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궁석 SLMS(Secret Lab of Mad Scientist) 대표
지난 연재에서는 혈액 순환의 원리와 고혈압이 언제부터 질병의 요소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는지에 대한 역사를 알아보았다. 이번 연재부터는 실제로 고혈압을 치료할 수 있는 약물의 역사를 살펴보도록 한다.
초창기의 고혈압 치료 시도들
1950년대 이전에는 아직 고혈압이 각종 질병의 위험요소로 크게 인식되지도 않았지만, 설사 그렇다고 해도 큰 부작용 없이 혈압을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고혈압에 대한 치료는 널리 시도되지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나마 알려졌던 혈압 강하의 수단들도 심장질환 환자 등 한정된 한자에 대해서만 제한적으로 실시되었다.
가령 식이요법으로 고혈압을 조절하려는 시도가 194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미국의 의사 월터 캠프너(Walter Kempner, 1903-1997)는 쌀, 과일, 과일쥬스로만 구성되었고 나트륨 섭취를 매일 200mg 이하로 제한된 식단을 투여하여 등록한 환자 500명 중 322명의 혈압을 떨어뜨렸고, 심부전 발생을 줄였다는 보고가 있었다[1]. 그러나 당연한 일이겠지만 이러한 극단적인 식이요법을 일상적으로 유지하는 것은 무리한 일이었다. 흥미있는 것은 캠프너는 자신의 식이요법이 혈압을 떨어뜨린 것을 식단의 저 나트륨 함량이 아닌 단백질 제한에서 온다고 믿었다는 것이다.
교감신경 절제술(Sympathectomy)과 같은 수술적인 방법이 혈압 조절을 위해서 동원되기도 했다[2]. 즉 교감신경을 절제함으로써 교감신경이 흥분하여 일어나는 맥박 증가, 혈압 상승 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는 방법으로 악성 고혈압 환자의 혈압을 조절하고자 했다. 또 다른 고혈압 치료에 동원된 수단은 인위적으로 열병(Fever)을 발생시켜 발생하는 열에 의해서 혈관을 이완시켜 혈압을 낮추려는 시도였다. 박테리아 유래의 열병의 요인 물질인 파이로젠(Pyrogen)을 주사하여 체온을 높여 혈관을 이완시켜 혈압을 낮추고자 하는 시도도 1949년에 보고되었다[3].
약물을 통한 혈압 강하도 여러가지로 검토되었다. 가령 소디움 시오시안산(Sodium thiocyanate)이나 교감신경억제제인 페녹소벤자미닌(phenoxbenzamine), 신경절 억제제(ganglion blocker)인 헥사메토늄(hexamethonium) 등이 혈압을 낮춘다는 것이 확인되었으나, 각각 모두 혈압을 낮추는 것 이외의 부작용이 있었고, 이러한 부작용과 혈압을 얻어서 얻는 이득의 균형이 확실히 맞지 않았다[4].
따라서 1950년대에는 고혈압이 심혈관질환, 신장질환 혹은 뇌졸중의 위험 요소라는 공감대가 서서히 확산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확실하고 부작용이 적은 고혈압 치료제가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혈압에 대한 약물적 치료는 보편화되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은 1950년대 말에 티아자이드계(Thiazide) 이뇨제(diuretics)의 등장과 함께 바뀌기 시작하였다.
이뇨제의 등장과 혈압 조절
이뇨제(diuretics)는 근본적으로 신장에서 여과되는 소변의 양을 늘려 혈장의 양을 감소함으로써 혈압을 낮추게 된다. 그러나 이뇨제라는 약물의 최초 등장은 혈압의 조절보다는 부종(Edema)과 신장질환의 치료제로써의 의미가 크다.
