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정부의 바이오시밀러(바이오복제약) 약가 인상으로 국내업체보다는 신약을 보유한 다국적제약사들에 더 많은 혜택이 돌아갈 전망이다. 주력 제품의 바이오시밀러 진입에 노출된 로슈는 이번 약가제도 개편으로 연간 80억원 가량의 수혜가 예상된다. 정부의 성급한 바이오업체 육성 정책으로 건강보험 재정 부담만 가중된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7일 바이오시밀러의 약가 가산 제도를 포함한 바이오의약품 약가제도 개선안을 발표하고 오는 10월께 시행한다고 밝혔다.
국내 보건의료에 기여한 바이오시밀러의 약가를 오리지널 약가의 80%까지 부여하는 내용이 개선안의 핵심이다. 기존 70%에서 10%포인트 높아졌다. 이때 오리지널 의약품의 보험약가도 기존 70%에서 80%로 상향 조정된다.
보험상한가가 100원인 바이오의약품의 경우 바이오시밀러는 최대 70원까지 약가를 받을 수 있었는데 앞으로는 80원까지 산정 기준이 올라간다는 의미다. 오리지널 제품 역시 바이오시밀러 발매 이후 가격은 70원에서 80원으로 올라간다. 가격으로 보면 오리지널과 바이오시밀러 모두 종전보다 14% (70원→80원) 인상되는 셈이다.
바이오시밀러의 약가 가산을 적용받으려면 '혁신형 제약기업ㆍ이에 준하는 기업ㆍ국내제약사-외자사간 공동계약을 체결한 기업이 개발한 품목 또는 우리나라가 최초허가국인 품목 또는 국내에서 생산하는 품목'이라는 조건을 체결해야 한다. 혁신형제약기업에 준하는 기업이란 혁신형 제약기업 연구개발(R&D) 투자비율 및 투자액 평균 수준을 말한다. 사실상 바이오시밀러를 개발 중인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LG생명과학 등이 모두 포함된다.
"한국 약가가 낮으면 해외에서 높은 가격을 받는데 걸림돌이 된다"는 바이오업체들의 약가 산정기준 상향 조정 요구를 수용해준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서는 바이오시밀러 약가 인상이 국내 업체에는 실익이 크지 않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바이오시밀러의 약가산정 기준을 올리더라도 국내 업체들이 높은 가격을 받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국내에 발매된 항체 바이오시밀러 ‘램시마’, ‘브렌시스’, ‘렌플렉시스’ 등 3종 모두 오리지널보다 5% 저렴한 약가로 등재됐다. 바이오시밀러를 오리지널과 같은 가격으로 시장에 발매하면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이유에서다.
바이오시밀러를 모두 80% 수준으로 올려도 오리지널 의약품만 80%로 상향될 뿐 바이오시밀러 업체는 그만큼 수혜를 받을 수 없을 것이란 시나리오가 유력하다.
특히 새롭게 시장에 진입하는 바이오시밀러보다 이미 대형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신약 제품 입장에선 이번 개편이 반가울 수 밖에 없다. 로슈의 유방암치료제 '허셉틴'이 대표적인 사례다. 허셉틴은 셀트리온의 바이오시밀러 '허쥬마'의 허가로 약가인하가 예고된 상태다. 셀트리온이 지난 2014년 1월 허쥬마의 허가를 받고도 2년 반 동안 약가등재를 미루면서 허셉틴의 약가인하 시기도 지연되는 상황이다.
만약 약가제도 개편 이전에 허쥬마의 약가가 등재되면 허셉틴의 약가는 30% 내려가는데, 개편안이 적용된 이후 허쥬마 약가가 등재되면 허셉틴의 약가 인하율은 20%로 축소된다. 허셉틴의 지난해 처방실적은 830억원이다. 10월 이후 허쥬마의 약가가 등재되면 허셉틴의 약가는 30%가 아닌 20% 인하되면서 매년 83억원의 손실을 피할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셀트리온 측은 “현재 진행 중인 허쥬마의 추가 임상이 완료되면 전 세계 시장에 동시에 진입할 계획이다”고 설명했다.
바이오시밀러를 개발한 다국적제약사도 이번 제도 개편의 수혜자다. 다국적제약사 일라이릴리는 지난해 11월 인슐린 제품 '베이사글라'를 허가받았는데, 이 제품은 사노피아벤티스 '란투스'의 바이오시밀러다. 릴리가 10월 이후 베이사글라의 약가를 등재하면 란투스의 80% 가격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이때 란투스의 약가도 70%가 아닌 80%로 인하된다. 란투스의 지난해 처방실적 497억원을 감안하면 사노피는 이번 약가개편으로 연간 50억원의 수혜를 기대할 수 있다. 바이오시밀러 약가 산정기준 상향 조정에 따른 혜택을 다국적제약사들이 나눠갖는 모양새다.
복지부 관계자는 "바이오시밀러 약가 인상으로 제약기업들의 바이오시밀러 개발이 빨라지면 신약 가격도 빨리 인하돼 환자들이 저렴하게 약물을 투여받는 시기가 앞당겨진다"면서 "변수가 많아 제도 개편에 따른 재정 절감 효과는 추정하지 않았지만 제약사들의 바이오시밀러 등재 시기를 앞당기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특정 업체 밀어주기' 의도를 갖고 제도 개편을 성급하게 추진하면서 결과적으로 국내업체는 실익이 적고 건강보험 재정 부담만 가중되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된다.
복지부는 올해 초 약가제도 개선을 논의하기 위해 바이오의약품 약가개선 협의체를 구성하면서 전문가 대표로 삼성바이오에피스 임원을 위촉했다. 통상 전문가 대표는 교수, 변호사 등을 배치한다.
협의체에는 한국제약협회, 한국바이오의약품협회 등 제약 대표가 별도로 구성됐는데도 이해 당사자인 삼성바이오에피스 실무진을 전문가 대표에 포함시키며 '노골적인 삼성 밀어주기 의도'라는 의혹을 받았다. 이에 반해 합성의약품의 약가제도를 논의한 의약품협의체는 전문가 대표에 교수 3명과 변호사 1명만 포진했다.
협의체의 약가제도 개선 논의 과정에서 바이오시밀러의 약가인상은 가장 먼저 결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2006년 정부가 약품비를 줄이기 위해 '약제비 적정화 방안'을 시행한 이후 기존에 운영 중이던 약가 산정기준을 상향 조정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은경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회정책팀장은 "정부가 건보재정 절감을 목표로 지속적으로 약품비를 줄여오다 재정부담에 대한 고려 없이 산업 육성이라는 명목으로 가격을 올리는 엇박자 정책을 펼치고 있다"면서 "한번 약가를 인상하기 시작하면 다른 분야에서도 인상 움직임이 많아질 수 있으며 국민들이 낸 건보료를 제약기업 지원에 활용하는 것도 불합리하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