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보건복지부가 노바티스의 만성골수성백혈병치료제 ‘글리벡’에 대해 리베이트 급여 정지 대신 과징금을 부과한 처분을 두고 뒷말이 무성하다. 오리지널 의약품과 복제약(제네릭)은 동등한 약물이라는 과학적 판단과 어긋난 처분을 내리며 제네릭에 대한 불신을 일으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애초부터 복지부가 리베이트 근절을 목표로 강력한 처벌 제도를 도입할 때 발생 가능한 변수를 예상하지 못하면서 혼선을 부추긴다는 지적이 나온다.
◇복지부, 글리벡 급여정지 제외..제약업계 "제네릭 불신 조장”
27일 복지부는 한국노바티스의 ‘엑셀론캡슐’ 4종, ‘액셀론패취’ 3종, ‘조메타레디’ 2종 등 9개 제품에 대해 보험급여를 6개월간 정지하는 사전 처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 지난해 8월 서울서부지검의 한국노바티스 기소에 따른 후속조치다. 노바티스는 2011년1월부터 5년간 약 25억9000만원 상당 리베이트를 제공한 혐의다.
지난 2014년 7월부터 시행된 ‘리베이트 의약품 보험 급여 중단’이 적용되는 첫 사례다. 일명 ‘리베이트 투스트라이크 아웃’으로 불리는 이 제도는 리베이트 금액에 따라 해당 품목의 보헙급여를 단계적으로 중단하는 내용이 핵심이다. 적발된 리베이트 규모가 1억원 이상일 경우 해당 의약품의 보험급여가 1년 동안 중단된다. 5년 이내에 또 다시 적발되면 영구적으로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는다. 앞서 복지부는 리베이트 의약품에 대해 경고처분을 내린 적은 있지만 급여정지 처분은 이번이 처음이다.
당초 급여정지 대상은 총 42개 품목이었지만 복지부는 ‘가브스’, ‘트리렙탈현탁액’, ‘글리벡’, ‘온브리즈’ 등 33종의 급여정지 처분은 과징금 551억원으로 대체했다. 과징금은 리베이트 규모에 따라 산정된다.
복지부는 “불법 리베이트 대상 약제에 대해 원칙적으로 급여정지 처분을 하되 동일제제가 없는 경우 등에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국민건강보험법 시행령에 따르면 퇴장방지의약품, 희귀의약품, 동일제제 없는 단일 품목, 복지부장관이 특별한 사유가 있다고 인정한 경우 급여정지를 과징금으로 대체할 수 있다.
이중 글리벡과 트리렙탈현탁액의 경우 동일 성분의 제네릭이 판매 중인데도 급여정지 처분 대상에서 제외했다는 사실을 두고 제약업계에서는 납득하기 힘들다는 시각을 보이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글리벡의 경우 한미약품, 종근당, 동아에스티, CJ헬스케어 등 13개 업체가 31개의 제네릭을 판매 중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글리벡과 동등성을 인정받고 허가받았기 때문에 글리벡을 처방받는 환자는 제네릭 제품으로 사용해도 된다는 의미다.
복지부가 글리벡을 급여정지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현실적인 고민에서 비롯됐다. 복지부가 글리벡의 급여정지 처분을 검토한다는 소식에 환자단체에서 강하게 반대했다.
백혈병환우회는 “글리벡에 대한 요양급여 적용 정지 처분을 했을 경우 성분이 동일한 오리지널약과 복제약의 효능에 관한 사회적 논쟁과 무관하게 글리벡 치료로 장기 생존하고 있는 수천 명의 만성골수성백혈병 환자들이 글리벡을 강제적으로 다른 대체 신약이나 복제약으로 교체하도록 강요받는 것은 비합리적이다”라며 글리벡 급여정지에 대해 반대 의견을 제시한 바 있다.
반대 의견도 제기됐다. 건강사회를위한약사회는 최근 “2013년 특허가 만료된 글리벡과 글리벡 제네릭 의약품의 약효, 부작용, 안전에 있어서 어떤 차이가 존재하는지에 대한 입장을 밝혀야 한다”는 내용의 공개질의서를 식약처에 제출한 바 있다.
물론 식약처는 오리지널 의약품과 제네릭은 동등하다는 시각이다. 식약처 관계자는 “생물학적동등성시험을 통해 오리지널 의약품과 효능, 흡수속도 등이 동등하다고 인정되는 제네릭만 허가한다”라고 설명했다.
복지부도 원칙적으로 제네릭이 오리지널 의약품과 같다는 데에는 의견을 같이 한다. 복지부 관계자는 “정상적인 허가절차를 거친 제네릭은 오리지널 의약품과 동등하다고 판단한다”면서도 “글리벡의 경우 환자들의 생명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약물이라는 이유로 전문가 자문을 통해 급여정지를 과징금으로 대체했다”라고 설명했다.
