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김성민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 CEO 73명이 ‘현재 바이오기업의 밸류(value)가 적절한가’라는 질문에 70%가 ‘적절하지 않다’고 답했다. 상장사와 비상장사 모두에 대해 비슷한 의견이었는데, 상장사 바이오기업 밸류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은 ‘71.2%(52표)’, 비상장사 밸류가 적절하지 않다는 의견은 ‘75.3%(55표)’로 비상장사쪽이 더 높았다.
상장 바이오기업의 경우 저평가돼 있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밸류가 적절하지 않다면 ‘어느 정도로 고/저평가돼 있는지’를 '매우 고평가, 고평가, 저평가, 매우 저평가'로 묻는 질문에 저평가가 64.7%(33표)로 고평가라고 답한 27.5%(14표)보다 우세했다. 여기에 '매우 저평가'라는 의견도 5.9%(3표), '매우 고평가' 의견은 2%(1표)로 도출됐다. 종합하면 CEO의 70.6%가 상장기업의 밸류가 저평가돼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반면 비상장사에 대한 의견은 반반으로 갈렸다. 비상장사 바이오기업이 저평가돼 있다는 답변은 49.1%(27표), 고평가는 40%(22표)라는 의견이었다. 매우 저평가 또는 매우 고평가 시각도 각각 5.5%(3표)로 팽팽했다.
지난 15일 창간 8주년을 맞아 바이오스펙테이터(BioSpectator)는 바이오기업 CEO 73명을 대상으로 바이오 기업의 ‘밸류에이션(valuation)’에 대한 의견을 물었으나 그 답변들은 오히려 혼란스러웠다. 밸류에이션이 적절하지 않다는 응답 속에는 고평가, 저평가가 혼재했으며, 상장 여부에 따라 평가의 잣대가 달랐다. 국내 바이오업계에 대한 밸류에이션의 실마리를 찾아보려는 시도가 오히려 '이런 질문을 왜 했느냐'는 반문에 직면한 듯 답답해지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더 파고들어가 보기로 했다. 이번 설문 결과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상장사 또는 비상장사로 나눠 분석해본 결과, 각 회사가 속한 위치에 따라 밸류에이션을 보는 시각이 달랐다. 자칫 밸류에이션에 대한 객관적인 판단이 흐려질 수 있는 부분이다. 같은 상장사나 비상장사 카테고리 안에서도 밸류에이션 평가에 대한 온도차가 있었으며,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받고 있거나 글로벌 파트너십을 통해 글로벌 제약·바이오 환경에 노출돼 있는 바이오텍의 경우 상황을 더 냉정하게 직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그럼에도 공통적인 의견도 찾을 수 있었는데, 결국은 ‘국내 바이오기업의 밸류에이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편으로 혼재된 답이 어느정도 공감되는 대목도 있었다. 우리 바이오산업은 아직 밸류에이션에 대한 물음에 답을 찾지못하고 있으며, 그 단계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게 아니냐는 의문이었다. 버블과 침체의 연속이었을 뿐, 그 안에서 어떤 개념이 정립되거나 기준을 세우지 못한데서 문제가 비롯되고 있는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현재 국내 바이오 산업이 부딪히고 있는 가장 큰 문제는, 밸류에이션의 괴리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미국 바이오 산업은 올해 상반기로 접어들면서 다시 비상장 바이오텍에 투자가 활기를 띄는 분위기인데, 국내는 잠깐 투자심리가 풀리는듯 싶더니 여전히 ‘제로(0) 투자’ 상태가 이어지면서 마음이 답답하던 차였다. 그래서 이전까지는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던 막연한(?) 단어. 밸류에이션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다가가보기로 했다.
보이지 않는 캄캄한 곳에서 답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먼저 ‘도대체 바이오산업에서 밸류에이션이란 무엇인가’부터 정리해보기로 했다. 더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바이오텍 밸류에이션(biotech valuation)’이라는 단어로 접근했다.
바이오텍 밸류에이션은 일단 ‘다른 산업과는 다르다’고 인정하고 들어가는 것이 시작점으로 보인다. 기본적인 특성은 하나의 신약이 시판될 때까지 20여년의 오랜 시간이 걸리며, 하나의 약이 탄생하기까지 응당 수십억 달러가 투자돼야하는 많은 돈이 드는 산업이며, 거의 대부분의 약이 실패한다는 것이다. 거꾸로 말하면 아주 소수의 약만 성공한다. 미국 식품의약국(FDA)을 기준으로 한해 시판허가되는 신약의 평균 개수는 31.5개(1980~2022)이다. 일단 시판이라는 결승선을 어렵게 통과했다고 하더라도, 한해 동안 시판된 약 가운데 통상 10억달러 이상 매출을 내는 제품은 손에 꼽는다.
