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올해는 제약사들의 새 먹거리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외형 확대와 연구개발(R&D) 재원 마련을 목표로 동일 영역에 무차별적으로 뛰어드는 과당 경쟁이 반복됐다. 국내업체간 경쟁으로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판권이 수시로 옮겨갔으며 과거 블루오션으로 지목됐던 영역들도 점차적으로 레드오션으로 변모했다.
◇국내업체들, 다국적사 신약 판권 러브콜..바이오기업 제휴 확대
27일 업계에 따르면 올해에도 제약사들의 도입신약 판권 확보전이 지속됐다.
녹십자는 지난 1월 한국MSD와 대상포진 백신 ‘조스타박스’, 자궁경부암 백신 ‘가다실ㆍ가다실9’의 공동판매 계약을 체결했다.
유한양행은 지난 8월 길리어드사이언스의 C형간염약 ‘소발디’와 ‘하보니’의 공동판매 계약을 맺은 데 이어 10월부터는 삼성바이오에피스가 개발한 바이오시밀러 ‘브렌시스’와 ‘렌플렉시스’의 국내 유통·판매를 시작했다.
종근당은 지난 9월 암젠과 골다공증치료제 ‘프롤리아’의 공동판매 계약을 체결했고 최근 한국화이자제약의 폐렴구균백신 ‘프리베나13’ 성인용 제품의 국내 유통에 돌입했다.
동아에스티는 지난 5월 일본 카켄제약이 개발한 손발톱무좀약 ‘주블리아’를 국내 출시했고 이달부터 다케다제약의 고혈압치료제 ‘이달비’의 판매를 개시했다. 동화약품은 지난 2월 젠자임코리아와 유착방지제 ‘세프라필름’의 국내 독점 유통 계약을 체결했고 4월과 9월 사노피아벤티스의 항혈전제 ‘플라빅스’과 MSD의 항우울제 ‘레메론’의 국내 공동판매를 시작했다.
대웅제약은 10월 산도스의 골다공증치료제 '산도스졸레드론산주'의 국내 판권과 허가권을 인수한데이어 최근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항암 바이오시밀러 ‘삼페넷’의 국내 판매에 돌입했다.
JW중외제약은 지난 5월 쥬가이제약과 A형 혈우병치료제 ‘에미시주맙’의 국내 판매를 위한 독점 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고, 10월 일본 에자이그룹 EA제약과 혈액투석환자를 위한 이차성 부갑상선 기능항진증(SHPT) 치료제 ‘AJT240’에 대한 국내 임상 및 판매 라이선스계약을 맺었다.
한독은 10월 한독테바의 천식·COPD치료제 ‘듀오레스피 스피로맥스’와 중증 호산구성 천식치료 신약 ‘싱케어주’의 공동판매에 착수했고 최근 악텔리온파마수티컬즈의 폐동맥고혈압치료제 '업트라비'의 국내 판권을 확보했다.
제일약품(항암제 ‘론설프’), 광동제약 (여성 성욕장애 치료 신약후보 ‘브레멜라노타이드’), 휴온스(흡입용 천식치료제 ‘제피러스’) 등도 해외기업으로부터 신약의 국내 판권을 확보했다.
새로운 사업영역에 도전장을 내밀거나 국내외 바이오기업과 제휴를 타진하는 사례도 눈에 띈다.
유한양행은 지난 3월 20억원을 투자해 임플란트 제조 업체 워랜텍을 인수한데 이어 동물백신 개발 바이오업체 바이오포아에 20억1600만원을 투자해 지분 6.13%를 취득했다. 지난 5월에는 뷰티·헬스 전문 자회사 유한필리아를 설립했고 지난달에는 연세대 의료원이 중국에 건립을 추진 중인 영리병원 칭다오세브란스병원에 200억원을 투자했다.
동아에스티는 지난 4월 바이오벤처 네오믹스와 탈모치료제 개발을 위한 공동연구 계약을 맺었고 동화약품은 강스템바이오텍과 조인트 벤처 앤케이코퍼레이션을 설립하고 줄기세포 배양액을 이용한 화장품, 의약품, 의료기기 등의 공동개발 및 사업화에 착수했다.
동국제약은 지난 5월 조영제 사업 부문을 전담하는 동국생명과학을 설립했다. 동국제약은 2015년 론칭한 화장품 브랜드 '센텔리안24'가 지난해 400억원 가량의 매출을 기록하며 ‘신사업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CJ헬스케어는 바이오기업 뉴라클사이언스와 앱콘텍에 각각 20억원을 투자했다. 메디톡스도 바이오벤처 엠틱스바이오에 20억원을 투자했다. 일동제약은 지난달 미국 바이오업체 앤트리아비이오, 국내 바이오기업 PH파마와의 3자 계약을 통해 당뇨치료 후보물질 ‘AB101'의 국내 판권을 확보하기도 했다.
새로운 성장동력을 발굴하기 위한 적극적인 행보다. 자체 R&D 역량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 동력 발굴이 어렵다는 현실에 다국적제약의 신약 판매로 외형을 확대하고 R&D재원을 마련하겠다는 노림수다. 또 국내외 바이오기업과의 투자와 제휴를 확대하면서 신약 파이프라인을 확대하겠다는 전략이다.