최초로 이뇨효과를 가진다고 알려진 화학물질은 염화수은(I)(Hg2Cl2)이었고 이의 효과를 기록한 사람은 15세기의 의사 파라셀루스(Paracelsus)이었고 뒤이어 여러가지 유기 수은 화합물들이 이뇨제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수은 화합물이라면 익히 짐작할 수 있는 심각한 독성이 수반되었다.이러한 독성을 가지지 않는 이뇨 효과를 가지는 물질으로 처음 등장한 것은 항생물질인 설파닐리미드(Sulfanilimide)가 신장의 탄산무수화효소(Carbonic anhydrase)를 저해하여 근위세뇨관에서 일어나는 수소이온의 분비를 억제하고, 이를 통하여 나트륨의 재흡수를 억제하여 이뇨 작용을 보인다는 것이 알려진 이후였다. 이후 1954년 아세타조아미드(Acetazolamide)라는 화합물이 더 강력한 이뇨 작용을 보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5].
탄산무수화효소를 억제하는 새로운 이뇨제를 찾기 위하여 1950년대 머크(Merck)는 다양한 화합물을 합성하여 이들의 이뇨 활성을 확인하였다. 이 과정에서 이들은 클로로티아자이드(chlorothiazide)라는 물질을 발견하였는데, 나중에 이 약물의 작용은 탄산무수화효소를 저해하는 것보다는 원위곱슬세관(Distal Convoluted Tube)에서 소디움/포타슘/클로라이드 공동수송인자(Na-K-Cl cotransporter)를 억제하여 이러한 이온의 재흡수를 억제하여 이뇨 효과를 낸다는 것이 밝혀지게 된다.
원래 티아자이드계 이뇨제는 울혈성 심부전(Congestive heart failure) 치료에 사용하기 위하여 시험되었으나, 곧 이 약물은 좋은 혈압 강하 효과가 있다는 것이 밝혀진다. 1958년 미국 재향군인병원(Veteran administration Hospitals)과 조지타운 의대(Georgetown Medical School)의 연구진들은 클로로티아자이드를 매일 1.5gm 복용한 환자 10명에게서 수축기 혈압이 18% 내려간다는 것을 보고하였고, 이러한 결과들은 다른 연구진들에게서 확인되었다[6]. 그리고 기존의 혈압강하 약물에서 흔히 보이는 심한 부작용 역시 관찰되지 않았다.
티아자이드계 이뇨제가 탁월한 혈압 강하 효과를 보인다는 것이 알려지자, 그때까지 역학 연구로만 제시되던 고혈압과 심혈관 질환의 상관관계를 입증하기 위한 무작위 대조군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이 가능하게 되었다. 1964년 시작된 미국 재향군인병원(Multicenter Veterans Administration Cooperative Study) 연구에서는 이완기 혈압 115-129mmHg 인 143명의 환자 대상으로 클로로티아자이드를 포함한 약물을 투여한 군과 위약군을 2년간 추적 조사하였고 이 결과를 1967년 JAMA에 보고하였다[7]. 이 결과에 따르면 시험군은 이완기 혈압이 평균 30mmHg 내려갔으며, 위약군 대상자 73명 중 27명은 심각한 심혈관 질환이 발생하고 4명은 사망하였으나, 혈압 조절을 받은 70명 중에서는 2명에서만 심혈관 질환이 나타났다. 이결과는 이완기 혈압이 115-129mmHg 수준인 고혈압 환자에서 약물에 의한 혈압 조절에 의해서 실제로 심혈관 질환의 위험도를 극적으로 낮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최초의 임상 연구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결과는 고혈압을 조절하는 약물에 대한 관심을 극적으로 증가시켰으며, 다른 작용기전을 가지는 혈압조절약물의 개발로 이어지게 되었다.
베타 차단제(beta blocker)
카테콜(Catechol)에서 유래된 모노아민 게열의 화합물인 카테콜아민(Catecholamine) 화합물에는 도파민(dopamine), 노르에피네프린(norepinephrine), 에피네프린(epinephrine, 혹은 아드레날린 adrenalin) 등이 있고, 에피네프린과 같은 화합물은 심장 박동을 증대시키고 혈압을 높인다. 부신수질(adrenal medulla)에서 분비되는 분비물이 혈압을 증대시키고 신장의 수축을 야기한다는 것은 이미 1895년에 발견되었다. 그리고 에피네프린의 분리와 이의 화학구조의 결정 역시 20세기 초반에 이루어졌다.