그러나 일단 성공하면, 큰 보상이 기다린다. 역사상 가장 많이 팔린 의약품 중 하나로 알려진 애브비의 ‘휴미라’는 2002년 시판된 이후 특허가 만료되기까지 20여년 동안 2000억달러 어치가 팔렸다. 연 최대 매출액은 200억달러를 넘었다. 휴미라 자리를 이어받은 미국 머크(MSD)의 ‘키트루다’는 2014년 첫 시판된지 10년만에 매출액 200억달러를 올리는 약이 됐다. 물론 휴미라와 키트루다는 적응증을 성공적으로 넓혀간 예시이기도 하지만, 일단 글로벌 탑10 의약품에 이름을 올리게 되면 적어도 한해 100억달러 어치가 팔리는 약물이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의약품이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근본적인 이유는 일단 글로벌 시장 전체를 하나의 시장으로 하며, 한 영역에서 1~2위 회사가 대부분의 수익을 가져가고, 특허를 통해 오랜 기간 독점권을 보호받기 때문이다. 미국 특허보호 기간은 20년이며, 개발 과정에서 각 회사의 특허 전략에 따라 시판후 대개 10여년의 독점권을 보장받는다. 즉 제약·바이오는 고부가가치 산업이며, 기술 선점을 위해 매년 수백억달러의 M&A가 성사되는 시장이다. 가장 성숙한 미국 시장만 보더라도, 매출이 전혀 없는 바이오텍이 몇십억달러의 밸류를 인정받으며, 실질적인 매출이 일어나는 제약사보다 바이오텍의 밸류가 더 높은 것이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산업이다.
2010년대 후반 기준 시가총액이 2억5000만달러 이상 회사 150여개가 포함돼 있는 나스닥 바이오텍 인덱스(nasdaq biotech index, NBI) 기준 80%의 회사는 매출이 없었다. 즉 바이오텍 만큼은 매출과 밸류가 사실상 무관하다고 봐도 무방하다. 이 부분이 다른 산업의 밸류에이션과 바이오텍 밸류에이션을 구분되는 가장 큰 지점이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시작점이기도 하다.
소위 빅딜을 보면 2017년 길리어드사이언스(Gilead Sciences)는 바로 직전까지 매출없이 6억달러에 가까운 손실을 내고 있는 카이트파마(Kite Pharma)를 119억달러에 인수했으며, 당시 각광받던 CAR-T 기술을 사들이기 위한 비용이었다. 이러한 일은 계속해서 일어나고 있으며, 각 시기 기술의 트렌드에 따라 무엇을 사느냐가 다를 뿐이다. 2023년 가장 큰 규모의 딜은 화이자가 항체-약물접합체(ADC) 바이오텍 씨젠(Seagen)을 430억달러에 인수한 건이었다. 화이자에 인수되기 이전 해(2022년) 씨젠의 한해 매출액은 19억6000만달러를 기록했다.
국내에서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20일 기준 알테오젠(Alteogen)의 시가총액은 14조9000억원에 가까우며, 이는 국내 대표 R&D 제약사인 유한양행의 시가총액 6조2000억원과 한미약품 3조5000억원보다 훨씬 높은 수준이다. 작년 기준으로 두 회사는 각각 2조원과 1조5000억원의 매출을 냈다.
그러면 중요한 것은 적절한 가격을 매기는 것이다. 성숙한 시장에서 바이오텍의 밸류에이션은 기술, 파이프라인, 개발단계가 근간이 된다. 어떤 시점에서의 과학(science)의 가치를 판단하는 일이며, 궁극적으로는 환자에게 처방될 수 있는(필요한) 약이 어느 지점을 통과하고 있느냐를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드러나지 않는 긴 여정을 이끌어가는 R&D 리더십과 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에도 큰 가치가 부여된다.
당장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업의 가치를 매겨야하기 때문에, 바이오텍 밸류에이션에는 피어그룹(peer group) 비교가 가장 일반적이고 다양하게 쓰인다. 글로벌이 하나의 시장이기 때문에 비슷한 기술이나 에셋을 가진 글로벌 피어그룹 또는 최근에 일어난 M&A 라이선스 딜 등을 참고해 이를 기준으로 가치를 산정하고 있다.
