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일동제약이 창립 76년만에 내놓은 첫 신약 ‘베시보’의 출격 날짜가 내달 1일로 확정됐다. LG화학과 일동제약의 연구개발(R&D) 노하우가 집약된 신약의 출시로 업계의 이목을 끈다. 회사 측은 베시보가 임상시험에서 입증한 우수한 효과가 시장에서도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하는 분위기다. 다만 기존 치료제들에 대한 높은 만족도와 제한된 처방영역, 국내기업들의 경쟁약물 복제약(제네릭) 무더기 출시 등 적잖은 난관을 넘어야 하는 숙제가 많다는 지적이다.
◇내달부터 '베시보' 보험급여 적용..약가 3403원ㆍ비리어드와 바라크루드 사이
2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일동제약의 B형간염치료제 ‘베시보’(성분명 베시포비르)가 11월1일부터 보험급여가 적용된다. 보험상한가는 건보공단과의 약가협상을 거쳐 3403원으로 책정됐다.
베시보는 국내 기술로 개발한 최초의 뉴클레오타이드계열 만성B형간염치료제로 일동제약이 지난 1941년 창립 이후 처음으로 배출한 신약이다. 지난 2012년 LG화학(옛 LG생명과학)이 베시보의 임상2상시험까지 완료한 상태에서 일동제약에 판권을 이전했다. 일동제약이 임상3상시험과 허가절차를 마쳤고 생산·판매를 담당한다.
베시보의 보험약가는 경쟁약물의 약가를 참고해 선정됐다. 베시보는 혈청 L-카르니틴의 저하를 막기 위해 ‘L-카르니틴’ 660mg을 함께 투여하도록 허가받았는데, 일동제약의 L-카르니틴 ‘엘칸330mg'의 보험약가가 111원을 적용하면 사실상 베시보의 1일 보험약가는 3625원인 셈이다.
이는 국내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경구용 B형간염치료제 ‘비리어드’(4850원)보다는 35% 저렴하고 ‘바라크루드0.5mg’(3082원)보다 18% 높은 수준이다.
일동제약 입장에선 비리어드에 근접한 약가를 희망했던 것으로 전해졌지만 바라크루드가 2015년 특허만료 이후 제네릭 발매로 보험약가가 5755원에서 큰 폭으로 떨어진 것이 상대적으로 약가산정에서 불리한 요소가 됐다. 신약의 보험약가는 대체가능한 약물의 가중평균가를 참고해 산정한다. 가중평균가는 동일 성분 의약품의 판매량과 가격 등을 고려해 책정한 평균 가격을 말한다.
오히려 비리어드가 아직 동일 성분의 제네릭이 등장하지 않아 약가가 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위안이다. 현재 비리어드의 부가 성분인 ‘염’을 변경한 제네릭은 판매 중이지만 동일 성분의 제네릭은 특허 문제로 아직 판매되지 않고 있다. 만약 비리어드와 동일 성분 제네릭이 출시돼 비리어드의 약가가 인하됐다면 베시보의 보험약가는 더 낮은 수준에서 결정될 수 있었다는 의미다.
◇B형간염약 시장 바라크루드ㆍ비리어드 양강구도..일동 "베시보, 대등한 경쟁력 확보
일동제약은 베시보가 임상시험에서 검증된 효능을 무기로 시장에서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기대한다.
현재 국내에서 팔리는 경구용 B형간염치료제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제픽스’와 ‘헵세라’, 노바티스의 ‘세비보’, 부광약품의 ‘레보비르’, BMS의 ‘바라크루드’, 길리어드의 ‘비리어드’ 등이 있지만 바라크루드와 비리어드가 양분하는 구도다.
2000년대 초반까지 당초 베시보와 같은 경구용 B형간염치료제는 글락소스미스클라인의 ‘제픽스’와 ‘헵세라’ 2종 뿐이었다. 그러나 2007년 브리스톨-마이어스 스퀴브(BMS)가 새로운 B형간염치료제 ‘바라크루드’를 내놓으면서 단번에 판도는 재편됐다.
의약품 조사업체 유비스트에 따르면 바라크루드는 지난 2011년 1354억원의 원외 처방실적을 기록하며 전체 의약품 중 1위에 등극한 이후 2015년까지 5년 연속 처방실적 1위를 고수했다. 강력한 바이러스 억제 효과와 낮은 내성 발현율이 기존의 약물에 불만을 갖던 환자들의 갈증을 해결해주며 빠른 속도로 시장을 장악했다.
지난 2012년 말 길리어드가 새로운 치료제 '비리어드'를 발매하면서 B형간염치료제 시장은 또 다시 재편됐다. 비리어드는 베시보와 같은 뉴클레오타이드계열 약물이다.