혈관으로 분비되어 다른 기관에 신호를 전달하는 물질이 작용하기 위해서는 이를 인식하는 수용체(Receptor)가 존재해야만 한다. 미국의 약리학자 레이몬드 알퀴스트(Raymond P. Ahlquist, 1914-1983)는 서로 다른 카테콜아민에 대해서 혈관이나 심장 등이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인다는 것에 착안하여, 크게 두 종류의 수용체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는 혈관 수축에 관여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용체를 ‘알파 아드레노수용체’ 로 분류하였고, 심장에서 작용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수용체를 ‘베타 수용체’ 로 분류하였다[8] (나중에 이들 수용체는 G 단백질 연계 수용체이고, 알퀴스트의 예상대로 알파, 베타 두 개의 클래스로 분류되는 9개의 수용체가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다). 알퀴스트의 이러한 이론은 당대의 학자들에게는 그다지 인정받지 못했고, Journal of Pharmacology and Experimental Therapeutics에 투고된 그의 논문은 게재 거절당했으나, 지인의 도움으로 겨우 American Journal of Physiology에 게재될 수 있었다.
이러한 알퀴스트의 논문에 주목한 사람은 영국의 생리학자인 제임스 블랙(James Black, 1924-2010)이었다. 블랙은 심장에 작용하는 ‘베타 수용체’ 만을 특이적으로 저해하여 심장 박동을 낮춤으로써 심장의 산소 소모를 줄이고, 이것이 협심증(Angina pectoris) 증상을 완화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했다. 그는 그의 아이디어를 실제로 구현하기 위하여 영국의 제약회사인 ICI 파마슈티컬(ICI pharmaceutical)에 1958년 입사하였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러한 약물을 구현할 수 있을까? 블랙은 이미 그가 생각하던 일부 성질을 가진 화합물에 대한 보고가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1958년 엘 릴리(El Lilly)의 연구진은 다이클로로이소프로테날린(dichloroisoprotenaline, DCI)라는 물질에 서 대해 보고했다[9]. 그들은 심장이 정상 수준보다 느리게 뛰는 증상인 느린맥(bradycardia)을 치료하는 약물인 이소프로테놀의 유사체를 찾기 위하여 이 약물의 유도체를 만들었다. 이소프로테놀은 베타 수용체의 작용제(agonist)로 작용하여 베타 수용체를 활성화시키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대한 것과는 달리 DCI는 베타 수용체를 활성화하여 심장 맥박을 빠르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반대의 작용을 했다.
분명히 이 물질은 엘 릴리의 연구자들이 기대한 성질이 아닌 반대의 작용, 즉 베타 수용체에 작용하여 작용제(agonist)가 아닌 억제제(antagonist)로 작용했기때문에 엘 릴리의 연구자들의 입장에서는 연구 목적에 부합하지 않는 물질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베타 수용체 억제제를 찾고 있던 블랙에게는 이 물질은 딱 걸맞는 시작지점이었다.
DCI는 억제제의 성질도 가지고 있었지만 특정한 조직에서는 작용제로도 작용하고, 그 억제 활성도 높지 않았다. 블랙과 ICI의 연구진들은 이의 유사체를 만들어 베타 수용체에서 특이적인 억제제를 찾고자 하였다. DCI의 유사체 중에서 그들이 원하는 활성을 가진 것은 DCI의 다이클로로페닐기를 나프탈렌기로 치환한 것이었다. ICI38174 라는 코드 네임의 이 화합물은 심장의 박동을 느리게 만들었으며 심장 박동을 빠르게 만드는 이소프로테놀의 기능을 억제하였다. 즉 이 화합물은 그들이 찾던 베타 수용체의 억제제였던 것이다. 이 화합물은 프로네탈론(Pronethalon)이라고 명명되었고, 이 결과는 1962년 Lancet에 발표되었다[10].
