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격세지감을 느낍니다. 불과 4~5년만 해도 자금 마련을 위해 각 투자사의 문을 힘겹게 두드리고 또 두드려야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창업 소식을 듣고 회사를 방문하고 싶다고 먼저 연락이 오네요."
최근 시리즈A 투자를 성공적으로 마친 한 신생 바이오기업 대표가 전한 달라진 바이오투자 환경에 대한 이야기다. 연일 새로운 바이오기업의 투자 유치 소식이 들린다. 일부 기업은 투자기업보다 투자유치기업이 우위에 있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다.
국내 많은 신약개발, 체외진단 바이오기업 대표들은 달라진 바이오투자 환경을 체감하고 있었다. 또 일부는 실제 투자 유치를 통해 연구개발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기업간의 협력도 활발히 모색되는 등 바이오산업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오랜만에 찾아온 바이오분야 훈풍이 혁신적인 기술개발로 이어져 국내 바이오생태계를 얼마나 풍성하게 할지 관심이 모아진다.
국내 유일의 바이오산업 전문매체인 바이오스펙테이터는 15일 창간 2주년을 기념해 국내 유망 바이오기업 CEO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국내 바이오산업의 현 시점을 진단하고 제도개선 방향을 모색하는 이번 설문에는 신약개발, 체외진단 분야 비상장(코넥스 1곳 포함) 기업 대표 27명이 참여했다.
◇바이오기업 92.6% "투자환경 개선"..밸류에이션 논란도
이번 조사에서 바이오기업 대표 27명 중 25명(92.6%)이 2년전(2015~2016)과 비교해 '투자유치 환경이 개선됐다'고 응답했다. '과거와 다르지 않다', '더 나빠졌다'는 응답은 각각 1명씩에 불과했다. 지난해 추경을 통한 대규모 벤처펀드 조성과 민간의 바이오투자붐 등으로 인해 형성된 우호적인 투자환경을 체감하고 있었다.
실제 투자 유치로 이어진 곳도 적지 않았다. 바이오기업 16곳(59.3%)은 이미 투자 유치를 마쳤고 11곳(40.7%)은 투자 유치를 진행하거나 계획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투자유치(계획) 규모도 상당했다. '90억원 이상'이라는 기업이 10곳(37%)으로 가장 많았고 '30억~60억 미만'이 9곳(33.3%), '60억~90억 미만'이 5곳(18.5%) 순이었다.
그러나 바이오기업에 대한 우호적인 투자 환경은 기업가치에 대한 고평가 논쟁을 촉발시키고 있다. 투자유치 과정에서 가장 큰 어려움에 대해서 12곳(44.4%)이 '밸류에이션(기업가치)에 대한 의견차'라고 답했다. 투자자의 기술에 대한 이해 부족이 7곳(25.9%)으로 다음이었다.
국내 창투사 관계자는 "바이오기업에 대한 투자에 기존 창투사뿐 아니라 신평사, 투자자문사, 개인까지 뛰어들면서 기업가치가 큰 폭으로 상승하고 있다"면서 "후속 투자 유치 및 상장 전략 까지 고려하면 우려스러운 면이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바이오기업 대표는 "지금까지 퍼스트인클래스 기술을 개발하는데도 (창투사 투자 주도환경에서) 제대로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고 반박했다.
◇바이오기업 인력난 '일부 개선'..오픈이노베이션 인식 '달라졌다'
달라진 것은 투자환경 뿐만이 아니었다. 바이오기업의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가 함께 일할 사람을 찾는 일이다. 특히 국내의 경우 대기업 선호현상이 두드러지면서 바이오기업들은 인력난을 호소해왔다.
이번 설문조사에서 바이오기업 8곳(29.6%)은 2년전에 비해 인력난이 개선됐다고 응답했다. 여전히 다수(15곳, 55.6%)는 '과거와 다르지 않다'고 했지만 '더 나빠졌다'는 응답은 2곳(7.4%)에 그쳤다. 취업준비생들의 바이오기업에 대한 편견과 거부감이 개선됐냐는 질문에는 9곳(33.3%)이 '개선됐다'고 답했다. 기업들에서 가장 부족하거나 구인이 어려운 군에 대한 질문에는 6~10년차(12곳, 44.4%), 3~5년차(10곳, 37%)라고 응답했다.
국내 제약사들과의 바이오기업에 대한 협력에 대한 질문도 던졌다. 최근 일동제약·올릭스, 동국제약·에스바이오메딕스, 이연제약·지앤피바이오사이언스·뉴라클사이언스 등 제약사와 바이오기업간의 공동개발, 전략적 협력도 부쩍 늘고 있다. 이번 설문에 응답한 기업 중 7곳(25.9%)은 이미 협력을 하고 있었고 14곳(51.9%)은 논의 중이라고 답했다. 국내 제약사들이 오픈이노베이션에 대한 인식에 대한 질문에는 17곳(63%)이 '개선됐다'고 했다.
◇기술성평가-신의료기술평가 개선엔 '한 목소리'
국내 신약개발, 체외진단 기업들에 코스닥 상장 제도와 신의료기술 평가는 쉽게 넘기 힘든 장애물이다. 바이오기업 74.1%가 '기술성 평가 등 기술특례 제도의 개선'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기술특례상장의 첫 단계인 기술성 평가의 전문성과 객관성을 담보할 장치 마련을 주문했다. 익명을 요구한 바이오텍 대표는 "해당 기술에 전문성이 없는 기술성 평가 위원, 기관마다 극명하게 갈리는 평가결과 등 현재의 기술성 평가는 기업의 신뢰를 주지 못하며 '복불복'이라는 인식 마저 심고 있다"면서 "대대적인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식품의약품안전처 품목허가에 이어 신의료기술평가까지 거쳐야 국내 시장에 제품을 내놓을 수 있는 이중 규제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았다. 품목허가와 신의료기술을 통합해야 한다는 의견이 8곳(25.9%), 신의료기술 평가 분야 축소 및 절차 간소화가 8곳, 전문성 강화 및 심사시스템 개선이 8곳으로 나타났다. 현행 유지는 한 곳도 없었다.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추진 중인 임상시험 정보 등록 제도에 대해서는 바이오기업 대표 17명(63%)가 필요한 제도라며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현 상황에서 시기상조라는 응답은 4명(14.8%), 불필요한 제도라는 응답은 2명(7.4%)에 그쳤다.
한편 이번 설문조사는 국내 27곳의 유망 신약개발, 체외진단 비상장(코넥스 1곳 포함) 바이오기업 대표들을 대상으로 지난 8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됐다. 큐로셀, 뉴라클사이언스, 인투셀, 파멥신, J2H바이오텍, 뉴클릭스바이오, 엔솔바이오사이언스, 메디사피엔스, 이앤에스헬스케어, 엔젠바이오, 인벤티지랩, 다이노나(코넥스), 단디바이오사이언스, 딥바이오, 레모넥스, 샤인바이오, 압타머사이언스, 에스바이오메딕스, 지놈앤컴퍼니, 지투지바이오, 토모큐브, 엠디뮨, 인핏앤컴퍼니, 유스바이오팜, 엠비디, 앱티스, 옵토레인, 지플러스생명과학(무순) 등이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