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지만 딜로이트안진 이사
김영란법이 시행됐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가 400만명으로 추정됨에 따라 그 여파는 크고, 매체들 또한 다양한 현상에 주목하고 있다. 심지어 SNS에 자주 올라오던 음식 사진의 숫자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만약 당신이 출근 전 자녀를 유아원에 맡기고, 직장업무를 마치자마자 유아원으로부터 자녀를 데리고 집에 가야한다고 생각해보자. 일반적으로 오후 5시까지 유아원에 도착하여 자녀를 하원시켜야 하는데 이 시간이 잘 지켜지지 않아 유아원은 자녀의 하원시간이 오후 5시보다 늦을 경우 부모에게 1만원의 벌금을 부과하는 방안을 고안해냈다.
그렇다면 과연 이와 같은 벌금 부과 방안을 시행한 이후 당신은 지각횟수를 줄일 수 있을까? 당신과 유사한 상황에 있는 다른 부모들의 지각 횟수 또한 유아원에서 기대했던 바와 같이 줄었을까? 관련 연구자료에 따르면 벌금제도를 시행한 이후에 자녀를 정해진 하원시간보다 늦게 데려가는 부모들의 숫자는 오히려 늘어났다고 한다.
이는 벌금제도로 인하여 부모들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윤리적 측면이 배제되었기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벌금제도가 부모들로 하여금 하원시간을 지키는 문제를 유아원과의 약속을 지키는 윤리적 문제가 아닌 단순히 시간과 돈의 문제로 간주하게 한 것이다. 따라서 벌금제도의 도입으로 인하여 오히려 윤리적 해이가 발생하게 됐다.*
이처럼 윤리적 영역을 제도화, 법제화 하는 것이 만병통치약은 아닐 것이다. 김영란법의 시행에 따라 시행 이전에는 윤리적 영역으로 판단하여 개인의 양심에 따라 행동하였던 대상자들이 법망을 회피하고자 탈법을 꾀하지는 않을지 우려되는 부분이다.
헬스케어 산업에서 청탁과 이해 상충의 문제는 오랜 기간 동안 계속되어 왔다. 또한, 헬스케어 산업의 특성상 부정청탁의 문제는 단순히 누군가의 편익에 그치지 않고 더 나아가서는 타인의 생명과도 직결될 수 있기에 그 심각성이 더욱 크다.
2010년대 초반부터 정부가 헬스케어 산업에서의 불법리베이트 척결에 대한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 왔기에, 김영란법의 등장은 상대적으로는 자연스럽게 보인다. 헬스케어 기업들의 고객이 대부분 김영란법 대상자이고, 직접적인 업무연관성이 있어, 김영란법 시행이 헬스케어 업계에 가져 올 영향은 다른 산업대비 더욱 클 것이다.
관련 법령상 불법리베이트의 결과로 형사적 책임은 물론 양벌 규정으로 인한 법인의 책임이 부과되며 관련 헬스케어 제품의 허가까지 취소될 수 있다. 이는 불법리베이트 문제의 해결을 위하여 제도를 지속적으로 강화한 것이며, 향후에도 처벌 수위는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앞서 언급한 유아원의 사례에서 해당 벌금을 1만원에서 10만원으로 변경한다고 가정하면 사뭇 다른 결과가 예상된다. 따라서 제도를 강화하고, 양형을 늘리는 것은 잠재적 법 위반자를 줄이는 한가지 방법이 될 것이다.
그러나, 2010년부터 계속되어온 정부의 헬스케어 산업에서의 불법리베이트 척결을 위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아직까지 헬스케어 산업에서의 불법리베이트 문제가 해결됐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안타깝게도 불법리베이트 관련 경영자들의 의사결정 구조는 윤리가 아닌, 경영 및 경제의 논리에 따르고 있다.
불법리베이트 없이 예상되는 매출 손실이 불법리베이트가 적발될 경우 기업에서 책임져야 하는 벌금보다 큰 것으로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다른 기업들도 다하는데 우리 기업만 손해를 볼 수 없다는 인식이 시장에 퍼져 있다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김영란법의 성공적 정착을 위해서 헬스케어 산업에서의 불법리베이트 척결 노력은 반면교사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진행한 강의에 참석한 몇몇 기업체 임원분들께서도 김영란법이 취지는 좋으나, 불평등 법령이 되지는 않을지 우려하신 바 있다. 후발 기업으로서 선점시장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잠재적 고객이나 의사결정권자를 만나야 하는데, 김영란법 시행으로 이러한 기회가 줄어들고, 선점시장의 진입 장벽이 더욱 높아지는 건 아닐지 우려하시는 분도 계셨다.
남이 하면 청탁이고, 내가 하면 공익인데, 중소기업만 법망을 빠져나가지 못하는 건 아닐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자주 들린다. 이와 같은 사회의 부조리를 해결하고자 김영란법이 시행된 것이지만, 막연한 “불평등”이라는 화두는 일탈행위의 합리화로 완벽한 주제이다.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우리 사회의 부정은 훨씬 골이 깊은 것일까?
주*: U. Gneezy and A. Rustichini(2000), “A fine is a price”, Journal of legal stu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