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
지난 6월 7일자 로이터스(Reuters)가 발표한 “아태지역에서 가장 혁신적인 대학” 명단을 보면, 좀 의아한 면이 있다. 상위 10개 대학 중 5개가 한국 대학교이다. 카이스트(1), 서울대학교(2), 포항공대(4), 성균관대학교(5) 그리고 한양대학교(10). 설마….
우리에게 동경의 대상이 되거나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고 있는 유수의 대학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결과이다. 동경대학교(3), 칭화대(6), 토호쿠대(7), 쿄토대(8), 오사카대(9).
로이터스가 밝힌 평가 방식 은 주로 특허에 맞추어져 있다. 국제특허 출원 건수, 주요국 특허 등록건수, 특허인용정도 등.
한편, 논문 중심의 평가를 통해 해마다 발표되는 US News & World Report 의 아시아 지역 대학평가 에서는 동경대(1), 싱가포르국립대(2), 칭화대 (4) 등이고, 서울대학교가 9위를 차지하는 등 Reuters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지만, 하나의 평가 방식이 모든 것을 말해주지 않기에, Reuters의 평가는 분명 우리가 알지 못했던 우리나라 대학들의 현재 위상과 경쟁력을 분명히 말해주고 있다.
흔히들, 자녀의 참모습을 가장 늦게 아는 사람들이 부모라고 한다. 늘 품 안에만 있던 자녀가 학교를 가고 친구를 사귀면, 차츰차츰 부모와 함께 하는 시간들이 줄어든다. 그리고 자녀들은 외부에 노출되면서 다양한 모습을 가지게 된다. 그런데 부모는 자녀를 아직도 어린아이로만 보고 바뀌고 있는 자녀의 모습에 적응을 못한다.
늘, 국내에서 여러 개선요구의 목소리들과 답답한 하소연들을 들으면서, 어느덧 성장하고 성숙해가고 있는 우리 스스로의 모습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한국 최초의 제약회사인 동화약품이 설립된 1897년으로부터는 120년, 최초의 바이오텍인 한국생공(현, 바이오니아)이 1992년 8월 설립된 이래로는 이제 25년이 지났다. 그 사이 바이오텍 붐들과 거품붕괴 그리고 그에 따른 혹독한 투자 빙하기 등을 몇 번을 거쳤다. 우리 제약바이오 업계는 바이오텍들이 연구개발에 사운을 걸면서 성장해 가는 사이, 제약업계들도 신약연구개발을 사업의 핵심가치로 점점 받아들이기 시작하였고, 한미약품, 동아ST 등 선도기업들이 큰 성과를 이루고 있다. 바이오텍들도 설립초기부터 과거와는 비교되지 않는 규모의 자금조달을 진행하며 국내가 아닌 국제무대를 향해 달리고 있다.
모든 위대한 것들도 출발은 작게 한다고 한다. 아무리 위대한 위인도, 장군의 복장으로 혹은 과학자의 복장으로 태어날 수 없다. 모두와 같이 벌거벗은 갓난아이로 태어난다.
한국 제약바이오는 정말 작게 출발했다. 선진국에서 하는 (혹은 하던) 것들을 흉내내면서 시작했다. 개선신약으로 큰 수업료를 치르면서 배우기도 했다. 그리고 차츰차츰 독창적인 것을 추구하고 있다.
미국과 비교하면 모든 것이 아쉽고, 절박한 것이 변함없는 사실이지만, 그래도 우리 스스로 조금은 “자축”을 할 필요도 있다. 그리고 서로를 향해 박수를 보내며 격려하고 함께 힘을 북돋을 필요가 있다.
우리 주변의 그들도, 우리각자처럼 부족한 자금과 인력, 제도적 미비점과 제한된 네트워크 속에서도 의미있는 연구개발 결과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도전하는 “의지의 한국인”들이다.
각자 달리던 길에서 잠시 숨을 돌려, 대한민국이라는 생태계 안에서 세계를 향해 함께 달리고 있는 주변을 보자. 아시아 최고의 대학들을 보고, 대규모 라이센스 계약을 성사시킨 기업들을 보자. 오늘을 넘기기 위해 힘겹게 힘겹게 땀흘리는 작은 바이오텍들을 보고, 큰 꿈을 가지고 막 출발하는 신생기업들을 보자. 이들 각각의 선전이 결국은 대한민국에서 출발하는 모든 제약바이오의 위상을 키워줄 것이다. 그러니.. 우리는 한 울타리 안에 있는 한 식구들이다.
앞으로 개선하고, 변혁해야 할 수많은 과제들이 있지만, 아시아 최고 혁신 대학들로 선정된 대학들과 함께, 그 동안 수고한 대한민국 제약바이오 생태계의 모든 일원(학계, 산업계, 연구계, 투자가들 및 공공부문들) 들과 서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자랑스러워하는 하루를 보내는 것도 좋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