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조정민 기자
"바이오스타트업 취업요? 글쎄요. 삼성이나 한미 같은 대기업도 아니고 부담스럽죠. 사실은 잘 모르기도 해요." "진로요? 박사과정 마치고 포닥(박사후 연구원) 가서 그 다음에 교수나 정부산하기관 연구원에 도전해 봐야죠."
한국산업기술평가위원회가 발표한 '바이오의약 2016년 연구개발 주요성과 및 2017년 추진계획’에 따르면 국내 바이오 기업은 2014년 기준 975개다. 하지만 이 중에서 알려진 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바이오 분야를 공부하고 연구원으로 일하는 사람에게도 바이오텍은 미지의 세계다. 일부에게는 존재 자체를 인식하지 못하는 ‘유령'이다.
바이오스펙테이터는 창간 1주년을 맞아 바이오기업, 특히 바이오스타트업에서 근무하는 '내부자' 5명을 만나 그들이 바이오스타트업에 도전한 이유, 실제 근무하면서 느꼈던 가능성과 한계 등을 함께 나눴다. 이를 통해 '일자리 부족' 시대에 바이오기업이 새로운 대안이 될 방안을 모색해보고자 한다.
이번 인터뷰에는 에이비엘 바이오(ablbio)의 이요섭(석사/인비보 연구팀), 더웨이브톡의 이승아(석사/제품기획, 마케팅팀), 지피씨알의 손도현(박사/맞춤항암제 개발팀), 이미림(석사/맞춤항암제 개발팀), 양창수(석사/맞춤항암제 개발팀) 연구원이 참여했다.
- 바이오 스타트업에 도전한 ‘용자’들이다. 어떻게 해서 스타트업에 도전하게 됐나?
▶손도현(지피씨알): 성균관대 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남들과 똑같이 박사후 연구원 과정을 2년간 했다. 많은 바이오 전공자들이 학위를 마치고 나서 교수가 될 꿈을 갖는데,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가능성이 너무 낮다고 판단했다. 요즘은 네이처, 사이언스 같이 대단한 학술지에 논문 내도 교수 자리가 보장되질 않는다. 그래서 취업 전선에 뛰어들었다. 취업 준비할 때는 대기업도 지원하고 여러 다른 벤처기업도 지원해서 합격했지만, 회사의 비전과 역량 등을 비교해보고 지피씨알을 선택했다.
▶이승아(더웨이브톡): 호주 멜버른대학교에서 유학을 마치고 고려대학교 인지심리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한국과학기술연구원 로봇연구단의 UX디자이너로 일했다. 아무래도 비정규직이었던 터라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보면서 여러 곳을 찾았다. 처음부터 스타트업에 대해서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어 두루 알아보던 중 업계에서 대우가 좋은 더웨이브톡에 오게 됐다.
▶이미림(지피씨알): 석사 학위를 받은 이후 연세대 세브란스 임상 연구실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다. 바이오 전공자들은 많이 알겠지만, 연구원 자리는 비정규직이 많다. 미래에 대해 고민을 하던 와중에 괜찮은 회사가 있으니 가보지 않겠냐는 추천을 받아서 지피씨알을 알게 됐고, 경력직으로 입사하게 됐다.
▶이요섭(에이비엘): 석사과정을 마치고 나서 바로 취업을 준비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 모두 지원했다. 사실 몇 개 안되는 들어본 스타트업 가운데 에이비엘 바이오가 괜찮다는 교수님 평판을 들은 적이 있다. 동물실험을 진행한 경험이 있어서 분야를 맞춰서 지원하게 됐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모두 석사 이상의 학위를 받았다. 그 정도 높은 스펙을 가지고 스타트업에 도전한다고 했을 때, 주변에서 말리거나 반대하지 않았나?
▶이승아(더웨이브톡): 사실 나는 아직 수습기간이기 때문에 아주 친한 친구들만 알고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하지만 지도교수님께서는 내 행보에 대해 좋게 말씀해 주신다. 졸업하면 보통 대기업, 교수, 유학 등 비슷하게 정해진 루트로만 가고, 선택의 다양성이 없어 아쉬운데 내가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것 자체를 긍정적으로 보고 응원해 주신다. 아마 내 얼굴이 너무 좋아져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 수도 있다. 좋은 사람들과 일하며 새로운 경험을 즐기는 것이 얼굴에 보이나 보다.
▶손도현(지피씨알): 박사학위 따고 포닥(Postdoc, 박사후연구원)까지 한 아들이 스타트업 벤처에 취직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이 많이 반대하셨다. 당연히 공부 많이 한 아들이 작은 기업에 간다고 하니까 서운하고 당혹스럽기도 하신 것 같다. 하지만 내가 고른 회사의 비전에 대해 설명하고 그 회사와 내 꿈이 얼마나 일치하는지 등에 대해 말하며 부모님을 설득했다. 결국은 부모님이 내 열정과 앞으로의 계획을 인정하셨다.
- 스타트업에 취업할 때 생각했던 것과 막상 현장에서 일하며 겪은 것에서 차이가 있을 것 같은데, 어떤가?
