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국내 의약품 산업에서 제약사들간 대형 인수·합병(M&A) 사례의 등장은 쉽지 않을 것이란 인식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다. 대다수의 국내제약사들이 복제약(제네릭) 사업을 주력으로 하는 현실상 시너지를 낼 만한 M&A조합이 드물다는 이유에서다. 제약사는 동일 성분·용량의 의약품을 1개만 보유할 수 있다. M&A 상대 업체들이 각각 동일한 제품을 보유할 경우 1개는 사라져야 한다는 의미다.
최근 한국콜마가 CJ헬스케어의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낙점되면서 양사간 사업 시너지에 물음표를 제기하는 시선이 적지 않다. 한국콜마와 CJ헬스케어 모두 제네릭 분야에 대한 의존도가 높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콜마와 CJ헬스케어의 주력 의약품은 중복되는 사례가 거의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약품 조사 기관 유비스트의 지난해 원외 처방실적으로 양사의 주력 제품을 비교해봤다. 주력 의약품의 중복 여부를 통해 양사의 시너지 여부를 예측하기 위해서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한국콜마는 231개, CJ헬스케어는 241개의 의약품을 건강보험 급여 목록에 등재했다. 2016년 기준 한국콜마의 제약사업 매출은 1654억원으로 CJ헬스케어(5208억원)의 3분의 1 수준이지만 판매 중인 품목 수는 비슷한 수준이다.
한국콜마의 경우 지난해 원외 처방실적 상위 10개 품목 중 CJ헬스케어가 보유한 제품은 1개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콜마는 지난해 ‘탐스로신’ 성분의 ‘타미날’을 비롯해 ‘하이포지’, ‘한국콜마록소프로펜나트륨’, ‘리파르’, ‘페인리스’, ‘한국콜마탈니플루메이트’, ‘케이스타’, ‘마이트라’, ‘케이세틸’, ‘오메클’ 등 10개의 제네릭 제품이 가장 많은 처방실적을 기록했다.
이중 CJ헬스케어의 판매 제품과 중복되는 의약품은 ‘페인리스’ 1개 품목에 그쳤다. 페인리스는 ‘아세트아미노펜’과 ‘트라마돌염산염’으로 구성된 소염진통제로 얀센의 ‘울트라셋’이 오리지널 제품이다. CJ헬스케어는 울트라셋의 제네릭 ‘유토펜’을 판매하고 있다. 다만 유토펜의 작년 원외 처방실적은 5억원으로 CJ헬스케어의 주력 제품과는 거리가 먼 수준이다.
반대로 CJ헬스케어의 주력 제품 중 한국콜마의 보유 여부를 조사했는데, 결과는 동일했다. CJ헬스케어의 매출 상위 10개 제품 중 한국콜마가 판매 중인 제품은 1개에 불과했다.
CJ헬스케어는 ‘헤르벤’, ‘안플레이드’, ‘씨제이크레메진’, ‘엑스원’, ‘비바코’, ‘바난’, ‘라베원’, ‘메바로친’, ‘로바젯’ 등 9개 제품이 지난해 100억원 이상의 원외 처방실적을 올렸고, ‘루키오’는 98억원의 처방실적을 냈다.
CJ헬스케어의 매출 상위 10개 제품 중 한국콜마가 판매 중인 제품은 ‘라베원’ 1개로 조사됐다. 라베원은 ‘라베프라졸나트륨’ 성분의 항궤양제로 한국얀센의 ‘파리에타’가 오리지널 의약품이다. 한국콜마는 라베프라졸 성분의 ‘라페졸’을 지난 2012년 허가받고 판매 중이다. 라페졸의 작년 처방실적은 2억원에도 못 미쳐 한국콜마의 주력 제품은 아니다.
양사의 매출 상위 10개 품목을 비교하면 사업 중복으로 ‘시너지 불가’라는 우려가 기우에 그친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사실상 한국콜마와 CJ헬스케어의 주력 제품이 겹치는 사례는 없어 양사 합병으로 인해 굵직한 제품을 정리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콜마가 CJ헬스케어의 인수로 종전보다 다양한 파이프라인을 가동할 수 있다는 분석이다.
CJ헬스케어의 간판 제품 중 오리지널 의약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많아 주력 의약품의 중복 사례가 거의 없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CJ헬스케어의 매출 상위 10개 제품 중 ‘헤르벤’, '씨제이크레메진‘, ‘바난’, ‘메바로친‘ 등 4개 제품은 수입 오리지널 의약품이다. ’엑스원‘과 ’로바젯‘은 2개의 성분으로 구성된 복합제로 CJ헬스케어가 자체개발한 제품이다.
‘안플레이드’, ‘비바코’, ‘루키오’ 등은 제네릭 제품이다. 비바코의 경우 오리지널 의약품인 ‘크레스토’의 포장만 바꾼 제품이지만 제네릭(위임제네릭)으로 분류된다. CJ헬스케어는 ‘마하칸’, ‘암로스타’, ‘씨제이로자탄’, ‘클로스원’ 등 한국콜마가 보유하지 않은 개량신약과 제네릭 제품도 다수 보유하고 있다.
공교롭게도 CJ헬스케어의 간판 제네릭 제품 영역에서 한국콜마가 진출을 하지 않아 양사간 제네릭 사업도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비바코와 동일 성분(로수바스타틴)의 제품을 보유한 업체는 110곳에 달하는데, 한국콜마는 제네릭을 내놓지 않았다. 안플레이드와 루키오 역시 각각 40곳, 55곳이 동일 성분의 제품을 판매 중이지만 2개 시장에서도 한국콜마는 진출하지 않았다.
한국콜마는 CJ헬스케어의 인수로 4개의 대형 오리지널 의약품 뿐만 아니라 기존 주력 의약품과 무관한 100억원대 규모의 제네릭도 다수 보유할 수 있다는 계산이 가능하다. CJ헬스케어의 간판 캐시카우 제품인 숙취해소음료 ‘컨디션’과 헛개음료 ‘헛개수’ 등의 음료사업도 매력적인 사업이다.
여기에 CJ헬스케어가 구축한 R&D파이프라인도 확보할 수 있다. CJ헬스케어는 위식도역류질환치료제, 항구토제, 비알코올성지방간치료제 등 6개의 합성신약과 4개의 바이오의약품을 개발 중이다. 한국콜마가 1조3000억원이라는 대규모 자금을 투입할 만큼 CJ헬스케어의 매력이 크다고 판단한 배경이다.
디민 CJ헬스케어가 판매 중인 상당수 제네릭 제품은 한국콜마의 계열사 콜마파마의 제품과 중복된다는 점은 변수로 지목된다. 콜마파마(옛 비알엔사이언스)는 한국콜마홀딩스가 지난 2012년 인수한 업체로 한국콜마의 최대주주인인 한국콜마홀딩스(지분율 22.38%)가 69.43%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콜마파마는 한국콜마와는 달리 CJ헬스케어의 간판 제네릭 제품인 비바코, 라베원, 루키오 등과 동일한 제품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 한국콜마의 CJ헬스케어 인수 이후에는 한국콜마가 계열사와 일부 동일 시장에서 영업 경쟁을 펼칠 수 밖에 없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