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의약품 허가·특허연계제도가 본격 시행된지 3년 가량 지났지만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하는 분위기다. 예상치 못한 다양한 변수에 대한 세부 규정에 대해 정부와 제약업계가 엇갈린 시각차를 드러내고 있다. 제약업계의 혼선이 지속되는데다 비용 부담도 가중되고 있어 보건당국의 투명하고 정교한 제도 운영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한미FTA 발효로 도입된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제네릭 허가를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와 연계해서 내주는 제도다.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제네릭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허가·특허 연계 제도의 핵심은 ‘제네릭 판매금지’와 ‘우선판매품목허가’다.
제네릭 판매금지는 특허권자를 보호하기 위해 특허소송 기간 동안 제네릭의 판매를 금지하는 조치다. 식약처는 최초 제네릭 허가신청시 신청사실을 특허권자에게 통보하는데 이 때 특허권자가 제네릭 발매는 ‘특허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특허침해소송을 제기하면 해당 제네릭 판매는 9개월 동안 금지된다.
우선판매품목허가는 특허도전에 성공한 제네릭에 부여하는 혜택이다. 가장 먼저 특허도전에서 승소한 제네릭은 9개월 동안 제네릭의 진입 없이 해당시장에 오리지널 의약품과 1대1로 경쟁하는 혜택을 받는다. 허가·특허 연계제도는 단계적인 도입 절차를 거쳐 2015년 3월15일부터 본격 시행됐다.
2일 서울 종로구 성균관대학교 600주년기념관에서 식품의약품안전처 주최로 열린 ‘의약품 허가·특허연계 정책 포럼’에서는 우선판매품목허가 제도에 대한 제약업계와 전문가들의 제도 개선 요구가 쏟아졌다.
제약사가 제네릭의 우선판매품목허가를 획득하려면 가장 먼저 특허소송을 청구하거나 승소하고, 가장 먼저 허가를 신청해야 하는 두 가지 요건을 충족해야 한다. 허가 신청이 가장 빨랐더라도 특허소송에서 경쟁사보다 늦게 승소하면 독점판매권을 받을 기회는 사라진다.
제약사들이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받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는 과정에서 예상치 많은 수많은 변수가 발생하는데, 식약처가 모호한 잣대를 적용하면서 오히려 혼선을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이홍기 코아제타 대표는 “제도가 시행된 이후 같은 사안이라도 다르게 해석하는 등 예상치 못한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면서 특발성 폐섬유증 치료제 ‘피레스파’의 제네릭 우선판매품목허가 미부여 사례를 제시했다.
당초 영진약품이 피레스파의 특허소송 승소와 최초 허가신청이라는 두 가지 요건을 확보하는데 성공하고 식약처에 우선판매품목허가를 신청했지만 좌절됐다. 영진약품이 허가 신청하기 전에 다른 제약사가 허가 신청했다가 반려받은 사례가 발견되면서 식약처는 영진약품이 최초 허가신청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다고 판단했다.
허가 신청서류가 미비해서 중도에 허가 심사가 이뤄지지 않았는데도 허가 신청을 가장 먼저 시도했다는 이유만으로 ‘최소 허가신청’ 요건을 선점했다는 게 식약처의 시각이었다. 결국 영진약품의 특허도전 노력은 물거품이 됐고 소송 비용과 시간만 날리게 됐다.
이홍기 대표는 “제약사들은 허가 서류 접수 이후 반려되더라도 최초허가신청 요건을 갖출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른다”면서 “세부규정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어서 제약사들은 무조건 소송을 제기하려는 경향이 있다”라고 꼬집었다.
이 대표는 식약처가 허가·특허연계제도와 관련된 정보 공개를 확대, 투명성을 높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예를 들어 같은 성분의 제품에 대해 동일한 시기에 수많은 기업들이 우선판매품목허가를 신청하더라도 일부만 혜택을 받는데,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받지 못한 업체에는 그 이유가 제시되지 않는다. 우선판매품목허가 획득 가능성조차 모르면 경쟁업체를 의식한 '묻지마 소송'을 양산하게 된다.
실제로 지난 2년간 특허소송이 급증했다. 식약처에 따르면 지난 2014년부터 총 2000건 이상의 특허심판이 청구됐다. 특히 허가·특허연계제도가 본격 시행된 2015년에는 무려 1734건의 특허소성이 진행됐다. 이중 3월과 4월에만 무려 1563건의 특허 소송이 집중됐다.(3월 698건, 4월 861건)
다양한 경우의 수에 대한 정확한 기준이 제시되면 제약사들은 사전에 성공 가능성을 파악하고 효율적인 전략을 세울 수 있다.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이 대표는 “정부는 제도를 조금 더 투명하게 운영할 필요가 있다. 법안을 바꾸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에 사례집과 같은 세부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면 특허권자와 특허도전자 모두에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라고 주문했다.
법무법인 율촌의 윤경애 변리사도 피레스파 제네릭의 우선판매품목허가 미부여 사례를 언급하며 제도 개선을 촉구했다.
윤 변리사는 “반려된 최초 허가신청자는 실질적으로는 제네릭 시장에 진입할 수 없는데 약사법상 ‘반려를 받은 허가신청은 최초신청이 아니라고 본다’라는 규정이 없다”면서 “충분한 요건을 갖춘 자에게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부여하는 취지는 좋지만 보완할 부분은 개선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주인 보령제약 변리사도 다양한 변수를 고려한 정교한 규정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주 변리사는 “만약 오리지널 의약품의 재심사 기간 만료 전에 특허가 무효가 확정되는 경우가 발생하면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받을 수 없는 모순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라고 지적했다.
제약사들은 오리지널 의약품의 재심사 기간 만료 전에 허가를 신청할 수 없다. 만약 제네릭 업체의 적극적인 특허 전략으로 재심사 기간이 끝나지 않았는데도 오리지널 의약품의 특허를 무력화할 경우 기존에 등재됐던 특허가 삭제되기 때문에 다른 제약사들도 재심사 기간 만료 이튿날 무더기로 제네릭 허가를 신청할 수 있게 된다.
주 변리사는 “제네릭 허가 신청 전에 특허 무효가 확정되면 열심히 일은 했지만 인센티브가 없다는 문제가 노출된다. 하면서 특허소송에 승소한 기업은 아무런 혜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미리 특허무효를 이끌어 낸 기업에도 우선판매품목허가를 부여하는 방안도 고려돼야 한다”라고 꼬집었다.
이호동 식약처 의약품허가특허관리과장은 “제도 시행 이후 매년 영향평가를 하고 있다. 우선판매품목허가 제도가 도입된지 얼마 안돼 모든 사례를 법에 담을 수 없다. 질의응답집, 해설서 보완 등 우선적으로 할 수 있는 방안은 단기간내 추진하고 추후 조정이 필요한 부분도 전문가 자문과 민간협의체 논의를 거쳐 개선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