작했고 지난 1월 중동ㆍ북아프리카 12개국에 자보란테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신약 개발 움직임도 과거보다 활발한 편이다. 현재 동화약품은 합성신약(항생제, 혈액암), 천연물의약품(염증성장질환, 과민성방광증, 천식), 개량신약(유방암, 소염진통, 순환기, 중추신경계), 기능성원료(인지기능, 체지방, 아토피)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연구개발(R&D) 파이프라인을 보유 중이다.
지난달에는 안양 공장 부지 매각을 9년 만에 완료해 현금 850억원을 확보하며 한시름 덜었다. 동화약품은 지난 2008년부터 안양공장을 충주 공장으로 이전하면서 안양 부지 매각을 추진했다. 그러나 계약 상대방의 중도금 및 잔금지급의무 불이행으로 계약이 해지되는 등 진통을 겪기도 했다.
손 대표의 부임 2년 만에 과거에 비해 다양한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기존 대표들과는 성격이 다른 사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는다. 회사 직원 수도 올해 3분기 말 기준 708명으로 지난해 말보다 40명 늘었다.
동화약품 관계자는 “손지훈 대표가 휴젤의 대표 영입 제안을 받고 오랜 고민을 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