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스펙테이터 장종원 기자
▲박종화 유니스트 생명과학부 교수
한국인은 러시아 극동 지방에 살던 북방 고대인과 현대 베트남·대만 남방 원주민의 유전 특성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7700년 전 러시아 극동지방에 살았던 고대인의 게놈을 분석한 결과로 현대 한국인은 수천 년간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융합하면서 형성된 것으로 나타났다.
박종화 울산과학기술원(UNIST) 게놈연구소장(생명과학부 교수) 연구팀은 영국 케임브리지대, 아일랜드 유니버시티칼리지더블린 등과 공동으로 이같은 내용을 담은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시스’ 1일자에 발표했다.
연구팀은 두만강 북부 한반도와 러시아의 경계에 위치한 악마문 동굴(Devil’s Gate Cave)에서 발굴된 신석기 여성 수렵 채집인 2명의 머리뼈에서 게놈(유전체)을 추출해 분석했다. 고대인 중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의 게놈을 완전히 해독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분석 결과 악마문 동굴인은 한국인처럼 갈색 눈과 삽 모양 앞니(shovel-shaped incisor) 유전자를 가진 수렵채취인으로 밝혀졌다. 또 이들은 현대 동아시아인들의 전형적인 유전 특성인 우유 소화를 못하는 유전변이와 고혈압에 약한 유전자, 몸 냄새가 적은 유전자, 마른 귓밥 유전자 등을 가지고 있었다.
악마문 동굴인과 다른 고대인, 현대 한국인의 게놈을 비교하자 동아시아 현대인은 조상들의 유전적 흔적을 지속적으로 간직한 것으로 드러났다. 최근 수천 년간 많은 인구 이동과 정복, 전쟁 등으로 고대 수렵채취인의 유전적 흔적인 감소한 현대 서유라시아인과 대조되는 부분이다.
연구 실무책임자인 전성원 UNIST 게놈연구소 연구원은 “동아시아에서는 적어도 최근 8000년까지 외부인의 유입 없이 인족끼리 유전적 연속성을 가진다”며 “농업 같은 혁명적인 신기술을 가진 그룹이 기존 그룹을 정복·제거하는 대신 기술을 전파하고 지역 특성에 맞는 생활양식을 유지했다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악마문 동굴인은 현재 인근에 사는 울지(Ulchi)족의 조상으로 여겨진다. 근처 원주민을 제외하면 현대인 중에서는 한국인이 이들과 가까운 게놈을 가진 것으로 판명됐다
연구진은 악마문 동굴인과 현존하는 아시아의 수십 인족(ethnic group)들의 게놈 변이를 비교해 현대 한국인의 민족 기원과 구성을 계산해냈다. 그 결과 악마문 동굴에 살았던 고대인들과 현대 베트남 및 대만에 고립된 원주민의 게놈을 융합할 경우 한국인이 가장 잘 표현됐다. 한국인의 뿌리는 수천 년간 북방계와 남방계 아시아인이 융합하면서 구성됐음을 방대한 게놈변이 정보로 정확하게 증명한 것이다.
다만 현대 한국인의 실제 유전적 구성은 남방계 아시아인에 가깝다. 이는 수렵채집이나 유목을 하던 북방계 민족보다 정착농업을 하는 남방계 민족이 더 많은 자식을 낳고 빠르게 확장했기 때문이다.
박종화 교수는 “유전자의 이동뿐만 아니라 수천 년 간의 실제 역사와도 일치를 한다”며 “한 줄기의 거대한 동아시아인 흐름 속에서 기술의 발달이 작용해 작은 줄기의 인족들의 발생과 혼합이 이뤄진 것”이라고 전했다.
유전자 혼합도 계산에서 한국인을 포함한 동아시아인은 단일민족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다른 인족보다 내부 동일성이 매우 높았다. 박 교수는 “이번 고대게놈 연구는 엄청난 양의 게놈 빅데이터를 분석한 것”이라며 “한국인의 뿌리 형성과 그 결과를 결정적으로 설명하는 생물학적 증거를 찾은 것"이라고 강조했다.