이때 바이오텍에 밸류가 부여되는 마일스톤은 크게 4가지로 정리된다. △좋은 사이언스(플랫폼)와 인력을 갖췄을 때 △개발 단계에서 긍정적인 임상결과가 도출됐을 때 △제품으로 시판허가를 받았을 때 △환자에게 실제 처방돼 의미있는 매출이 났을 때이다. 물론 전임상 데이터를 근거로 딜이 이루어지는 경우도 있기는 하지만, 나스닥 바이오텍의 경우 전임상 에셋의 가치를 사실상 ‘0’에 가깝다고 치부하며, 전임상 데이터는 혁신성이나 차별화 포인트를 부각시켜 향후 임상개발 에셋으로 개발해나기 위한 자금유인 통로로 이용된다. 그렇다보니 3대 암학회(AACR, ASCO, ESMO)와 같은 신약 후보물질의 임상 데이터가 발표되는 학회 시즌에 초록이 공개되면 다들 기다렸다는 듯이 데이터를 이슈화하고, 곧바로 주가가 움직인다.
그러면 좀더 무거운 주제로 옮겨와 보자. 국내 바이오기업 CEO의 70%가 밸류에이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보는 이유가 있지 않을까? 이제 국내 바이오산업의 특수성을 들여다 봐야할 차례가 됐다.
기본적으로 국내는 아직 성숙되지 않은 시장이다. 바이오시밀러를 제외하고는 아직까지 글로벌에서 블록버스터 제품을 시판한 경험이 없으며, SK바이오팜의 뇌전증 신약을 제외하면 자체적으로 글로벌 임상3상 개발을 끌고가 성공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 거의 매일 글로벌 빅파마의 임상3상 실패 소식이 들려오는 산업에서, 국내 기업은 임상3상의 의미와 실패 경험조차도 부족한 실정이다. 국내 산업은 앞서 제시한 바이오텍의 4가지 마일스톤에서 이제 막 첫 단계인 ‘좋은 사이언스’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으며, 소수의 기업이 임상 데이터를 발표하고 그 의미를 들여다보는 단계에 왔을 뿐이다.
그러나 진전은,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에서 시작된다. 미국 제약·바이오 산업은 30~40년 동안 쌓여온 성공과 실패경험이 기반이 돼 지금의 성숙한 시장이 됐다. 국내 바이오텍의 비즈니스 모델도 변화하고 있다. 여전히 대부분 전임상 단계 에셋이나 플랫폼 기술을 라이선스아웃(L/O)하는 데 대부분 의존하고 있는 반면, 최근 1~2년내 들어서 국내에서도 초기 임상개발 단계에서 계약금 1억달러 이상에 라이선스아웃하는 사례가 나오고 있다. 이전에는 없었던 일이고, 긍정적인 변화이다.
이러한 변화의 시기일수록 정확한 진단이 필요하다. 바이오스펙테이터는 이번 설문에서 CEO들에게 ‘시장에서 적절한 밸류에이션이 이뤄지지 않는 주요 원인’에 대해 물었고, 여러 측면에서 복합적인 문제를 겪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답변이 도출됐다. 밸류에이션의 어려움을 토로하듯 전체 질문 가운데 주관식 답변이 가장 많이 제출된 질문 항목이었다. 그만큼 CEO들도 답답하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답변을 살펴보면 ‘전문적인 평가기관의 부재’가 28.8%(21표)로 가장 많았고, ‘미검증된 정보 홍수’ 19.2%(14표), ‘에널리스트(VC/심사역) 역량 부족’ 17.8%(13표), ‘투자자들의 지식 부족’ 13.5%(10표), 남은 선택 옵션인 ‘회사측의 과도한 홍보’ 6.8%(5표) 등으로 나왔다.
‘그외 항목’으로 제출된 서술형 답변 가운데, 마음이 쓰라린 지적으로 ‘정부 주도의 상장제도와 최대주주 지분율 희석 방지를 위한 고밸류 관행’이 있었다. 당장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는, 우리 산업을 큰 무게로 짓누르고 있는 주제이다. 이밖에도 ‘코스닥 상장사 투자자 대부분이 개인 투자자’, ‘각 분야의 키 오피니언 리더(KOL)와 객관적 목소리의 부재’, ‘거래소의 상장 허들이 밸류에 반영’ 등이 있었고, ‘제시된 모든 항목이 원인’이라는 답변도 2개나 나왔다.
