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승훈 가톨릭의대 교수·정수용 큐베스트바이오 이사
왜 비임상데이터를 밑천이라 하는가?
국내에서 신약 개발을 수행하는 많은 분들은 사업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을 가지고 계실 것입니다. 신약 개발을 시작하려면 일단 회사가 있어야 하고, 회사를 차리려면 자본금이 필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발을 계속 이어 가기 위해서는 특정 시점까지 확보된 신약에 대한 증거를 기반으로 추가적인 투자금을 유치해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는 돈이 사업 및 신약 개발을 위한 기초적인 자원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어떤 일을 하는 데 기초가 되는 돈이나 물건을 밑천이라고 합니다. 신약을 만든다는 것은 돈만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에너지가 다양한 형태로 바뀔 수 있듯, 개발 과정 중 이러한 돈은 적절한 방법론을 통해 신약 승인의 근거라는 새로운 가치로 바뀌게 됩니다.
돈을 투자하여 생성할 수 있는 신약 승인의 1차적 근거가 바로 비임상데이터입니다. 비임상데이터는 단지 임상 진입을 위해 필요한 데이터가 아닙니다. 사람에게 신약 후보물질을 적용해 본다(시험, trial)는 일은 위험성이 따를 뿐만 아니라, 비임상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에 비해 한정된 양과 품질의 데이터를 얻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개발 대상 물질에 대한 기초적이고 광범위한 정보는 사실 비임상 연구로부터 확보된다 하더라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아래의 도식을 보시면, 비임상 연구가 어떠한 역할을 하는지 보다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많은 경우, 개별 후보물질이 어느 단계(stage)까지 개발되었는지에 관심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단계를 뒷받침하는 기초 근거 생성 연구(fundamental studies)들은 그 중요성이 간과되고 있습니다. 비임상 데이터는 개발의 전체에 걸쳐 최적의 개발 경로를 설정할 수 있는 기초 정보의 역할을 하며, 인체에서 특정 정보를 얻을 수 없거나, 확보된 정보의 양이 부족한 경우 의지할 수 있는 가장 근본적인 신약의 근거입니다. 즉, 과학적 측면에서 신약 개발의 밑천이 되는 것입니다.
풍부한 비임상데이터는 개발의 핵심 경쟁력
잠깐 다시 사업 이야기로 돌아가서, 두 회사가 동일한 일을 하려고 할 때에 A회사는 밑천이 적고, B회사는 밑천이 많았다고 생각해 보겠습니다. A회사는 일을 해 나감에 있어 발생하는 모든 사항에 대해 더욱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고, 사업상 불확실성이나 어려움 등에 대한 대응 능력이 B회사에 비해 떨어질 수밖에 없게 됩니다. 즉, 불확실성이 존재할 수밖에 없는 사업 환경에서 다양한 시도를 하지 못하게 되는 결과가 초래되며, 이로 인해 최적의 사업계획을 세울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의사 결정에 시간이 많은 시간을 소요하게 될 것입니다.
신약 개발의 근거 창출 역시 비슷한 측면을 가지고 있습니다. 1~3상에 걸친 임상 개발을 각 단계 혹은 각 시험마다 불확실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최적의 임상시험을 설계하기 위해서는 안전성이 확보되는 시작용량, 예상되는 유효용량, 가장 타당한 용량-용법, 대상자 특성에 따른 안전성과 유효성 차이 등에 따른 어느 정도의 예측치를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임상 개발의 단계에 따라 요구되는 예측 정보의 유형이 다르기 때문에, 각 단계 별로 해당되는 예측 정보를 도출하기 위한 혹은 임상 자료의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한 비임상 데이터가 적절히 생성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데이터가 풍부하면 풍부할수록 보다 탄탄한 근거 위에서 정확성 높은 예측 정보를 도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개발 진행 중 어느 시점에 어떤 비임상데이터를 생성하여, 임상 개발에서 얻은 정보(이러한 정보가 존재한다면)와의 통합적 해석을 통해 다음 단계 진행에 대한 의사 결정을 할 것인가를 개발의 설계도로 가지고 있는 것이 매우 중요하겠습니다.