▶이승아(더웨이브톡): IT분야의 스타트업과 비교했을 때 바이오 스타트업의 경우, 같이 일하는 분들의 연배가 높기 때문에 상상하는 것만큼 수평적인 분위기는 아니다. 그렇지만 어떤 일을 진행할 때 일방적인 오더를 내리는거나 하는 일은 없다. 오히려 일을 진행할 때, 내가 결정하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 ‘선 진행, 후 보고’ 랄까?
▶이요섭(에이비엘): 스타트업하면 아무래도 대기업 등에 비해 자유로운 분위기를 기대하기 마련인 것 같다. 나 역시도 그런 면을 기대했다. 에이비엘은 기본적인 근무 기준은 9시부터 6시로 정해져 있지만 유연하게 더 일찍 퇴근할 수도, 더 늦게까지 일할 수 도 있는 자유형태다.
▶손도현(지피씨알): 사실 나도 자율적인 면에 있어서 굉장히 기대를 많이 했는데, 아무래도 조직이다 보니 생각만큼 자유롭지는 않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큰 틀에서의 규칙만 지키면 작은 부분에서는 자율적인 부분이 많다.
- 스타트업에서 일하면서 느낀 장점은 뭐가 있나?
▶이승아(더웨이브톡): 이전에 연구원으로 일했던 곳에서는 모든 것이 규격화되고 과정마다 문서화 된 형태를 거쳐야 하고 먼저 보고하고 확인 받는 수직적인 결제구조가 있었다. 일하는 입장에서는 정해진대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문제 없으니까 편한 면도 있었다. 하지만 더웨이브톡에 옮겨오고 나서 내 일에 대한 자율성이 최대치로 올라갔다. 제안도 내가 하고, 결정도 내가 하고, 진행도 내가 한다. 그리고 물론 책임도 진다. 위에서 일방적으로 시키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어떤 것을 제안하면 위에서 ‘그럼 한번 해봐’라 한다. 사실 일하기 시작한지 얼마 안되고 이런 새로운 시스템에 적응하느라 조금 힘든 것도 있지만, 미래의 내 능력을 향상하는 차원에서는 꼭 경험해야 할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여기서 잘 버텨내고 나면, 어디서든지 일당백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손도현(지피씨알): 대기업 연구소 같은 곳은 어떤 실험을 진행할 때, 굉장히 분업화가 이뤄져 있어 내가 맡은 정해진 부분만 수행한다고 들었다. 물론 그렇게 분업화해서 자기가 맡은 부분을 반복 수행하다 보면 숙달되고 전문가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팀 위주로 계획되고 진행하다 보니 스케줄 조정이나 실험 설계 면에서 자유가 부족하다고 들었다. 우리 회사의 경우, 큰 틀에서의 오더는 있지만 그 밑의 작은 부분에서는 자율성이 보장된다. 실험을 설계할 때도, 내가 하고자 하는 방향에 맞춰 계획할 수 있고 내 일정에 맞춰서 스케줄을 짜는 것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요섭(에이비엘): 주로 회사 구성원들이 30대~40대 초반의 연령대라서 문화 자체가 수평적이다. R&D에 특화된 회사답게 소수의 인원을 제외하고는 모두 연구원이다. 회사에서 뽑은 정규직 신입은 내가 처음일 정도로, 모두 각계의 전문가들이 모여 있기 때문에 의견 교류가 활발하고 배울 점이 많다.
- 너무 좋은 점들만 말했다. 솔직하게 단점도 얘기해보자.
▶이미림(지피씨알): 스타트업은 말그대로 신생이기 때문에 당연히 아직 어리숙한 부분이 있다. 대표를 비롯해 임원급의 사람들이 대기업 등을 경험하고 오는 경우가 많은데, 그 분들이 머릿속으론 대기업의 딱딱한 문화가 문제라고 생각하고 유연하고 수평적인 문화를 만들고 싶어한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그 문화가 골고루 스며들지 않았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 몸과 마음이 받아들이는 것이 어려운 것이다. 이건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라고 생각한다.
▶손도현(지피씨알): 맞다. 스타트업은 시작이나 마찬가지기 때문에 해야 하는 일이 많은데, 방향 설정이 중요한 것 같다. 그 방향을 설정하고 이끌어가는 리더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상과 현실에 대한 충돌이 많은데 그래도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가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이요섭(에이비엘): 스타트업이지만 구성원들이 대기업 출신이 많기 때문에 생기는 애매한 점이 있다. 예를 들면, 어떤 일은 대기업 기준으로 잣대가 적용되고 어떤 일은 벤처 기준으로 적용되는 상황? 스타트업은 처음부터 구성원들이 만들어 나가야 되는 것이라서 그런 갈등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적극적으로 조율하고 타협하는 자세가 있으면 해결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이승아(더웨이브톡): 일반 기업과 달리 스타트업은 임원급과 직접적으로 소통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그런 단점이 부각되는 것 같다.
- 스타트업이 가장 어려움을 호소하는게 구인난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나?