하지만 국내제약사간 새 먹거리 발굴 경쟁으로 인한 부작용도 감지된다. 최근에는 국내제약사간 신약 판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수시로 국내 판매 업체가 변경되는 사례도 속출한다. 종근당이 올해부터 판매를 시작한 MSD 비염치료제 ‘나조넥스’와 화이자의 폐렴구균백신 ‘프리베나13’은 기존에 유한양행이 판매했다. 녹십자가 새롭게 판매에 가세한 자궁경부암백신 ‘가다실’은 SK케미칼이 종전에 판매를 맡았다.
다국적제약사의 신약 판매 확대는 ‘남의 제품’ 의존도의 상승을 의미한다. 올해 상반기 주요 코스피 제약사 15곳의 상반기 매출액은 총 4조2553억원으로 전년동기대비 5.8% 증가했는데 상품매출 규모는 1조7732억원으로 전년보다 10.5% 늘었다. 매출에 비해 상품매출 성장률이 2배 가량 높은 셈이다.
올해 상반기 15개 제약사의 매출액은 전년동기대비 2323억원 늘었는데, 상품매출은 1687억원 증가했다. 매출 증가분의 70% 가량은 상품매출이 차지했다는 의미다. 제약사들의 매출에서 상품매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상반기 39.9%에서 올해 상반기 41.7%로 1.8%포인트 증가했다.
◇R&D전략 경쟁사 따라하기로 블루오션 레드오션化..업체간 갈등 확산 조짐
제약사들의 새 먹거리 확보 경쟁은 기존에 블루오션 영역으로 평가받던 개량신약 분야도 레드오션으로 변모하는데 일조했다.
한미약품은 지난 7월 2개의 고혈압치료제와 1개의 고지혈증치료제를 결합한 3제 복합신약 ‘아모잘탄큐’의 허가를 승인받았다. 아모잘탄큐는 ARB 계열 고혈압치료 성분(로사르탄)과 CCB 계열 고혈압치료 성분(암로디핀)에 고지혈증치료 성분 ‘로수바스타틴’을 결합한 세계 최초의 제품이다.
하지만 이미 종근당, 경동제약, 대원제약, 일동제약, 대웅제약, 보령제약, 유한양행, 제일약품 등이 CCB계열 고혈압약(암로디핀, S암로디핀)과 ARB계열 고혈압약(텔미사르탄, 피마사르탄, 올메사르탄, 발사르탄)에 로수바스타틴을 결합한 복합제 개발에 착수, 아모잘탄큐의 시장 선점 효과는 길지 않을 전망이다.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 시장도 이미 과열경쟁 구도다. 지난 2013년 대웅제약이 ‘올메사르탄’과 ‘로수바스타틴’으로 구성된 ‘올로스타’를 허가받았고 한미약품, LG화학(옛 LG생명과학), 유한양행, 일동제약 등 10여개 업체가 이 시장에 진입했다.
이미 고혈압·고지혈증 복합제는 지난 2014년 발매된 화이자의 ‘카듀엣’과 카듀엣의 제네릭 40여개 제품이 등장한 상태다. 국내제약사들이 연구개발(R&D)을 통해 새로운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50여개 업체가 경쟁하는 구도인 셈이다.
두 개의 고지혈증치료제(로수바스타틴+에제티미브)로 구성된 복합제의 경우 한미약품을 필두로 동아에스티, 제일약품, 한독 등 20여개사가 동일 성분의 제품을 허가받았다.
이와 함께 메디톡스와 휴젤이 성공적으로 시장을 개척한 보툴리눔독소제제의 경우 대웅제약에 이어 휴온스, 파마리서치프로덕트 등이 속속 진입할 채비다. 대웅제약은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에 보툴리눔독소제제 ‘나보타’의 허가를 신청했고, 휴온스는 지난 10월 ‘휴톡스’의 임상3상시험을 시작했다. 파마리서치프로덕트는 최근 보툴리눔톡신제제를 개발하는 국내 바이오기업 바이오씨앤디를 인수하며 보툴리눔 시장 진출을 선언했다.
국내기업들의 캐시카우 역할을 했던 제네릭 시장의 과당경쟁도 여전히 진행형이다.
지난해 말부터 본격적인 제네릭 경쟁이 시작된 베링거인겔하임의 고혈압복합제 ‘트윈스타’의 경우 제네릭 제품이 무려 204개(80/50mg 73개, 40/50mg 69개, 40/10mg 62개) 등장했다. 지난 8월 특허가 만료된 독감치료제 ‘타미플루’도 100개 이상의 제네릭 제품이 쏟아졌다.
제약사들의 새 먹거리 발굴 경쟁은 제약사들간 다양한 갈등을 야기하기도 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올해 들어 제기된 특허심판은 총 331건으로 지난해 245건보다 35% 늘었다. 제약사들이 하루라도 먼저 제네릭을 출시하기 위해 전방위로 특허소송을 펼치고 있는 상황이다.
최근에는 보툴리눔균주도용 소송(메디톡스-대웅제약), 대조약 지정 소송(대웅제약-식약처), 특허 지분 소송(이연제약-바이로메드) 등 재산권을 두고 기업들 또는 기업-정부간 새로운 유형의 소송이 무분별하게 펼쳐지는 형국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유사한 역량의 제약사들이 차별화된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상황에서 유사 영역을 집중적으로 두드리거나 R&D전략도 모방하면서 블루오션 영역이 사라져가고 있다”면서 “비슷한 유형의 제약사들의 ‘제살깎기식’ 경쟁으로 업체간 갈등도 심화하는 추세다”라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