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지난해 대웅제약과 종근당은 영업 현장에서 유례없는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인지장애개선제 ‘글리아티린’의 판권이 대웅제약에서 종근당으로 넘어가면서 촉발된 경쟁인데, 사연은 복잡하다.
글리아티린은 이탈리아 제약사 이탈파마코가 개발한 제품으로 대웅제약이 2000년부터 국내 판권 계약을 맺고 판매해왔다. 글리아티린은 연간 600억원대 매출을 기록하며 대웅제약의 오랜 효자 제품 역할을 했다.
지난해 1월 이탈코파마의 원료의약품 판권과 상표 사용권이 종근당으로 넘어갔다. 종근당은 기존에 판매했던 글리아티린 제네릭 ‘알포코’를 이탈파마코로부터 공급받은 원료로 만들고, 제품명도 ‘종근당글리아티린’으로 변경해 팔기 시작했다. 대웅제약은 글리아티린을 더 이상 판매할 수 없게 되자 지난해 3월 글리아티린의 허가를 자진 취하했다.
완제의약품 판권의 이전은 업계에서 흔하지만 원료의약품의 판권 이전은 이례적인 사례라는 점에서 제약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다.
대형 제품의 판권 이전으로 양사는 영업 현장에서 뺏고 뺏기는 치열한 경쟁을 펼쳤다. 종근당은 오리지널 원료의약품으로 만든 제품이라는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적극 홍보하며 종근당글리아티린의 판매에 총력을 기울였다. 종근당은 의료진을 대상으로 장기 임상데이터를 소개하며 종근당글리아티린이 오리지널 의약품이라는 사실을 적극 강조했다.
대웅제약은 허가 취하 이후에도 일정 기간 건강보험 급여를 적용해주는 제도를 활용해 재고 소진을 위해 안간힘을 썼다. 대웅제약은 지난해 종근당글리아티린의 대조약 선정을 문제삼고 식품의약품안전처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글리아티린의 보험급여 연장을 위해 보건복지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초강수를 두기도 했다.
1년이 지난 결과 누가 이겼을까. 결론부터 얘기하면 지금까지는 양사 모두 나쁘지 않은 성적표를 받아들었다.
의약품 조사업체 유비스트의 원외 처방실적 자료를 보면 종근당글리아티린은 지난해 302억원의 처방실적을 올렸다. 제네릭 알포코의 2015년 처방실적 29억원보다 무려 10배 이상 뛰었다. 기존에 대웅제약이 팔았던 글리아티린의 2015년 매출 672억원에는 많이 부족하지만 원료의약품 공급처와 제품명만 변경됐다는 점을 감안하면 괄목할만한 성장이다.
대웅제약의 글리아티린은 154억원의 원외 처방실적을 기록했다. 지난해 3월 글리아티린의 허가가 취하됐지만 154억원어치 재고는 소진했다는 뜻이다. 전년도 매출보다 77% 감소하며 판권 이전에 따른 공백을 실감했다.
주목할만한 변화는 대웅제약의 관계사인 대웅바이오의 ‘글리아타민’이 2015년 74억원에서 지난해 454억원으로 수직 상승했다는 점이다. 글리아타민은 글리아티린의 제네릭 제품으로 대웅제약이 생산한다.
대웅제약이 관계사에 글리아타민을 공급하고 영업에도 가세하면서 글리아타민의 매출이 큰 폭으로 증가한 것이다. 대웅제약은 '변칙 영업'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글리아티린을 판매했던 영업력을 제네릭 제품에 투입하자 즉각 효과를 거뒀다.
글리아타민은 허가권은 대웅바이오가 보유하고 있어 대웅제약의 처방실적에 반영되지는 않지만 대웅제약이 생산해 대웅바이오에 공급하기 때문에 글리아타민의 매출 대부분은 대웅제약 수익으로 반영된다.
사실상 대웅제약의 지난해 글리아티린 처방실적은 글리아타민의 매출과 합친 608억원인 셈이다. 글리아티린 원료의약품의 판권 이전에도 매출 손실은 예상보다 크지 않았다는 얘기다. 글리아티린의 재고 소진을 위해 정부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관계사를 활용한 총력적을 펼친 결과 소정의 성과를 거뒀다.
양사간의 글리아티린 시장 쟁탈전은 글리아티린이 소멸되는 올해부터 본격적인 승부가 펼쳐질 전망이다. 다소 복잡했던 양사의 경쟁은 종근당의 종근당글리아티린과 대웅제약이 판매하는 대웅바이오의 ‘글리아타민’으로 압축된다. 가장 최근 실적인 지난해 12월 처방실적을 보면 글리아타민이 46억원으로 종근당글리아티린(36억원)보다 다소 앞섰지만 격차는 크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