그럼에도 국내 바이오산업이 문제라는, 넋두리에 그치는 희망없는 얘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다. 바이오스펙테이터가 2019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창간기념 설문에서, 올해에는 가장 영향력 있는 기업을 묻는 질문에 기술 위주의 알테오젠, 리가켐바이오사이언스, 에이비엘바이오 등 3개 바이오텍에 대한 표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아졌으며(韓바이오, 올해의 기업·인물 ‘삼바·서정진’ “4년째..”), 영향력 있는 기업을 선정하는 시각도 '기술과 파이프라인'으로 바뀌는 긍정적인 변화의 모습을 보여줬다. 리가켐바이오가 기업과 인물 영역에서 모두 2위로 치고 올라왔으며, 3개 바이오텍이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이러한 추세는 ‘옥석 가리기가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가’라는 물음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답변은 ‘매우 그렇다, 그렇다, 보통이다, 그렇지 않다, 전혀 그렇지 않다’로 제시했다. 그 결과 ‘그렇다’라는 의견이 54.3%(39표)로 우세했으며, ‘보통이다’가 21.9%(16표), ‘그렇지 않다’가 17.8%(13표), ‘전혀 그렇지 않다’가 4.1%(3표), ‘매우 그렇다’가 2.7%(2표) 순으로 도출됐다. 즉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가 과반수 이상을 차지하면서, 긍정적인 기조를 보여줬다.
시장에서 밸류에이션에 대한 합의가 일어나지 않는 가운데서도, 옥석 가리기가 일어나고 있다는 점은 2가지 측면으로 나눠서 볼 수 있을 것 같다. 좋은 기업이 좋다고 평가받는 것과, 업(業)에 충실하지 않은 기업이 좋지 않은 기업으로 걸러지는 것이다. 그동안은 좋지 않은 기업이 걸러지는 경험을 통해 바이오산업을 배워가면서, 시장이 작동하는 형태에 가까웠다. 그간 허울만 있는 바이오텍이 온갖 과장된 뉴스로 몸값을 올렸다가 결국 2~3년내 상장이 폐지되고, 업종을 변경하고, 헐값에 인수되는 일이 연거푸 발생해왔다.
한 시점만 놓고 잘라서 본다면 아직 성숙되지 않은 시장의 행태가 답답할 수 있으나, 긴 타임 프레임 안에서 보면 국내 바이오산업은 분명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다. 2010년대 중후반만 하더라도 JPM 헬스케어컨퍼런스나 바이오USA, 학회에 참석한다는 소식만으로 주가가 크게 움직였지만, 이제는 국내에서도 임상 결과에 반응하기 시작하는 단계로 들어섰다.
아쉬운 것은 ‘좋은 바이오텍’이 좋다고 평가받는 부분이며, 아직은 부족하고 부재(不在)하는 영역이다. 바이오 CEO가 밸류에이션의 가장 큰 문제로 꼽은 전문적인 평가기관이 부재하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현재 국내에서 바이오텍 밸류에이션 기관은 사실상 증권사 애널리스트와 VC 심사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전문성을 크게 요구받지 않는 구조이며, 전문성을 키우지 못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애널리스트의 경우 국내 산업에서 바이오섹터가 차지하는 비중은 작고, 아직 미성숙한 산업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성공 경험이 없다보니 시장의 요구에 밀릴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그렇다보니 애널리스트의 수도 작고, 소수의 인원이 전체 업종을 커버하니 전문성 축적도 어렵고, 몇년 경험을 쌓고 업계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이 발생한다. 애널리스트들의 전문성이 없다고 질책하는 것은, 동시에 우리 산업에 대한 질책이기도 하다.
그동안 비상장사를 투자하는 국내 VC는 엑싯(exit) 경로가 거의 상장이 유일하기에 심사역의 관심사는 상장요건에 맞는지 여부였으며, 바이오텍 투자 리스크를 낮추기 위해 주로 클럽딜(club deal) 형태로 투자를 해왔다. 또 특정시기에 붐이 불면 학력이나 자격증 소지자 위주로 대거 심사역을 뽑았다가 침체기에는 아예 투자검토조차 하지 않는 행태가 이어지면서 전문성을 갖춘 심사역을 키워내지 못하는 구조로 점철돼왔다. 미국에서 제약산업과 바이오텍에서 수십년간 풍부한 성공 경험을 쌓은 인력이 VC로 유입돼, 바이오텍 창업에 활기를 불어넣는 모습과는 대비된다.
