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현 비티솔루션즈 대표
2016년 8월 31일. 정년퇴임을 강제하지 않는 미국의 연방정부, 그것도 지금 바이오가 대세인 21세기 들어 가장 핫한 연방정부기관인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그만둔 날이다.
다들 미쳤다고 했다. 그런 직장을 왜 그만두느냐는 뜻이었다.
하지만 부모님께서 병환으로 생활하기 힘드신 것을 집안의 유일한 아들로서(남녀차별이라는 비판이 없길 바란다. 그냥 순수한 의미로 선택한 단어이다) 비행기로 14시간 건너편의 미국에서 보고만 있을 수가 없어서 직장을 그만 두고 한국으로 왔다. 가족도 미국에 놔둔 채 무작정 왔다.
어머니는 나를 항상 아껴주셨고 마지막까지 내가 한국에 너무 늦게 돌아온 것을 덜 후회하게 해주시려고, 귀국후 1년을 병마와 싸우시며 내 곁에 계시다 2017년 여름에 떠나셨다.
그런 직장을 '왜 그만두었을까'라는 후회는 없고 미국에서 고생하는 가족들에게 고맙고 미안할 따름이다.
FDA에서 연구심사관을 하였기에 연구하던 의료기기 관련 기술로 의료기기 제조업 창업도 생각했지만, 당장 미국으로 생활비를 벌어서 부쳐야 하는 상황이라 10여년 해왔던 지식과 경험을 바탕으로 비티솔루션즈라는 의료제품의 규제기관 승인을 도와주는 컨설팅 회사를 시작했다. 2016년 10월에 창업을 했으니 벌써 1년 반이 넘었고, 나름 많이들 찾아 주셨고, FDA 승인을 받는 것으로 보답도 하였다. 의료기기의 미국 FDA 승인 컨설팅에만 국한되지 않고, 의약품, 그리고 미국 이외의 국가에 대한 승인도 컨설팅 영역으로 넓히려 했으나 적합한 인재를 구하지 못하여 금년 상반기에나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 연유로, 지난 1년여간 의료기기의 미국 FDA 승인을 컨설팅 하면서 느낀 점들을 몇가지 써보려 한다. 단지 개인의 컨설팅 사업 경험담을 늘어 놓을 이유는 없고, 의료기기의 FDA 승인 및 컨설팅 업이라는 것을 독자들이 좀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생각이다.
컨설팅은 대행이다?
간혹 잘 설명을 하고 FDA 승인을 도와드리는 것으로 컨설팅 계약을 맺었는데 문서작성 대행을 해주지 않는다는 불만을 접한 경우가 몇번 있다. 컨설팅(Consulting)이란 대체 무슨 일을 하는 걸까? 사전적 의미를 찾아보면 “전문가적 의견을 다른 분야에서 일하는 비즈니스 파트너에게 제공하여 돕는 행위”라고 한다. 예를 들자면, 나 같은 의료기기 컨설팅 전문가는 재테크에 대해서는 잘 모르기에 자산운용 전문가에게 의견을 물어 앞으로 노후를 대비하는 재테크 방법에 대해 도움을 받으면, 나는 그 자산운용 전문가에게 컨설팅을 받은 것이 된다.
내가 하는 일에 그 공식을 대입해보면, 의료기기를 개발한 친구에게 의료기기의 FDA 승인을 받기 위해서 기기의 독성검사를 어떻게 하라고 조언을 주면, 난 그 친구에게 컨설팅을 해준 것이 된다.
물론, 그 친구가 독성검사를 아예 전부 다 해 달라고 부탁할 경우 대신해서 그걸 직접 하거나 전문업체에 맡겨 실행할 수도 있는데, 그 경우 내가 한 행위는 컨설팅과 함께 독성검사를 대행해 준 것이 된다.
이렇듯 승인 컨설팅과 승인 대행은 분명 다른 종류의 업무이나, 간혹 그 둘을 정확히 구분하지 않는 분들도 있다. 컨설팅으로 말만 해서 방향을 제시하는데 자문료는 왜 받냐는 불만을 토로하기도 한다. 컨설턴트라는 직업이 좀더 보편화되어 눈에 보이는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는 않더라도, 전문가적 의견을 제공하는 일도 충분히 보상을 해줘야 하는 업무 영역이란 의식이 당연시 되었으면 한다.
QSR이야 GMP야?
내 전문 영역은 승인 및 그와 관련된 의료기기 연구이다. 하지만 사후 관리도 어느 정도 아는 척 할 정도는 된다. FDA 의료기기 승인 시, 주로 3등급 기기들의 승인에 해당하는 PMA (pre-market approval) 과정이 아니고는 2등급(예외는 있음) 기기의 인가에 해당하는 510(k)나 1등급(예외는 있음) 기기의 등록과정에 GMP 인증을 받을 필요는 없다.
이런 질문을 가끔 받는다. 1등급으로 등록하면 GMP 인증서는 안 받아도 되는 것 아닌가? 그래도 QSR(Quality System Regulation)은 해야 되는 건가?
