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국내제약사들의 베트남 시장 진출 전략에 ‘빨간불’이 켜졌다. 한국 보건당국의 잇따른 국제협의체 가입 효과로 베트남 정부입찰 문턱이 낮아질 것으로 예상됐지만 도리어 현지 규제가 강화되는 돌발 변수가 발생했다. 베트남에 제네릭 수출 계획을 세웠던 제약사들은 발만 동동 구르는 형국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도 대책방안을 고민하겠다는 입장이다.
15일 제약업계와 식약처에 따르면 베트남 보건부는 최근 제네릭 의약품의 입찰 등급제에 대한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예고했다.
베트남 의료기관은 공공입찰을 통해 의약품을 구매하는데, 입찰에 참여하는 업체는 수출국 의약품 규제와 제조시설의 수준에 따라 1~5등급으로 구분해 운영한다. 높은 등급을 받을수록 베트남 내 의약품 공공입찰에서 등급이 낮은 업체보다 우선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고 입찰 참여 품목 범위도 확대된다.
베트남 보건부가 이번에 예고한 입찰 등급제 가이드라인은 기존보다 엄격한 요건을 담았다는 점이 특징이다.
기존에는 ‘ICH 가입국 또는 호주 소재 제약사로서 EU GMP 또는 PIC/S GMP 적용 의약품, 베트남 보건부로부터 WHO GMP 인정 후 호주 또는 ICH 가입국에 판매되는 의약품’을 1등급으로 분류됐다.
PIC/S(Pharmaceutical Inspection Co-operation Scheme, 의약품실사상호협력기구)는 의약품 제조‧품질관리기준(GMP)과 GMP 실사에 대한 국제 조화를 주도하는 유일한 국제협의체로 미국, 유럽 등 46개국 가입돼있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4년 7월 가입했다.
ICH(Internaional Council on Harmonisation of Technical Requirements for Pharmaceuticals for Human Use, 국제의약품규제조화위원회) 는 의약품 안전성, 유효성, 품질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제·개정하는 의약품 규제분야 국제협의체로 미국, 유럽위원회, 일본, 스위스, 캐나다 등 5개 의약품 규제당국자와 미국·유럽·일본제약협회로 구성됐다. 식약처는 지난해 11월 의약품 규제당국자로는 6번째 ICH 가입 국가로 승인받았다.
베트남 보건부가 예고한 가이드라인에서는 1등급은 호주 또는 ICH가입국의 EU-GMP 제조시설에서 생산된 의약품이 대상이다. ICH가입국과 EU-GMP라는 조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는 의미다. PIC/S 가입 여부는 등급 책정시 고려하는 조건에서 삭제됐다.
기존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식약처의 PIC/S와 ICH 가입으로 국내제약사들은 EU-GMP 제조시설 보유와 무관하게 1등급 자격을 부여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새로운 가이드라인을 적용하면 국내제약사들은 EU GMP 제조시설을 보유하지 않으면 베트남 의약품 공공입찰에서 1등급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베트남 의약품 공공입찰 1등급 자격을 예상하고 현지 입찰을 준비했던 제약사들은 당혹스러운 입장이다. 한 제약사 관계자는 “정부의 국제 협의기구 가입으로 베트남 입찰이 수월해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갑작스러운 등급 자격 조정에 수출 계획에 차질이 빚어질 전망이다”라고 토로했다.
실제로 식약처는 지난 2월 보도자료를 내고 PIC/S 가입 효과로 베트남 정부가 국내제약사의 제네릭의약품에 대한 공공입찰 등급을 상향 조정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때 동광제약, 동국제약, 명문제약 등 8개업체의 등급이 3등급 또는 5등급에서 2등급으로 상승했다. 당시 식약처는 ICH 정회원국 가입이 반영되면 추가 등급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베트남 보건부의 새로운 가이드라인에 대한 해석 여부를 두고 업계내에서도 혼선이 가중되는 분위기다. 예를 들어 ‘호주 또는 ICH가입국의 EU-GMP 제조시설에서 생산된 의약품’이라는 1등급 요건을 두고 업계 일각에서는 호주 또는 ICH가입국 또는 EU-GMP 제조시설‘로 해석하는 시각이 제기돼 갑론을박이 펼쳐지는 실정이다.
식약처도 진상 파악에 나섰다. 식약처 관계자는 “최근 제약업계 실무자들을 만나 새롭게 예고된 가이드라인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베트남 보건부와 새로운 가이드라인의 구체적인 내용과 계획 등을 논의할 계획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