▶이요섭(에이비엘): 솔직히 공개되는 정보가 없다. 전공하고 실험한 것이 특정분야에 국한되기 때문에 회사에 대한 정보가 있어야 내가 그 회사에 가서 할 수 있는게 있을지 판단하고 지원할 수 있는데, 공개된 정보가 없어서 판단이 어렵다. 그러다 보니 불안해서 더 안 가게 된다. 정확한 기술 공개는 어렵다고 하더라도 부가가치가 높은 최신기술이라는 점에 초점을 맞춰서 관련 정보를 많이 알리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손도현(지피씨알): 회사에서는 회사의 미래 가치를 보고 거기에 맞는 인재를 뽑고 싶어한다. 그런데 미래의 모습과 현실에 있는 괴리에 대해 생각해야한다. 지원자들은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회사의 미래가치를 판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현재 상황만 보게 된다. 그러니 우선 대기업과 똑같은 정도는 아니어도 유사한 환경은 만들어줘야 한다.
▶양창수(지피씨알): 회사가 어떤 특정 분야의 연구를 하는지 알면 사실 실험하는 입장에서는 장점이 명확하다. 나는 어떤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앞으로 어떤 걸 한다는 걸 다 파악할 수 있으니까. 그런 정보만 알 수 있어도 훨씬 인력 뽑는게 수월할 것 같다.
- 스타트업에 적합한 인재상이라면 어떤 게 있을까?
▶이요섭(에이비엘): 욕심이 많은 사람이 유리한 것 같다. 한 가지만 하는 것보다 이것저것 경험하고 도전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 남들이 아직 하지 않는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낸다는 것에 대해 성취감을 느끼는 사람이면 잘 맞을 거다.
▶이승아(더웨이브톡): 꿈에 대한 명확한 생각을 가진 사람이 적합한 것 같다. 우리 회사의 경우에는 입사하고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신의 꿈에 대해서 발표하는 자리가 있다. 그 꿈에 대해서 회사 사람들이 듣고 회사의 꿈과 공통점이 있으면 적극적으로 이룰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자기가 명확하게 이루고자 하는 것이 있는 사람에겐 더 발전하는 기회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손도현(지피씨알): 기본적으로 신규기술에 대해 관심이 높고 흥미가 있는 사람이어야 된다. 시키는 것 외에도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찾아서 할 수 있는 사람이 유리하다. 또 스타트업의 혜택 중에 스톡옵션과 같은 제도가 있으니 ‘회사를 반드시 성공시키겠다’라는 주인의식이 투철하면 좋은 결과를 낼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 앞으로 스타트업 취업을 준비하는 취준생 후배들에게 우리 회사 장점을 어필한다면?
▶손도현(지피씨알): 우리 회사가 진행하고 있는 프로젝트는 ‘신약재창출’ 방식으로 맞춤항암제를 개발하는 것인데, 프로젝트의 아이디어가 매우 좋고 성공 가능성이 높다. 대표님이 그간 쌓아온 경력과 인맥이 넓고 탄탄해 회사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앞으로 더 성장할 가능성이 높은 회사다. 또한 직원 복지를 생각해 회사 근처에서 자취하는 미혼 직원들의 월세를 50% 지원해준다. 직원간 커뮤니케이션이 좋아서 팀워크가 좋은 게 장점이다.
▶이승아(더웨이브톡): 우리 회사가 가진 기술이 워낙 독보적이고 기존에 없던 제품이라서 많은 기업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최근 기술을 선보인 시연회에서도 대기업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우리 기술을 인정하고 관심을 보였다. 이제 곧 시제품화가 이뤄질 예정이며 일차적인 목표를 이루는 것이 멀지 않다는 것이 장점이다. 앞으로 더 넓은 시장성을 가지고 있어 성장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생각한다.
▶이요섭(에이비엘): 우리는 이중항체 기술과 ADC 원천기술을 바탕으로 항암제와 퇴행성 뇌질환 치료제를 개발하고 있다. 각계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합심한터라 보통의 신약개발기간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중이다. 유연한 기업문화 속에서 많은 걸 배우고 싶다면 우리 회사가 적격일 것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이승아(더웨이브톡): 너무 뻔한 이야기 같겠지만, 도전해보라고 하고 싶다. 솔직히 ‘석사까지 하고 스타트업에 왜 가?’ 이런 남의 시선을 신경 써서 망설이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대기업에 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나 다 대기업이 적성에 맞는다는 보장도 없다. 진짜 매력이 있고 끌리는 곳이 있다면 과감히 도전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요섭(에이비엘): 그런데 도전하기 위해서는 당사자 뿐만 아니라 주변의 인식도 많이 개선돼야 한다. 무조건 스타트업은 안 좋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회 분위기가 나아지기 위해서는 더 성공사례를 많이 보여줘야 한다는 책임감 같은 것이 있다.
▶이미림(지피씨알): 스타트업에 도전한다면 자신의 능력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는게 중요하다. 회사가 성장하는 것에 맞춰서 내가 열심히 쫓아가야 한다. ‘정말 잘하고 있나?’ 의심이 들더라도 스스로 이겨내고 꿋꿋이 버틸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가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