비리어드는 미국에서 지난 2008년 8월 B형간염치료제로 사용허가를 받았지만 2001년부터 에이즈치료제로 사용되며 안전성을 입증했다. '임상시험 결과 5년 투여 내성 발현율 0%'를 앞세운 비리어드는 발매 직후 빠른 속도로 점유율을 확대했다.
비리어드는 지난 2015년 1253억원 원외 처방실적을 기록하며 1000억원을 돌파했고 지난해에는 1541억원으로 바라크루드를 역전하며 전체 의약품 중 처방실적 2위에 올랐다. 제픽스, 헵세라, 레보비르, 세비보 등은 모두 매년 매출이 하락세를 보이며 연 매출이 100억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현재 새롭게 B형간염치료제를 처방받는 환자는 대부분 바라크루드와 비리어드를 복용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베시보는 바라크루드와 비리어드와의 경쟁만 뚫으면 신속하게 시장에 안착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 효능과 안전성만 입증되면 단일 품목으로 1000억원대 매출로 도약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임상시험 결과 베시보는 기존의 대표적인 치료제인 바라크루드와 비리어드와 비교한 무작위·이중맹검 시험에서 대등한 수준의 치료효과를 입증했다”라고 설명했다.
베시보의 주요 임상시험 내용을 보면 바라크루드와 비교한 임상2상시험에서 혈중 B형간염바이러스 DNA정량(HBV-DNA)검사에서 HBV-DNA 수치가 116copies/ml 미만에 도달한 환자의 비율이 79%로 기존의 바라크루드와 동등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 임상시험은 홍콩 및 국내 주요 대학병원 등에서 만성B형간염 환자 114명을 대상으로 96주간 진행됐다.
국내 주요 대학병원 등에서 만성B형간염 환자 197명을 대상으로 비리어드와 비교한 48주 임상3상시험에서는 혈중 B형간염바이러스 DNA정량(HBV-DNA)검사에서 HBV- DNA 수치가 400copies/ml 미만에 도달한 환자의 비율이 85%로 비리어드와 동등 수준의 효과를 입증했다.
부작용 측면에서도 베시보는 기존 약물에 비해 대등하거나 우수한 연구결과가 나타났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일동제약 측은 “임상시험의 추가분석을 통해 기존 테노포비르에서 문제가 됐던 신장기능 저하, 골밀도 감소 등과 같은 대표적인 부작용이 유의미하게 개선됐고 Knodell 괴사염증 지수(Knodell necro-inflammatory score)로 간의 조직학적 개선 효과 측면에서도 비교군 대비 더 우월한 결과를 얻었다”고 평가했다.
신기능 저하와 관련 신장 기능을 측정하는 혈청 크레아티닌 수치(높을수록 신장의 기능이 떨어짐을 의미) 증가율이 테노포비르에 비해 유의미하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뼈의 상태를 측정하는 골밀도 면에서도 테노포비르의 경우 골감소를 보인 환자의 비율이 증가하고 정상적인 골밀도 수치를 보인 환자의 비율이 감소했지만 베시보는 골감소를 보인 환자의 비율이 감소하고 정상적인 골밀도 수치를 보인 환자의 비율은 오히려 증가해 뼈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 않음을 확인했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임상시험기간 동안 베시보에 대한 내성도 발생하지 않았다.
◇보험급여 범위 제한, 국내사 무더기 경쟁약물 제네릭 출시 등 난관
베시보가 효능과 안전성 측면에서 기존 약물과 대등한 경쟁력을 확인했지만 처방 시장 환경은 녹록지 않다.
베시보의 제한된 사용 범위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베시보는 신규 환자에만 건강보험이 적용되도록 급여기준이 결정됐다. 기존에 바라크루드나 비리어드를 복용하는 환자가 베시보로 복용 약물을 바꾸면 보험급여가 적용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현재 약 30만명이 B형간염치료제를 복용 중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B형간염이 만성질환이라는 특성상 지속적으로 약물을 복용 중인 장기복용환자의 비율이 압도적이다.
특히 과거 B형간염치료제가 장기 복용시 내성이나 근육병과 같은 부작용과 같은 문제를 노출했던 것과는 달리 바라크루드와 비리어드는 의료진들과 환자들이 높은 만족도 갖고 있다는 것은 베시보 입장에선 반가운 소식이 아니다.
바라크루드와 비리어드를 복용하는 환자들이 심각한 부작용이 발생하지 않는 한 새로운 약물로 변경할 가능성이 낮다는 의미다. 만약 바라크루드 복용 환자가 내성이 발생하면 비리어드로 처방을 변경하면 되기 때문에 ‘바라크루드-비리어드’의 양강체제는 상호보완적인 견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다.
