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KISTEP 실장
바이오 분야를 우리나라의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고자 했던 그간의 노력이 속속 성과로 나타나고 있다. 바이오 분야에 대한 정부의 관심과 육성·지원 방안은 R&D 투자로 이어졌고 어느덧 정부R&D 투자에서 바이오는 ICT 분야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최상위수준에 올라왔다.
ICT와 비교되다 보니 투자 대비 성과에 대한 무수한 비판도 있었다. 바이오의 특성상 연구개발이 최종제품이나 서비스로 시장에 출시되는데 막대한 시간, 비용이 소요되는 것에 대해 이해를 구해왔지만, 점점 더 인내력의 한계에 이르고 있다는 점을 부정할 수는 없었다. 특히 논문/특허 등 우수한 과학기술적 성과가 경제·산업적 성과로 이어지지 못하는 고질적인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KISTEP에서 매년 조사·발표하는 정부연구개발사업 성과분석보고서에 따르면 바이오 분야의 논문성과가 전체의 38%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ICT 분야는 15% 내외), 특허(등록)성과에 있어서도 ICT 분야와 대등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것에 반해 경제·산업적 파급효과는 미미하다고 평가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하는 방안들을 수립하고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앞으로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여러 원인들 중 하나로 기초, 원천연구의 성과를 개발하여 산업화까지 연계할 수 있는 민간 역량의 부족을 꼽을 수 있다. 연구개발 활동조사보고서(KISTEP)에 따르면 ICT 분야의 R&D 투자가 정부, 민간 비중이 1:8 인데 비해 바이오 분야는 1:1 수준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 바이오산업생태계의 가장 큰 단절 부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해서만큼은 길고 긴 어둠의 터널에서 벗어나고 있는 시그널들이 나타나고 있다. 시작은 2015년 한미약품에서 보여준 대규모의 글로벌 기술이전계약이었고, 이후 대기업의 바이오 투자성시, 국내 제약사·바이오벤처 등의 제품, 기술들의 글로벌 진출 성과들이 줄을 잇고 있다.
특히 2016년 바이오의료 분야에 대한 사상 최대, 최고였던 벤처캐피털 투자는 산업으로서의 바이오의 가능성을 보여준 큰 성과가 아닐 수 없다. 2017년 상반기를 정리하면서 바이오의료 분야에 고조되었던 벤처캐피털의 관심이 다소 누그러지는 현상이 있기는 하나, 여전히 바이오에 대한 기대감만큼은 식지 않고 있다. 또 하나 고무적인 것은 작년 한해 새로 창업한 바이오 중소·벤처기업 수가 전년대비 100% 증가하면서 440여개가 넘어섰다는 생명공학정책연구센터의 조사발표(’17. 6)이다. 대학, 정부(출연)연구소의 기초·원천연구 성과가 개발되어 산업화로 이어지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요소가 벤처캐피털과 이를 통해 생겨나는 무수한 벤처들이라고 한다면 이제 우리나라의 바이오산업생태계도 작동할 채비를 갖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산업화 성공을 통해 축적된 자본이 다시 기초원천 연구개발로 유입되어 창업이 더욱 활성화되고 더 많은 벤처가 생겨나는 선순환 구조로 작동하기까지 여전히 숙제가 산재해 있다.
바이오 분야에 대한 벤처캐피털의 기대와 관심에도 실제 투자는 IPO가 임박한 후기 창업기업에 주로 되고 있어 초기 창업기업은 여전히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점, 우리나라의 경우 투자회수 기회가 주로 IPO로 한정되어있음에도 기술특례상장 제도의 장점을 바이오 벤처들이 활용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 점 등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나 개선, 추가 지원에 대해서 여러 가지 방안들이 제시되고 있다.
또 한 가지는 바이오산업생태계 안에서 실제로 혁신활동을 담당하는 주체들간의 교류·협력 활성화를 위해 보다 특별한 고민과 구체적인 방안들이 모색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세계적인 바이오클러스터 보스턴, 샌디에이고 등의 성공은 집적화된 혁신주체들 간의 자발적인 활발한 교류, 협력으로 가능했다는 점을 이해해야한다. 바이오 분야, 특히 신약개발에 있어서 기술혁신을 가속화하는 최선의 전략은 개방형 혁신이라는 것은 이미 여러 성공사례를 통해 배운지 오래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 바이오 분야의 산학연 협력 연구 비율을 타 기술분야(IT, ET 등) 연구와 비교했을 때 최저 수준(10% 내외)에 그치고 있다.
IMD 세계경쟁력 평가, WEF(세계경제포럼) 등에서 국가경쟁력을 평가하는 지표로 살펴봤을 때 이러한 사실은 더욱 분명해진다. 혁신부문 지표내에 연구개발 투자, 연구개발인력, 특허 등의 지표는 10위권내를 유지하며 강점을 보이는 반면 산학연 지식 전달 정도, 기업간의 기술협력, 기업혁신역량은 20위권 수준에서 최근 2~3년 사이에는 하락세를 보이며 30위권으로 밀려난 현실을 봤을 때 말이다.
혁신이 국가 경제의 장기적 성장을 위한 핵심 정책으로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시급한 부분은 혁신주체들간의 교류, 협력 활성화가 아닐까 한다. 즉 산, 학, 연 그리고 병원이 어떻게 자발적으로 교류, 협력하게 할 것인가이다. 정부가 바이오산업생태계의 본격 시동을 걸겠다며 다양한 R&D 지원이나 정책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혁신주체들이 자발적으로 교류하고 협력할 수 있게 하는 그 케미(chemistry)를 무엇으로 할 것 인지 깊이 고민해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