경증 질환 치료제가 아닌 백혈병 환자가 복용하는 중증질환 치료제라는 점을 감안, 환자들이 오리지널 의약품을 제네릭으로 변경했을 때 불안감이 높아질 수 있다는 일부 의료진과 환자들의 의견을 받아들인 것이다. 일부 의료진은 똑같은 성분의 제품이라도 장기간 복용하다 다른 제품으로 바꿨을 경우 환자에 따라 적응 과정에서 부작용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제약사 한 관계자는 “오리지널과 동등성을 인정받고 제네릭을 허가했는데도 일부 의료진과 환자단체의 지적에 글리벡의 급여 정지를 유보하는 것은 정부가 제네릭에 대한 불신을 조장하는 것과 다름없다”라고 강하게 항의했다. 복지부도 약품비를 줄이는 의료기관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등 저렴한 제네릭 의약품 사용을 장려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는데, 이번 처분은 복지부의 정책 기조와도 상충된다는 지적이다.
리베이트 의약품의 급여 정지 처분에 대해 원칙과 어긋나는 결정이 나옴에 따라 향후 또 다른 의약품의 급여정지를 추진할 때마다 해당 제약사들의 반발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리베이트 관련 제재 수단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과징금의 상한을 인상하거나 리베이트 약제에 대한 약가인하 처분도 선택적으로 병행할 수 있도록 할 필요성이 있다”며 제도 개선 의지를 피력했다.
◇"리베이트 의약품 약가인하도 허점 노출도 폐지..일관성 있는 정책 시급“
업계에서는 복지부가 리베이트 척결을 위해 강력한 제재 수단을 도입하면서 이번 글리벡의 사례처럼 환자나 의료진의 반발이라는 변수를 예측하지 못해 혼선을 자초했다고 지적한다.
리베이트 의약품의 급여정지는 보건당국이 지금까지 시행 중인 제재 중 가장 강력한 처벌로 평가받는다.
처방의약품은 보험 제한은 사실상 시장에서 퇴출 되는 것과 다름없기 때문이다. 보험 적용을 받지 못하면 환자들이 약값을 모두 지급해야 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처방 의약품을 바꿀 수밖에 없다.
리베이트 규모가 크지 않아 보험 정지 기간이 1~2개월에 불과하더라도 보험 중단 기간 다른 의약품으로 대체되기 때문에 시장에서의 입지는 더욱 좁아진다. 제약사로서는 리베이트로 적발되면 막대한 매출 손실을 감수해야 한다.
복지부와 별도로 식품의약품안전처는 리베이트 의약품에 대해 3개월 판매 정지 처분을 내리지만, 이때 제약사가 도매상이나 약국에 공급하는 행위만 제한하기 때문에 제약사의 실질적인 손실은 크지 않은 편이다.
사실 리베이트 의약품의 급여 정지는 기존에 시행했던 리베이트 의약품 약가인하 제도에 허점이 노출되면서 새롭게 도입한 제도다.
당초 복지부는 지난 2009년부터 리베이트 의약품의 보험약가를 깎는 처분 기준을 운영했다. 매출 대비 리베이트 금액의 비율을 따져 보험약가를 최대 20% 인하하는 제재다.
그러나 제약사들이 제기한 처분 취소소송에서 특정 거래처에 제공한 리베이트 행위만으로 해당 의약품의 약가를 일괄 인하하는 것은 무리한 행정이라는 이유로 법원에서 잇따라 제동이 걸리기도 했다.
지난 2010년 동아에스티(옛 동아제약)는 보건소에 처방 대가로 불법 리베이트를 제공한 사실이 적발됐다. 당시 복지부는 총 11개 품목의 보험약가를 20% 인하하는 처분을 내렸다.
동아에스티는 "특정 거래처 한 곳에 제공한 리베이트 행위만으로 해당 의약품의 약가를 일괄 인하하는 것은 무리한 행정"이라는 주장을 펼쳤다. 철원보건소에서 처방된 의약품의 처방액은 동아제약 매출액의 0.1%에도 못 미치는 미미한 수준이다. 이를 근거로 일률적으로 20%의 약가를 인하하는 것은 적법하지 않다는 것이다.
결국 재판부는 "약가인하의 전제가 된 조사대상 요양기관, 리베이트 액수, 처방총액 등은 리베이트 약가인하 연동제를 그대로 적용할만한 최소한의 표본성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결내렸다. 이후 복지부는 리베이트 의약품 급여정지를 도입하면서 기존의 약가인하 처분은 삭제했다.
제약사 한 관계자는 “리베이트 의약품 약가인하 제도도 시행 과정에서 허점이 노출돼 폐지된데 이어 급여정지 처분도 벌써부터 한계가 드러나 또 다시 약가인하를 검토한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일관성 있는 제도 운영이 시급하다”라고 지적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국회 논의과정을 거쳐 급여정지 이외에도 경제적 제재와 같은 실효성 있는 방안을 강구할 계획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