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천승현 기자
한미약품이 기술 수출한 신약 제품들이 순차적으로 상업화를 위한 행보에 나선다. 지난해 임상시험 중단과 지연을 초래한 랩스커버리 약물의 생산 지연 문제가 해결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권리가 반환된 ‘올무티닙’을 제외한 다른 기술수출 약물들도 단계적으로 후속 개발 단계에 진입하며 점차적으로 불확실성을 제거하는 분위기다.
12일 한미약품에 따르면 얀센은 당뇨비만약 ‘JNJ-64565111’(한미 과제명 HM12525A)의 새로운 임상1상시험을 시작하기 위해 미국 식품의약품국(FDA)에 임상 허가를 신청했다. 제2형 당뇨병 환자에서 JNJ-64565111의 안전성, 내약성, 약물 동력학 및 약력학 평가를 위한 임상 1상시험이다.
JNJ-64565111은 지난 2015년 12월 한미약품이 얀센에 임상1상시험을 완료하고 기술수출한 약물이다. 한미약품이 보유한 약효지속 기반기술 랩스커버리(LAPSCOVERY)를 적용한 바이오신약이다.
얀센은 지난해 JNJ-64565111의 추가 임상1상시험을 진행하다 임상시험용 의약품 공급이 차질이 생기자 임상시험을 중단했다. 최근 한미약품으로부터 임상용 의약품 공급을 확인하고 새로운 임상1상을 다시 진행키로 했다. 기존에 진행 중이던 임상시험은 조기 종료(Terminated)했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임상약의 ‘생산 관련 지연’(manufacturing-related delay) 이슈가 해소됐고, 기존 임상을 통해 안전성이 확인됐기 때문에 새 임상을 시작하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아직 본격적인 임상시험에 진입하지 않아 생산 지연 이슈가 완벽하게 해결됐다고 단정짓기는 힘들지만 이 문제가 불거졌던 지난해 말과 비교하면 긍정적인 신호로 읽힌다.
사실 한미약품은 지난해 베링거인겔하임으로부터 권리가 반환된 ‘올무티닙’ 이외에도 랩스커버리 적용 약물의 생산이 차질을 빚으면서 불안감이 증폭됐다. 랩스커버리는 바이오의약품의 짧은 반감기를 늘려주는 플랫폼 기술로 투여 횟수 및 투여량을 감소시켜 부작용은 줄이고 효능은 개선하는 기술이다.
한미약품은 랩스커버리 적용 약물 4개를 기술수출했다. 임상시험 재개가 예고된 JNJ-64565111 이외에 사노피와 총 39억 유로(약 4조9000억원)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맺은 퀀텀프로젝트(에페글레나타이드, 지속형인슐린, 지속형인슐린콤보)도 랩스커버리 기술이 적용됐다.
공교롭게도 랩스커버리 적용 약물이 기술수출 이후에 불안한 행보를 보였다. 사노피는 지난해 말 지속형인슐린의 권리를 반환했고 에페글레나타이드는 지난해 하반기 임상3상시험 착수 예정이었지만 생산 지연으로 임상 일정이 미뤄졌다. 지속형인슐린콤보는 일정기간 한미약품의 책임으로 개발한 이후 사노피가 이를 인수하는 ‘조건부 기술이전’으로 계약 내용이 변경됐다.
업계에서 “랩스커버리 적용 약물의 생산 능력이 안정적인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지속적으로 제기된 이유다.
한미약품 측은 랩스커버리 약물의 안전성과 유효성에 문제가 발생한 것이 아닌 만큼 생산 문제만 해결되면 후속 개발 일정에도 큰 차질은 없을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사노피도 지난 4월 R&D 파이프라인 업데이트를 통해 에페글레나타이드의 임상3상시험을 올해 4분기에 시작한다고 밝힌 바 있다.
랩스커버리 약물 생산을 위한 바이오의약품 공장도 준공을 앞두고 있다. 한미약품은 지난해 4월부터 총 2573억원을 투자, 평택공단에 바이오플랜트 제2공장을 건설 중이다. 랩스커버리 적용 약물의 임상시험과 허가용 제품 생산을 위한 제조시설이다. 한미약품은 이달 중 공장 건설이 마무리될 것으로 예상한다.
한미약품 관계자는 “바이오플랜트 제2공장 건설이 마무리되면 임상시험용 의약품을 생산하게 된다. 랩스커버리 약물의 생산 지연 이슈는 모두 해소됐다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한미약품이 기술수출한 다른 약물들도 점차적으로 상업화를 위한 행보를 본격화한 상태다.
2015년 9월 일라이릴리에 기술 수출된 자가면역질환 치료제 ‘HM71224'(릴리 과제명 LY3337641)는 지난해 9월 글로벌 임상2상시험 단계에 진입했다. 한미약품이 2015년 3월 미국 제약사 스펙트럼에 기술수출한 항암신약 ‘포지오티닙’은 지난 3월 미국 임상2상시험을 시작했다. 스펙트럼은 지난 4월 포지오티닙의 적응증을 기존 유방암에서 비소세포폐암으로 확대하는 임상시험에 착수했다.
국내에서는 판권을 보유한 한미약품 주도로 후속 임상시험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한미약품이 지난해 9월 제넨텍에 기술수출한 RAF 표적항암제 ‘HM95573'의 경우 올해 들어 2건의 새로운 임상시험에 돌입했다. 한미약품은 지난 2월 BRAF, KRAS 또는 NRAS 유전자 변이 고형암 환자에서 HM95573 단독치료의 유효성 탐색 및 안전성 평가를 위한 임상1상시험을 시작했다. 지난달에는 국소 진행성 또는 전이성 고형암 환자를 대상으로 ’코비메티닙‘과 HM95573의 안전성, 내약성, 약동학을 평가하는 임상1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았다.
지난해 5월 임상2상시험을 마치고 식약처로부터 조건부승인을 받은 ‘올리타’는 지난 4월 임상3상시험 계획을 승인받았다.
한미약품이 기술수출한 신약이 글로벌 무대에서 다음 개발 단계에 진입하는 것은 한미약품의 기술수출 수익의 증가를 의미한다. 한미약품은 기술수출 신약이 상업화 단계에 도달하지 않더라도 파트너사들이 후속 임상시험에 진입하거나 개발 중간 단계에서 일정 목표를 달성하면 단계별 기술수출료(마일스톤)를 지급받는다.
실제로 한미약품의 대형 기술수출 계약이 본격화한 지난 2016년부터 한미약품의 매출은 기술수출 수익 규모에 따라 변동 폭이 컸다.
한미약품은 2015년 4분기 역대 최대 규모인 5434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는데, 이때 사노피로부터 대규모 계약금이 유입됐다. 2015년 한 해 동안 한미약품은 5125억원의 기술수출 수익을 올리며 매출도 1조원을 돌파했다.
지난해 4분기에는 사노피와의 계약 수정으로 계약금 일부를 반환하면서 기술수출은 515억원의 적자를 기록했고 그 여파로 매출액은 전년동기대비 77.2% 쪼그라들었다. 올해 1분기에는 새로운 기술수출 계약은 없었지만 제넨텍으로부터 계약금 분할 인식 등으로 173억원의 기술수출 수익이 발생했다. 한미약품이 2015년부터 거둔 기술수출 수익은 5575억원에 이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