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이은아 기자
지동현 한국임상시험산업본부(KoNECT) 이사장이 “한국의 신약개발 생태계 내에서 가장 부족한 시스템이 중개임상연구 분야”라며 "이 때문에 기초연구의 성과가 환자 및 산업으로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중개연구는 과학자들의 기초연구가 환자와 보건시스템에 적용되도록 촉진하는 모든 연구를 말한다.
지 이사장은 최근 바이오스펙테이터와 만난 자리에서 국내 바이오·제약회사의 신약·임상 개발과 임상시험 산업의 문제점을 진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소개했다.
그는 또 국내 임상시험산업 내 현안을 해결하고 임상시험 개발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KoNECT의 5가지 중장기방향을 제시했다. 연구자주도 임상시험 활성화를 비롯해 △초기 임상시험 개발역량 강화 △임상시험 경쟁력 유지 △임상개발 컨설팅 자문단 구성 △임상시험 인력개발 등이다.
KoNECT는 국내 임상시험산업의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해 2014년 3월 보건복지부 산하 재단으로 출범했다. 지 이사장은 고려의대 소아과 전문의로 한국애브비 부사장을 거처 KoNECT의 이사장을 맡고 있다.
◇중개임상연구 부족 해결을 위한 연구자주도임상연구 활성화
기초연구는 유전체학, 단백질체학 등의 발전으로 세계적으로 20~30년 동안 엄청난 속도로 발전해왔지만 정작 이러한 연구가 환자에게 도달하는 속도는 더딘 게 사실이다. 중개연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미국 정부는 2004년부터 중개임상연구 부족을 개선하고자 미국 국립보건연구원(NIH) 산하 국립첨단중개과학연구소(NCATS)를 통해 중개연구와 연구자주도임상연구에 지원하기 시작했다. 2015년 설립된 일본의료연구개발기구(AMED)도 ‘Project for Japan Translational and Clinical Research Core Centers' 사업을 통해 아카데미에서 나오는 시드(seed)를 위한 연구자주도임상연구에 투자하고 있다. 단지 연구비 지원뿐 아니라 신약허가에 제출할 수 있는 데이터의 질과 환자 수 확보를 위한 임상연구 네트워크와 각 임상시험의 수행도 지원한다.
이러한 성과로 AMED의 초기였던 2013년부터 5년간 21개 제품이 시판허가를 받았고 14개의 중심센터에서 826건의 연구자주도임상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특히 일본과 유럽은 자국 뿐 아니라 해외의 연구자까지 지원하여 자국개발 상품의 해외진출과 해외의 우수한 시드를 확보하는 오픈이노베이션의 교두보로 이용하고 있다.
중개임상연구가 절대적으로 부족한 국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지 이사장은 “국내 연구자주도임상시험 활성화를 위해 정부에 연구자주도임상시험의 국민건강보험 적용을 비롯해 여러 가지 제안을 건의한 상태”라면서 “법률 및 정책 조정뿐 아니라 연구자주도임상시험 지원을 위한 인프라 구축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 변화하는 신약개발 패러다임, 초기임상시험 개발역량 강화해야
신약개발의 패러다임이 과거 디스커버리, 전임상, 임상 1·2·3상으로 이르는 전통적인 개발 방식을 벗어나 '퀵 윈-페일 페스트(Quick-Win, Fail Fast)‘로 변화하하고 있다. 보다 적은 비용으로 효율적으로 POC(Proof of concept)에 도달하는 것으로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는 후기 임상전에 적극적으로 개입해 기술적 불확실성을 줄이려는 노력이다.
이때문에 초기임상시험 개발역량은 글로벌 임상시험의 리더십을 갖는데 더욱 중요해졌다. 초기임상에서 가능한 많은 정보를 얻고 경제적·시간적 비용이 많이 드는 후기임상에는 조심스러운 접근으로 변하는 추세기 때문에 초기임상 개발역량을 키우지 않으면 임상시험의 리더십을 갖기 어렵다는 얘기다.