그러나 이 프로네탈론의 경우 구토와 어지러움을 유발하는 등의 부작용이 보고되었고, 또한 생쥐 실험결과 쥐에서 흉선암(Thymic tumor)를 유발하는 문제점이 나타났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좀 더 나은 활성과 적은 부작용을 가지는 화합물을 찾고자 하는 노력이 계속되었고, ICI-45520이라는 화합물이 프로네탈론보다 우월한 특성을 가짐이 확인되었다[11]. 이 약물은 프로프라놀롤(Propranolol)로 명명되었고, 인더랄(Inderal)이라는 상품명으로 출시되었다. 원래는 협심증의 치료제로 개발되었지만 프로프라놀롤의 혈압 강하 효과가 보고된 이후, 고혈압 환자의 치료에도 적용되기 시작하였다. 1969년 보고된 임상시험 결과에서 프로프라놀롤로 치료된 환자 중 92% 가 이완기 혈압을 100mmHg 이하로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결과들에 힘입어 프로프라놀롤과 같은 베타 억제제가 혈압 조절을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약물로 등장하게 되었다.
이후에 베타 수용체에도 여러 종류의 서브클래스가 존재함이 밝혀졌고, 프로프라놀롤의 경우에는 비선택적 베타 수용체 억제제인데 반하여, 심장에 존재하는 베타-1 수용체에 특이적으로 작용하는 비소프롤롤(Bisoprolol), 카르베딜롤(carvedilol), 메토프롤롤(metoprolol)과 같은 것들이 현재까지도 고혈압의 약제로 사용되고 있다. 한편 베타 차단제의 등장에 핵심적인 공헌을 한 제임스 블랙은 이 공로로 1988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하게 되었다.
다음 연재에서는 혈압 조절에 필수적인 역할을 하는 레닌-안지오텐신계의 생리학적인 연구의 역사와 이러한 지식들이 어떻게 혈압 조절을 위한 약물의 탄생으로 이어지는지의 과정을 알아보도록 하겠다.
참고문헌
1. Kempner, W. (1948). Treatment of hypertensive vascular disease with rice diet. The American Journal of Medicine, 4(4), 545–577. doi:10.1016/0002-9343(48)90441-0
2. Fishberg, A. M. (1948). Sympathectomy for essential hypertension.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137(8), 670-675.
3. Page, I. H., & Taylor, R. D. (1949). Pyrogens in the treatment of malignant hypertension. Modern concepts of cardiovascular disease, 18(10), 51-51.
4. Moser, M. (2006). Historical perspectives on the management of hypertension. The Journal of Clinical Hypertension, 8, 15-20.
5. http://historyofnephrology.blogspot.com/2017/11/the-invention-of-diuretics.html
6. Freis, E. D., Wanko, A., Wilson, I. M., & Parrish, A. E. (1958). Treatment of essential hypertension with chlorothiazide (diuril): Its use alone and combined with other antihypertensive agents.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166(2), 137-140.
7. Effects of Treatment on Morbidity in Hypertension. (1967). 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 202(11), 1028. doi:10.1001/jama.1967.03130240070013
8. Ahlquist RP. A study of the adrenotropic receptors. Am J Physiol. 1948;153:586-600.
9. Powell, C. E., Slater, I. H., LeCompte, L., & Waddell, J. E. (1958). Blocking of inhibitory adrenergic receptors by a dichloro analog of isoproterenol. Journal of Pharmacology and Experimental Therapeutics, 122(4), 480-488.
10. Black, J. W., & Stephenson, J. S. (1962). PHARMACOLOGY OF A NEW ADRENERGIC BETA-RECEPTOR-BLOCKING COMPOUND (NETHALIDE). The Lancet, 280(7251), 311–314. doi:10.1016/s0140-6736(62)90103-4
11. Black, J. W., Crowther, A. F., Shanks, R. G., Smith, L. H., & Dornhorst, A. C. (1964). A new adrenergic: beta-receptor antagonist. The Lancet, 283(7342), 1080-1081.
12. Prichard, B. N. C., and P. M. S. Gillam. "Treatment of hypertension with propranolol." Br Med J 1.5635 (1969): 7-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