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훈 가톨릭의대 교수·최성구 일동제약 부사장
도착지가 정해진 여정
우리는 어딘가에 가기 위해 운전석에 앉으면 일단 내비게이션 앱을 켜고 경로를 확인합니다. 이는 단지 가는 길을 확인하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어떤 길로 가야 가장 빨리 갈 수 있는지를 알기 위한 것입니다. 앞선 회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신약 개발은 특정 후보물질을 팔 수 있는 필수적인 정보를 획득해 나가는 과정입니다. 즉, 개발 시점에서 목표제품 특성(target product profile, TPP)이 정의되었다면, 그러한 TPP를 뒷받침할 수 있는 최선의 정보가 무엇인지, 그리고 이를 통해 어떤 단계에서 누구에게 마케팅을 할 것인지 등이 어느 정도 정해져 있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운전할 때 내비게이션을 켜고 가는 것처럼 신약 개발도 그러한 정보의 획득을 향해 최단 시간에, 최적의 경로로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아직도 많은 분이 신약 개발은 경로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저 규제적으로 정해진 최소한의 요건들을 갖추어 개발 단계를 진행하는 것이 신약 개발의 경로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대단히 큰 오해입니다. 최소한의 요건만 맞추어서는 신약 개발 중 발생하는 다양한 불확실성에 대처할 수 없으며 매력적인 제품을 만들 수 없습니다. 신약 개발은 경로가 정해진 여정이 아니라 도착지가 정해진 여정이며, 따라서 최적의 경로를 설정하여 도착지에 도달하는 것이 바로 신속한 신약 개발의 기본이라고 하겠습니다.
최적의 경로란?
다시 내비게이션에 빗대어 생각해 보겠습니다. 최적의 경로라 하면 가장 시간 소요가 짧은 경로이며, 이에 따라 자연스럽게 이동에 따르는 비용 지출이 최소화되는 경로를 의미할 것입니다. 그러나 조금 더 실제적인 차원으로 생각해 보면, 결국 이는 어떤 지점들을 통과해 어느 길을 타고 도착지에 갈 것인가의 문제입니다. 신약 개발에서 TPP를 뒷받침할 수 있는 핵심 정보(예> 임상적 Proof-of-Concept 등)를 얻기 위해서는 그러한 정보를 얻기 위한 임상시험 등을 설계할 수 있는 기반 정보를 단계적으로 얻어 나가야 합니다.
따라서 신약 개발의 최적 경로 설정은 1)각 단계 별로 어떠한 데이터가 반드시 필요할 것인가를 정의하고, 2)그것을 확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현재의 과학 수준에서)을 선택한 후, 3)확보한 정보를 개발단계 간의 translation 도구로 활용하는 전략을 짜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리고 이 경로를 설정함에 있어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앞서 언급한 ‘불확실성’입니다. 신약 개발의 속도에 가장 큰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특정한 시점에 이러한 불확실성이 발생하였는데, 이에 대한 어느 정도의 답변을 제시할 수 있을 만한 기반 정보가 갖춰져 있지 않은 경우입니다.
예를 들어, PoC 확인을 위한 임상시험을 계획하고 있는데, 유효 용량 또는 임상적 최적 용량이 얼마일지에 대한 예상치가 없는 상황을 가정해 볼 수 있습니다. 이 경우, 불확실성을 감수하고 임상시험을 수행하면 제대로 된 PoC를 보이지 못하거나 최적의 임상 용량을 찾는 것에 실패하여 개발 비용과 시간을 낭비할 수 있습니다. 조금 더 나은 방법은 기반 데이터(비임상 약동-약력학 데이터 또는 초기임상 바이오마커 등)를 확보하고 이를 해석하여 예상치를 확보하는 것인데, 이 역시 수 개월이 걸리는 작업이라는 문제가 발생합니다. 이런 기반 데이터는 규제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아니며, 개별 후보 물질의 특성과 라이선싱 아웃 전략 등에 따라 결정되어야 합니다. 내비게이션을 출발 시에 켜듯, 이 작업 역시 개발 초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최적 경로 설정의 구체적인 방법론은 이후 2~3회 정도의 글로 다루고자 하며, 이번 회에서는 이를 위한 기반 요건 두 가지를 다루고자 합니다.