임상연구자 뿐 아니라 식약처와 같은 규제기관의 과학적 리더십도 필요하다. 중국은 2015년부터 꾸준히 임상시험 승인 및 허가 규제시스템을 개선해 2015년 임상시험 세계 11위에서 2016년 6위을 거처 2017년은 2~3위로 오를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글로벌 임상시험 데이터를 허가자료로 받기 시작한 일본의 추격도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지 이사장은 “이를 위해 초기임상시험기술 지원과 규제의 선진화를 위해 노력이 필수”라며 “KoNECT는 임상개발 자문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선도센터 등의 초기임상시험 인프라와 기술이 기업에 연결될 수 있도록 협약을 맺고, 범부처신약개발사업단과 함께 ‘Global 임상개발 포럼'을 격월로 개최해 국내 초기임상시험의 다양한 경험과 시도를 소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초기임상시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국가임상시험사업을 통해 이루어진 지역임상시험센터와 글로벌선도센터 등의 인프라와 시스템을 활용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라 전했다. 그는 “신약개발 연구 환경을 지속하고 의료정보와 병원 내 연구자원을 적극적으로 연계·활용할 수 있는 범국가적(Nation-wide) 임상시험 네트워크 구축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글로벌 수준에서 한국이 임상시험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지 이사장은 “IT 기반 임상시험 수행능력을 강화한 스마트 임상시험센터를 구축해 임상시험 성공을 높이고 임상시험 참가자의 안전성 관리와 임상시험의 효율성을 증대시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과학자·의사·제약사 협업, 중개연구 어려운 이유
지 이사장이 실제 임상현장에서 바라본 국내 신약개발 생태계의 문제점은 무엇일까? 신약개발과 임상시험 과정에서 기초연구자, 의사과학자, 바이오·제약회사가 협업하기 어려운 신약개발 생태계다. 그는 “기초연구자는 전체 신약개발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자신의 연구가 환자에게 적용되려면 어떤 데이터가 더 필요하고 이를 위해 누구의 도움이 필요한지를 알 수 없는 게 일반적"이라고 꼬집었다.
국내 의사과학자가 임상연구보다는 실험실 연구를 더 선호하는 경향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또한 그는 “의사과학자가 가지고 있는 전문분야의 지식과 경험이 기초연구를 임상단계로 진입시키는 데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잘 모르거나 관심이 적은 편"이라며 “진료중심의 병원에서 신약개발 생태계 내 자신의 역할에 대해 생각할 시간과 여유가 없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전했다.
또한 “제약사의 경우는 스스로 다양한 생태계 내 전문가와 협력하는 것에 대한 경험이 없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생태계 내 단계별 주체자가 서로 어떤 연구를 하는지, 어떤 연구 장비와 시설 인력, 환자 풀이 있는지 안다면 협력은 좀 더 쉬워질 것“이라고 제안했다. 실제 영국은 이러한 정보를 제공하는 UKCRC(UK Clinical Research Collaboration)의 플랫폼으로 임상시험 환경을 개선하고 있다.
연구기관이나 제약회사에서 개발한 후보물질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그 기술만 가지고 다음 단계인 임상시험으로 진입하기는 어렵다. 지 이사장은 “관산학연을 통틀어 분야별 전문가로 구성된 자문단이 머리를 맞대고 기술과 지식을 전 산업이 공유한다면 문제가 더욱 쉽게 해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유럽의 민간제휴 유럽혁신의약이니셔티브(IMI)가 그 예이다. KoNECT도 임상개발을 준비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국내 바이오회사를 위해 올 하반기부터 ‘Dream Team' 자문 프로그램을 시작한다.
◇임상 경쟁력 손실, 오랜 숙원사업인 임상시험 서식표준화 필요
임상시험을 위한 기관생명윤리위원(IRB)와 같은 서식표준화도 필요하다. 지 이사장은 “central IRB, Joint IRB와 같이 공용 IRB로 운영되고 있는 외국과 달리 한국은 각 기관별로 IRB 승인을 요구하는 것이 일반적”이라며 “이 경우 각 심사위원회에서 요청하는 서식이 다르기 때문에 기관별 심사위원회 서류작성에 많은 시간과 인력을 소요돼 임상시험 개시가 지연돼 국제경쟁력 소실 요인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경우 2016년 6월부터 시행된 single IRB 정책에 따라 NIH가 연구비를 지원하고 두 개 이상의 기관이 참여하는 다기관 임상시험의 경우 single IRB의 검토를 받는다. 다기관 임상시험의 경우 동일 연구의 프로토콜과 동의서 심의를 IRB 각각이 검토하는데 많은 시간과 인력이 드는 점을 해소하기 위한 일환이다.
지 이사장은 “한국도 의약품 임상시험 관리기준에 의거하여 다기관 임상시험의 경우 공동심사위원회에서 심의할 수 있도록 해 현재 4개의 공동심사위원회가 운영되고 있다”면서 “긍정적인 진전이라고 볼 수 있지만 전체적으로 이용은 아직 미미하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