윤구현 간사랑동우회 대표는 “과거 많은 한계를 보였던 약물과는 달리 바라크루드와 비리어드는 강력한 바이러스 억제 효과와 함께 내성 발현율이 미미한 수준이어서 의료진들과 환자들은 바라크루드 아니면 비리어드라는 인식이 깊게 자리잡았다. 더욱이 B형간염치료제는 내성이 발생할 수 있다는 특성상 큰 문제가 없는한 처방약물을 변경하지 않는 특성이 있다”라고 설명했다.
경쟁약물이 5년 이상의 임상자료를 내놓은 것과는 달리 베시보가 1년 데이터만 확보하고 있어 일동제약이 지속적으로 장기 데이터를 통해 베시보의 효능과 안전성을 입증해야 하는 숙제가 있다는 게 윤 대표의 지적이다.
영업력 경쟁도 만만치 않다. 바라크루드와 비리어드는 각각 녹십자와 유한양행이 영업에 가세한 상태다. 여기에 국내제약사들이 무더기로 바라크루드와 비리어드의 제네릭 시장에 진입했다는 점도 일동제약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소식이다.
지난 2015년 10월 바라크루드의 특허 만료 이후 국내업체 60여곳이 제네릭을 발매하며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동아에스티, 종근당, 대웅제약, 한미약품 등 강력한 영업력을 갖춘 업체들이 대거 바라크루드 시장에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비리어드의 염 변경 약물도 시장 공략을 가속화하고 있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따르면 종근당, 동아에스티, 한미약품, 대웅제약 9곳이 비리어드와 주 성분이 같은 테노피비르 성분 약물을 내놓았고 내달부터는 JW중외제약, 삼일제약 등 7곳이 가세한다.
BMS와 길리어드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국내제약사가 일동제약의 경쟁사라는 얘기가 된다. 종근당(2400원)과 동아에스티(2424원)는 비리어드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제네릭을 내놓았다. 베시보보다 30% 이상 저렴한 수준이어서 베시보가 가격경쟁력을 확보했다고 보기도 어렵다.
기존 약물의 한계를 보완하는 새로운 제품도 등장이 예고됐다. 최근 비리어드의 경우 신독성 문제가 지목되기도 하는데 길리어드가 내달부터 출시하는 새로운 B형간염치료제 ‘베믈리디’가 신독성 문제를 보완해줄 약물로 주목받고 있다.
베믈리디는 비리어드 300mg에 비해 10분의 1 이하의 적은 용량인 25mg만으로 약효성분인 테노포비르를 간세포에 전달하는 작용기전을 가지고 있다. 적은 용량으로 유사한 효능을 낼 수 있어 비리어드의 신독성 부작용 문제도 극복할 것으로 기대를 모은다.
베시보가 L-카르니틴을 추가로 복용해야 한다는 점도 경쟁약물에 대해 복용 편의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다른 B형간염치료제는 모두 하루 한 알만 복용하면 되지만 베시보는 3개를 복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임상시험을 통해 나타난 간 조직학적 개선 효과를 미루어 볼 때 L-카르니틴 성분이 간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면서 “베시보와 동시에 L-카르니틴 2개를 같이 복용하기 때문에 복용 편의성이 크게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B형간염치료제의 처방이 국내제약사들이 취약한 종합병원을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특성도 일동제약 입장에서는 신경을 써야하는 대목이다.
제약분야 빅데이터 분석 전문기업 코아제타에 따르면 지난 2015년 비리어드의 처방 의료기관 중 상급종합병원(41.5%), 종합병원(25.7%), 병원(5.7%) 등에서 병원급 이상 규모 의료기관에서 72.9% 처방됐다. 의원급 의료기관에서는 27.0% 처방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제약사의 대형병원보다는 의원급 의료기관에서 상대적으로 강력한 영업력을 발휘한다. 비리어드의 의원급 처방 비율이 낮다는 것은 전체 시장 규모에 비해 국내업체들이 진출할 수 있는 영역이 크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비리어드의 의원급 처방 비중은 2012년 23.1%, 2013년 24.8%, 2014년 26.1%등으로 매년 30%를 넘지 못했다.
비리어드의 시장 규모가 1500억원 가량에 이르지만 의원급에서는 약 400억원 가량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같은 이유로 국내제약사들이 바라크루드 제네릭 시장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 것으로 분석된다. 유비스트의 원외 처방실적을 보면 바라크루드 제네릭 제품 중 동아에스티의 ‘바라클’과 부광약품의 ‘부광엔테카비르’가 선두권을 형성하고 있는데, 올해 상반기 원외 처방실적은 각각 29억원, 15억원에 그쳤다.
일동제약 관계자는 “큐란, 라비에트 등 소화기약물의 판매로 B형간염치료제가 많이 처방되는 소화기내과에 영업력에 강점을 갖고 있다”면서 “베시보가 외국 제약사의 제품에 뒤지지 않는 치료 효과는 물론, 기존 약제의 부작용을 개선해 안전성까지 확보한 국산 신약이라는 특징을 내세워 마케팅에 나설 계획이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