이렇듯 비임상데이터는 임상 진입이나 각 단계 임상 허가를 받기 위한 목적 등 단순한 가치를 지니는 자원이 아닙니다. 규제기관은 계획된 임상 적용 상황에서 후보 물질 사용으로 인한 위험이 신약 개발로 인해 기대되는 이익에 비해 과도하지 않은가가 1차적인 관심사이므로, 이를 입증할 수 있는 자료만을 필수적으로 요구합니다. 명백히, 이는 최적의 신약 개발이 이루어지는 충분조건은 아닙니다.
앞선 글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사업이든, 신약개발이든 결국은 그것을 수행하는 당사자를 위한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일련의 과정이며, 이는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방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다시 말해, 비임상데이터를 풍부하게 생성하는 것은 결국 개발 당사자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라이센싱 아웃(국내사들의 주요한 개발 전략이 초기 임상 단계까지의 개발 후 라이센싱 아웃하는 것임을 앞서 다룬 바 있음)의 관점에서도, 후보 물질을 라이센싱 인하는 다국적 제약사 입장에서 볼 때, 아직 불완전한 초기 임상 데이터 자체보다는 비임상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그와 상통하는 근거가 초기 임상에서 확보되고 있음을 통해 전체적인 신약의 가능성을 확인하게 될 것입니다.
국내사의 라이센싱 아웃이 점차 증가(2017년 1조 4000억원이었고, 2018년에는 4조 4000억원, 2019년에는 5조 상회 전망)하고 있으며, 최근 Y사는 비알콜성 지방간 치료제를 전임상 단계에서 라이센싱 아웃하는 등 비임상 데이터는 개발의 밑천임과 동시에 팔리는 신약의 핵심 경쟁력이라 하겠습니다.
비임상데이터 생성의 궁극적 의미는 해석과 활용에 있다!
그렇다면 무조건 많은 비임상데이터를 동시다발적으로 확보하는 것이 올바른 것일까요? 대답은 당연히 ‘아니오’입니다. 개발의 궁극적인 목적은 '인체 적용을 통해 신약 허가를 위한 확증적 근거를 얻는 것'입니다. 비임상데이터가 풍부하다고 해서 누군가가 그 후보물질을 라이센싱-인하거나, 신약으로 허가해 주지 않습니다. 밑천이 많다고 장사가 잘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밑천을 좋은 비즈니스 모델로 바꾸듯, 신약 개발 중 확보하는 모든 data를 learn-apply 패러다임에 의하여 해석 및 활용해야 합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비임상데이터는 신약 승인의 1차적 근거이므로, 이를 이용하여 2차, 3차 근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작업이 이루어져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전체적인 데이터 생성, 해석, 활용 계획이 먼저 만들어져야 하며, 그 틀 안에서 꼭 필요한 정보가 포함된 데이터를 적절한 형태로 확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즉, 데이터를 생성한 후 이를 근거(evidence), 그리고 더 나아가 지식(knowledge)으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전체적인 틀이 필요하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런 틀 안에 포함되지 않는 비임상데이터를 확보하는 것 또는 적절하지 않은 형태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 모두 시간과 비용의 낭비가 될 수 있습니다. 일례로, 투여 용량 및 기간에 따른 약물 농도와 그에 따른 효능 및 이상반응의 발생 경향을 예측해보고자 하는데, 비임상데이터가 단면연구 형태(위약 또는 대조약물 대비 최대의 차이를 보이는 시점에서의 효력 데이터)로만 확보되어 있다면 이는 해석 및 활용이 불가능한 데이터라고 하겠습니다.
이에 따라 현대 신약 개발에서 최적의 비임상데이터를 얻기 위해서는 후보물질의 특성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프로젝트 리더, 다양한 비임상 연구의 방법론과 그 결과의 의미를 적절히 해석할 수 있는 비임상 전문가, 데이터를 지식화하고 이를 타당한 임상 상황에 적용하여 합리적인 예측치를 제안할 수 있는 임상약리 전문가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다학제팀의 역할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데이터의 지식화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다루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