개발의 브레인: 다학제 전문가 네트워크
사실 위에서 말씀 드린 내용의 대부분은 이미 널리 알려져 있는 ‘Quick-Win, Fast-Fail’ 전략의 핵심입니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각 개발 단계를 잘 알고 있는 전문가들이 동시에 최적 경로 설정에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 전제 조건입니다. 이러한 전문가들에는 의약화학자, 생물약제학자, in vitro 또는 in vivo 비임상 전문가, 임상약리학자, 계량약리학자, 통계학자, 임상 의사, 규제전문가, 라이센싱 숙련자 등이 포함됩니다. 이는 마치 출발지에서부터 도착지까지의 소요 시간을 산정하는 데에 어떤 항목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하는가를 결정하는 것과 같으며, 그러한 정보들이 모였을 때 궁극적으로 최적 경로를 추천하도록 하는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또한, 수시로 바뀌는 교통 상황에 따라 추천 경로가 변경되듯이, 신약 개발 중 데이터 확보에 따른 개발 계획의 수정 등 역시 이러한 다학제 팀을 통해 가능합니다. 빅파마들은 이러한 인력 중 핵심 인력을 대부분 직접 고용하고 있으며, 일부 상황에 따라 외부 전문가를 활용합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국내 제약사나 바이오텍들은 고용하고 있는 인력의 구성이 다양하지 못합니다. 제약사 연구소에는 후보 물질 스크리닝(screening)이나 비임상 데이터 생성을 담당하는 인력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고, 바이오텍에는 매우 적은 수의 개발 관련 인력이 있을 뿐입니다. 따라서, 국내외의 관련 전문가나 전문기업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세계의 모든 중소규모 개발사들이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각 영역 별로 적절한 자문을 얻을 수 있는 곳이 존재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관계자들 간에 믿을 만한 파트너에 대한 정보가 공유될 수 있다면 이는 매우 유용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개발의 밑천: 풍부한 개발 초기 데이터
또 하나의 큰 오해는 궁극적으로 핵심적인 정보가 임상 단계에서 얻어지므로, 비임상 단계는 단순히 이를 위한 통과절차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사실 빅파마들은 전임상 단계에 임상 단계 만큼이나 많은 연구비를 투자하는데 이는 전임상 데이터야말로 개발 과정 중 얻을 수 있는 가장 가성비 좋은 데이터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불필요한 데이터까지 무분별하게 얻는 것은 의미가 없겠지만, 임상 개발 진행과 개별 임상시험 설계의 판단 근거를 제공함으로써 임상 단계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절감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의 생성에는 아낌없이 투자합니다.
이렇게 생성된 데이터들은 실제로 라이선싱 아웃 및 신약 허가에 있어 매우 중요한 정보가 되며, 임상적으로 확보하기 어려운 MoA, 효능 및 안전성 정보에 대해서 핵심적인 증거의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또한, 개발 전략 수립 시 혹시나 고려하지 못하였을 수도 있는 불확실성의 요소에 대해서도 풍부한 전임상 데이터는 그러한 상황에 대비할 수 있도록 해주는 버팀목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전임상 데이터를 풍부하게 얻겠다고 너무 시간을 많이 쓰는 것도 추천되는 일은 아닙니다. 전임상 단계에서는 특정 실험 결과에 근거해 개발 지속 여부를 결정한다거나 다음 실험 설계에 중대한 사항을 결정하는 일이 많지 않음으로, 다양한 실험들은 순차적으로 수행하기보다는 동시다발적으로 수행하여 단기간에 많은 정보를 얻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고 하겠습니다.
요컨대, 꼭 필요한 정보의 생성과 이를 해석-활용하는 데에만 시간을 소요해도 아까운 것이 신약 개발입니다. 가급적 이른 시기에 다학제 전문가의 참여를 통해 최대한 높은 개발 단계까지 각 단계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의 종류와 그 활용 전략을 미리 설정하고, 개별 정보가 필요한 시점 이전에 그러한 정보가 확보될 수 있도록 다양한 시험들을 병행하여 수행하여야 합니다. 정확한 타임라인 설정과 마일스톤 준수는 당연한 사항일 것입니다. 또한, 이를 위해서는 투자 유치 등을 통해 충분한 규모의 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필수적 사항이라 하겠습니다. 최소한의 규제 요건만을 맞추는 정도의 예산으로는 이러한 신속한 개발 패러다임을 실현할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