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는 최근 트위터에 ‘내가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인공지능, 에너지, 생명과학(bioscience)을 공부하겠다’라고 적었다. 경쟁사인 구글은 2013년 자회사 ‘칼리코’(Calico)를 설립, 노화를 제어해 인간의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하는 연구에 돌입했다. 생명공학에 기반한 바이오산업이 미래의 핵심산업이자 인류의 미래에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과 그 단서들은 차고 넘친다.
반면 국내 바이오산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냉정하다. 혁신신약 개발 기업에는 '거품' 혹은 '고평가'라는 딱지가 붙는다. 유전체학, 후성유전학 등에 기반한 조기진단, 동반진단 기업들의 평가는 더 박하다. 국내 바이오테크는 세계 시장에 도전해 경쟁할 수 없는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한 것인가? 이런 평가절하의 원인에는 어렴풋이 '숲'은 보지만 건강한 나무를 판단할 수 없는 정보, 디테일 부족도 있다.
국내 최초 바이오제약전문매체 바이오스펙테이터가 펴낸 '바이오사이언스의 이해-한국의 신약개발 바이오테크를 중심으로'는 1980년대부터 시작된 국내 바이오산업의 현주소를 진단하고 앞으로의 도전 과제, 그리고 성공가능성을 예측한 책이다. 국내 바이오테크 100여곳 이상을 심층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글로벌 트렌드에 맞춰 각 기업의 신약개발 연구 현황, 기술의 원리, 배경이 되는 생명과학을 차분히 설명해 이해를 돕는다.
'바이오사이언스의 이해'는 바이오 의약품의 주를 이루는 단백질 의약품, 사람의 면역 시스템을 이용해 암을 치료하는 면역 치료, 유전자에 직접 손을 대는 유전자 치료, 암을 발병하기 전에 찾아내는 것이 최종 목표인 조기진단, 근대의료의 개념을 과학으로 뒤집으려는 동반진단과 맞춤 정밀의학, 모든 사람의 공포의 대상이 되어버린 알츠하이머 같은 뇌질환을 치료하는 한국의 첨단 과학기술과 치료제의 개발 현황을 다룬다.
바이오사이언스로 어떻게 사람의 목숨을 구하고, 질병의 공포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시도와 노력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는 과정에서 한국의 크고 작은 바이오테크들이 등장하며, 그들이 어떤 활약을 펼치고 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전문가의 첨단 영역으로 인식되고 있는 바이오사이언스를 자연스럽게 대중 과학의 콘셉트로 독자에게 전달한다.
무엇보다 고등학교에서 생명과학 수업을 들었다면 이해할 수 있는 수준과 난이도의 해설이다. 바이오테크 종사자뿐 아니라 투자자, 정부 관계자, 그리고 대학생, 취업준비생까지 바이오생태계에 연관된 이들이 이해할 수 있게끔 쉽게 썼다.
90세가 넘은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을 흑색종에서 구한 '면역관문억제제(키트루다)'의 원리를 이해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면역 팀은 수시로 우리 몸을 돌아다니며 세포들에 이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확인한다. 이렇게 면역팀이 순찰할때 각 부분의 세포들(면역관문 단백질)들은 '여기에 이상 없음'이라고 신호를 보낸다. 면역팀은 정상 신호를 받으면 지나가고 이상 신호를 접수하면 이상이 생긴 세포를 제거한다..(중략)..암세포가 면역관문단백질이 하는 일에서 자신의 생존 아이디어를 얻는다. 면역 팀은 오늘도 온 몸을 돌면서 이상 유무를 확인하러 다니다가 암세포 쪽으로 온다. 암세포는 아무렇지도 않게 ‘여기는 정상임!’이라며 면역 팀을 속인다. 면역 팀은 암세포가 건네준 페이크 신호를 정상 신호라고 받아들이고는 다음 세포를 확인하러 넘어간다. 아무리 건강한 면역 기능을 가지고 있어도, 암세포에게 속으면 속수무책이다. 이러는 사이 환자의 암세포는 무럭무럭 자란다. 면역관문억제제는 이런 암세포의 지능적 대응을 무력화하기 위한 것이다. 암세포가 흘리는 거짓 정보를 차단할 수 있다면, 환자 자신의 면역 기능만으로도 암을 치료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면역관문억제제는 독한 약이 아니다. 거짓 신호를 막는 일이니 독한 항암 치료 과정에 수반되는 환자의 건강 악화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또한 암세포의 특정 항원을 인식하는 치료제가 아니다. 어떤 암이든 면역 팀에 보내는 신호를 활성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다양한 암에 적용시켜 치료가 가능하다. 면역관문억제제의 비전이다. "
또한 2015년 대규모 기술이전으로 뜨거웠던 한미약품의 랩스커버리 기술을 비롯해 생명공학계의 슈퍼스타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 혈액으로 암을 조기진단하는 액체생검 등 국내 유망 기술뿐 아니라 글로벌 기술 개발 트렌드를 소개한다.
이해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에서는 도판을 활용했다. 도판은 필자 가운데 한 명이 직접 칠판에 분필로 그린 것을, 다시 사진으로 촬영해 책에 실었다. 원고를 읽어가는 과정에서 이해가 어렵다고 느껴지는 부분을 고르고, 어떤 그림으로 독자의 이해를 도울 수 있을지 논의한 후, 실제 독자가 앞에 앉아 있다고 가정하고 말로 설명하면서 그림을 그렸다.
바이오사이언스에 대한 대중적인 이해가 토대가 된다면 죽음의 공포와 질병의 고통으로부터 좀더 많은 사람들이 해방될 수 있는 제도적·정책적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바이오사이언스의 이해'가 바이오산업에 대한 왜곡된 투자와 시선을 바로잡는 것은 물론 대학생과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새로운 도전의 기회를, 바이오테크 종사자에게는 새로운 협력의 장을 여는데 조금이라도 기여하길 기대한다. 바이오스펙테이터는 이번 출간을 시작으로 더 많은 최신 바이오기술과 바이오테크를 국내에 소개하는 노력을 계속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