미국에서 코로나 팬데믹 버블이 꺼지던 2022년 하반기, 유명 벤처캐피탈 아치(ARCH)는 "시장과 상관없이 사이언스는 진전해야된다"며 초기 바이오텍 딜을 위해 30억달러 규모의 사상최대 펀드를 결성하는 모습은 부러울 따름이었다. 올해에도 골드만삭스와 JP모건 등 대형 투자기관들이 잇따라 사상 첫 생명과학 전문펀드를 마감했다. 이같은 용기있는(?) 결단은 바이오산업에 대한 깊은 이해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
바이오스펙테이터가 ‘기업 분석 및 평가기관 등 역량/수준에 만족하십니까’라는 질문에 CEO들의 절반(50.7%, 37표)이 ‘보통이다’라고 답했으며, 이어 ‘불만족스럽다’가 21.9%(16표), ‘만족한다’가 19.2%(14표), ‘매우 불만족스럽다’가 8.2%(6표)로 도출됐다. ‘매우 만족스럽다’에 대한 응답은 한표도 없었다. 그럼에도 이전보다 역량이 강화됐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이전보다 투자기관의 전문성이 강화됐는가?’라는 물음에 58.9%(43표)가 ‘강화됐다’고 답했다. 반면 ‘별반 다르지 않다’도 38.4%(28표)로 높은 비중을 차지했으며, ‘매우 부족하다’와 ‘매우 강화됐다’는 의견도 각각 1표씩 도출됐다.
마지막으로 정부의 역할에 대한 물음에 CEO들은 재정적인 지원과 제도 완화에 대한 요구가 높았다. 구체적인 답변으로 ‘신약개발 R&D 투자 확대’가 41.1%(30표)로 가장 많았으며, 이어 ‘기술특례 등 코스닥 상장 및 상장유지 제도 개선’이 37%(27표), ‘식약처 및 정부의 규제 완화’가 16.4%(12표), ‘제약바이오 전문인력 양성’이 4.1%(3표), ‘국가과제 평가위원의 전문성 확보’도 1표가 나왔다.
다시 정리해보면, 국내 산업에서 진정한 옥석 가리기를 위해서는 밸류에이션이 필요하고, 가장 시급한 영역은 장기적 관점에서 전문성을 가진 평가기관의 부재이다. 이번 설문에서는 ‘바이오 생태계 옥석 가리기를 위해 장기적인 시각에서 글로벌 관점의 한국 바이오텍/기술에 대한 밸류에이션 분석 보고서가 나와야 하며, 그런 평가기관이 나와야 한다’는 구체적인 의견을 담은 서술형 답변도 나왔다.
결국 국내 바이오텍 밸류에이션을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하다고 보여진다. 첫째, 글로벌에서 나오는 흐름을 팔로업하고, 어떤 이벤트나 사건이 발생했을 때 그 의미를 해석해낼 수 있어야 한다. 둘째, 제약이라는 거대한 한 시장 안에서 글로벌 회사와 국내 회사를 비교해서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하며, 이를 위해서는 사이언스(기술/데이터)에 대한 이해와 지속적인 리서치가 필수적이다. 셋째, 사이언스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국내 바이오텍의 차별성을 볼 수 있는 과학적이고도 장기적인 안목이 필요하며, 이에 대한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툴도 수반돼야 한다. 어쩌면 우리 산업에서 가장 부재한 영역이며, 정당한 밸류에이션이 이뤄지게 할 열쇠일지도 모르겠다.
<바이오스펙테이터 창간 8주년 설문 참여 기업들>
GC녹십자, JW중외제약, 나손사이언스, 네오이뮨텍, 넥셀, 넥스트젠 바이오사이언스, 뉴라메디, 뉴클릭스바이오, 대웅제약, 듀셀바이오테라퓨틱스, 루닛, 리가켐바이오, 머스트바이오, 메디치바이오, 메디픽, 바오밥에이바이오, 부스트이뮨, 브렉소젠, 사이러스 테라퓨틱스, 삼성바이오에피스, 상트네어 바이오사이언스, 셀트리온, 씨어스테크놀로지, 아름테라퓨틱스, 아밀로이드솔루션, 아벨로스 테라퓨틱스, 아이엠바이오로직스, 아이진, 아피셀테라퓨틱스, 알지노믹스, 알테오젠, 앱클론, 앱티스, 업테라, 에스티팜, 에이비엘바이오, 에임드바이오, 엘마이토 테라퓨틱스, 오름 테라퓨틱, 와이바이오로직스, 유바이오로직스, 유빅스테라퓨틱스, 유한양행, 이뮨앱스, 이피디바이오테라퓨틱스, 인세리브로, 인투셀, 일리미스테라퓨틱스, 일리아스바이오로직스, 입셀, 제노스코, 지노믹트리, 지놈앤컴퍼니, 지아이이노베이션, 지투지바이오, 진코어, 카나프 테라퓨틱스, 큐로셀, 큐롬바이오사이언스, 큐리언트, 테라베스트, 테라펙스, 토모큐브, 티씨노바이오사이언스, 티움바이오, 티카로스, 퍼스트바이오테라퓨틱스, 페프로민바이오, 펠레메드, 프로젠, 피노바이오, 한미약품, 한올바이오파마 등 73개 기업(가나다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