우선, 미국 연방 정부의 규제에 대해 알아야 할 것이 있다. 다른 모든 나라가 그렇겠지만, FDA란 정부기관에서 민간 기업이나 민간인에 대해 어떤 규제를 하려면 관련 법규가 있어야 한다. 그 법규가 CFR(Code of Federal Regulation) 즉 연방 규제 법안이다. CFR Title 21의 Part 820이 'Quality System Regulation'이라는 법규이다. 즉 의료기기 (의약품 등도 마찬가지) 제조업체는 품질을 관리하고 소비자에게 전해지는 제품들의 품질이 균일하고 양호하다는 것을 보장하는 시스템적 방법을 수립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고, 그건 법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법으로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걸 어기면 FDA에게 제재를 받는다.
이 21 CFR 820의 제일 첫번째 항목에 'current good manufacturing practice(cGMP)'가 언급되어 있다. 다시 말해 FDA에서 말하는 quality system이란 cGMP를 일컫는다는 것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cGMP는 법으로 정해진 QSR의 일부라고 보이나, 둘을 동일하다고 말해도 크게 틀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1등급으로 등록하면 GMP 인증서는 안 받아도 되지만 QSR은 지켜야 하는가? 앞서 말했듯 GMP(즉, cGMP)와 QSR은 동일하게 간주하면 되고, 따라서 모든 의료기기는, 그것이 1등급이든 3등급이든 특별히 GMP-exempt라고 명시되어 있지 않는 한 cGMP/QSR을 따라 생산되어야 한다. GMP 인증서라는 것은 따로 FDA에서 요구하지는 않고 있다.
자기 회사 제품이 GMP-exempt인지 FDA 웹사이트를 통해 검색을 해보고, 제외되어 있지 않다면 무조건 QSR/cGMP를 갖추어 의료기기를 생산해야 한다. 단, 무슨 인증서를 받아 놓고 생산해야 한다는 의미가 아니다. QSR/cGMP에 대해 충분히 이해한 후, 그 규정에 맞추어 제품을 생산하면 된다.
To CLIA or not to CLIA?
매우 전문적인 질문이라 셰익스피어는 이에 대한 답을 절대로 모를 것이 분명하다. CLIA란 'Clinical Laboratory Improvement Amendment'라는 미국의 수정 법조항으로서, 보통 체외진단을 실행하는 랩을 규제하는 법안을 일컫는데 통상 그 랩을 의미하는 말로도 쓰인다. 엄밀하게 말하면 랩을 의미할 때는 CLIA Lab이라고 하는 편이 좀 더 낫다.
체외진단기기 중, 진단이라는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고 어떤 측정치만 보여주는 기기들이 있다. 예를 들어 혈당량 측정기 같은 경우, 측정하여 보여주는 혈당량이 무슨 의미인지는 전혀 말하지 않고 그야말로 혈액에 있는 당분만을 보여줄 수 있는데, 이런 특정한 의학적 지표를 측정만 하여 의사나 다른 전문가들이 병에 대한 진단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랩이 CLIA lab이고 거기에 쓰이는 측정기기 혹은 방법을 LDT 즉 'lab developed test'라고 한다. 똑같은 기기라도 이렇게 측정치만 보여주면 LDT가 되는 것이고, 진단까지 병행하면 IVD(in vitro diagnosis) 기기, 즉 체외진단기기가 되는 것이다.
체외진단기기 개발자들이 자주 묻는다. CLIA로 하는 것이 나을지, IVD로 하는 것이 나을지.
CLIA lab에 기기를 공급하는 것과, FDA 승인을 받아 IVD로 판매하는 것에는 차이가 있다. 이걸 전부 설명하려면 별도로 1시간가량 강의를 해야 할 것이므로, 가볍게 답을 해보면 이렇다.
좋은 CLIA lab과 파트너쉽을 맺을 수만 있다면, CLIA track으로 가는 편이 여러 모로 유리하다. 좋은 파트너를 찾는 것이 FDA 승인을 받는 것보다 쉬울 것인가? Good Luck이라고 밖에 말을 못하겠다.
맺음말
내가 바이오스펙테이터(BioSpectator)와 처음 인연을 맺은 건, 어느 강연에서 “FDA 허가 어렵다고? 제품에 자신 있다면 쉽다”라고 한 부분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FDA 승인 컨설팅을 1년 넘게 한 현재 시점에서도 같은 말을 할 것인가?
물론이다. FDA에서 의료기기의 허가를 받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다.
다만 그때에 비해 하나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현재 3등급 기기의 PMA 몇 건을 컨설팅 중이다. 미국내에서 임상을 해야 하는데, 그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러니, FDA 허가는 어렵지 않다는 생각은 변하지 않았으나, 아무리 쉬워도 비용면에서 감당이 안되면 'Not difficult, but not possible either'가 되어 버리니 이렇게 말을 하고 싶다.
“미국에서 임상 안 하면 안되나요?”
이 말이 미국 FDA 승인의 현주소를 대변해준다고 생각한다. FDA 승인이 어려운가 아닌가, 결국 미국내에서 임상을 해야하는가 안해도 되는가가 가장 큰 요소라고 생각한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현재 진행하는 PMA건들의 성공을 바탕으로 미국에서의 임상 전략에 대해 글을 써볼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